리뷰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구성에서 편차를 보인 창작산실의 춤들
김채현_춤비평가

2024 창작산실의 일환으로 올려진 99아트컴퍼니의 〈피안의 여행자들〉은 우선 두어 가지 특기할 바가 있다. 먼저 서아프리카 나라 부르키나파소의 악사와 무용인이 이 공연의 협력자로 참여한 점이다. 해외 협업이 일상화되는 글로벌시대에도 서아프리카는 아직 낯설기도 하다. 그리고 공연을 주도한 소재로서 제례(祭禮·rite)는,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춤 공연에서 차츰 잊히는 감이 드는데, 〈피안〉은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 산업화 이전 시기에 성행한 제례의 유습이 일상적인 지역의 외국 예술인들과 수행하는 협업은 나름 각별해 보인다. 필자가 알기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춤 신명은 제례와 분리해서 생각될 수 없다. 유럽이나 북미의 무용인들과는 차이가 나는 점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풍부하며 세계적으로 시전할 자산인 제례는 그 파트너를 잘 만나면 협업은 얼마든지 순조로울 것이다. 출연진은 한국인 7인, 부르키나파소인 2인으로 구성되었다.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피안〉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객석은 아예 비우고 무대 가장자리에 관객이 둥글게 착석한 공간 속의 가운데 둥근 마당판에서 진행된다. 예닐곱 폭의 옅은 황토빛 삼베 질감의 천들이 놀이판 천장에서 큰 주렴처럼 늘어뜨려져 그곳이 특이한 공간이라는 예감부터 들게 한다. 드럼을 치며 등장한 집단이 춤과 노래로 흥겨운 분위기를 이은 후 자기 이름과 어머니나 할머니가 어디서 왔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부르키나파소 사람은 자신이 그리오라며 어머니와 할머니를 소개하고선 그리오는 세계 모든 음악의 어머니라 말한다. 참고로 그리오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지역의 역사나 설화를 전하고 관혼상제를 주관하는 세습 음악 예인의 일족을 가리킨다. 우리의 무당과 유사한 면이 있지 않은가.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 ⓒbyone



그렇게 피안으로 길을 떠나는 그들을 부르키나파소에서 가져온 드럼, 현악기, 실로폰 소리를 내는 발라폰 같은 악기들이 동반하였고, 한국 악기는 없었다. 여기서 서아프리카의 정감 및 세계관과 어울리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부르키나파소의 악기 소리와 노래, 발맞춰 걷기, 경쾌한 춤으로 집단의 동질감을 다진 후에 그들이 당도한 곳은 어느 숲이다. 속이 빈 나무에는 영혼이 있다며 깨어난 영혼들과 야밤의 춤을 벌인다. 야밤의 정령 귀신들이 기어대고 귀신 소리가 격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어서 발구르기가 가파르게 진행되다 집단의 춤이 엑스터시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느리게 등장하는 그들은 둥글게 모여 선 노래로 판을 마무리한다. 부르키나파소의 설화를 한국춤과 부르키나파소의 춤으로 엮은 판이라 할까.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간의 최대 주제인 죽음은 산자가 죽은 자와 재회함으로써 생명을 얻는다. 그 재회의 계기로서 제례의 역할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례는 피안을 상기하고 기억하는 장(場)인 것이며, 그 장을 풍성하게 축성하는 장치로서 음악 노래 춤은 절대적이다. 이른바 악가무가 필수적이던 제례가 잊히는 경향이 춤의 본래성은 물론 그 확장성까지 가로막는 풍조를 경계해야 할 듯하다. 〈피안〉에서 99아트컴퍼니가 우리 악가무에 그치지 않고 서아프리카의 춤과 악가무에서 춤의 보편적 본래성을 재확인해보고 창작의 지향점을 다지는 열의를 짐작하게 된다.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 ⓒbyone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악가무가 낯설어가는 현실에서 〈피안〉의 우리 출연자들에게서도 악가무의 농익음은 옅어보였다. 여기에는 이국의 노래를 기반으로 한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엑스터시의 춤, 관객과의 눈맞춤과 동참 유도의 순간들이 더러 있었지만 〈피안〉의 분위기는 경건한 쪽이라 생각된다. 제례가 축제의 씨앗이라는 사실은 진지함과 풀어헤침이 축제에서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예술은 제례 자체를 넘어 그것대로의 시공간에서 일시적인 축제(공동체)를 지향한다. 99아트컴퍼니의 시그너쳐인 농밀한 춤은 대지의 신과 정령을 축성하는 (악가)무로서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이국의 음악과 리듬과 춤에서 보편적 친연성을 포착해서 작업한 〈피안의 여행자들〉을 기억하는 이유이다.



