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솔로춤에 대하여
솔로춤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김채현_춤비평가

춤은 개개인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며 제각각 혼자 하는 춤은 인간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홀로 추는 춤을 홀춤, 독무, 솔로 댄스라 불러왔고 근자에는 모노 댄스라는 말도 보인다. 이 말들은 춤에서 자기 장