류장현 〈그래비티〉 ⓒ김채현



이번 창작산실에서 류장현은 폭넓은 시각을 제시하였다. 안무자가 〈그래비티〉(중력)의 주제로 제시하는 내용은 이러하다. 모든 것을 연결하고 제자리에 붙드는 중력은 힘의 상호작용으로 우리의 만남과 운명에도 영향을 끼치며 움직임은 삶에 존재하는 힘의 궤적을 그려낸다. 무대는 조그만 푸른 발광체가 밝아지는 것으로 우주 탄생이 시작하며 둥근 구체의 행성들이 형성되고 생명의 출현과 인간들의 만남으로 유추되는 장면들로 전개된다. 전체 80분 동안 마지막 20분 동안에는 하의 속옷만 착용한 남자가 공 같은 검정 구체를 갖고 바닥을 뒤척이고 뒹굴며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여 그 구체에 관심을 보인다. 또 다른 사람이 더 큰 구체를 갖고 등장하면 사람들이 그 구체를 떠넘겨받고 매만지다 퇴장하자 구체만 허공에 매달린 채 무대는 막을 내린다.



류장현 〈그래비티〉 ⓒ김채현



〈그래비티〉는 초반부터 광대한 우주의 불연속성을 춤꾼들의 에너지 넘치는 이합집산으로 그려내는 의욕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기류는 공연 전반을 관통하였다. 예측불가의 격하고 날렵한 움직임들이 공연을 견인할 동안, 그러나 방대한 주제를 몇 개의 부분으로 뚜렷하게 분절하는 구성부터 설정될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우주 탄생과 중력의 발생이라는 현상이 인간의 운명과 직결된다는 안무자의 해석은 공감을 획득하기 어려워졌다.



김판선 〈시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다〉 ⓒ김채현



김판선은 안무작 〈시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다〉를 소개하면서 시간의 파편화된 속성, 과거 현재 미래의 얽힘 속에서 변화 순환하는 기억과 경험을 통해 우리가 시공간 속에서 생성 소멸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구성 인자이다. 공연 도입부에서 어둠 속 대형 박스 5개 위에 두어 사람이 서 있다가 자세를 변형할 동안 박스 아래에서 한 사람은 슬로모션으로 비틀대며 걸어가고 몇 사람은 박스를 천천히 밀며 한 여자는 정지해서 선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을 응시한다. 이윽고 박스들이 모여지고 박스 위의 사람이 뒤로 낙하하고 박스를 감싼 포장이 벗겨지면서 무대가 밝아진다. 아마도 시공간의 정체가 밝혀지는 상황이 시작되는 것임을 알리는 신호처럼 밝아진다.



김판선 〈시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다〉 ⓒ김채현



박스에는 형광등이 켜져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버둥대며 목격하는 여자도 이윽고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한다. 사람들이 박스를 들락거리거나 그 주변을 뛰어다니다가 서로 대거리하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기다란 형광봉이 천장에서 내려왔다가 올라간 후 사람들이 긴 형광봉을 휘두르는 모습, 작은 회전반 위에 사람들이 오르막 내리막 하는 모습, 무대 왼쪽 끄트머리에서 어떤 사람이 고개를 숙인 모습, 형광봉들이 세워져 흔들대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선 모습에 이어 마지막으로 끄진 형광봉들 사이로 불빛이 회전하며 비치면 축 늘어져 쓰러진 사람들을 여자가 응시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관계를 다양하게 제시하는 이 무대에서는 시간의 파편적 속성이 출연진들이 이합집산하는 식의 단편적인 시각화에 머문 감이 있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식별해내기가 용이하지 않고, 시공간과 기억의 관계가 불투명한 때문에 시간과 공간 속의 존재를 새롭게 경험하는 계기는 모호한 채로 남았다.

2024 창작산실의 참가작들 사이에서는 움직임의 기량보다는 우선 구성에서 편차가 있었다. 기량이 웬만하여도 구성이 공연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구성은 안무의 발상과 연관될 것이고, 제시할 주제의 타당성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춤 구성 면에 중점을 두는 안무의 발상 이전에 주제의 타당성을 먼저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창작산실의 참가자들이 쇄신 분발하기를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4.
사진제공_김채현, byone,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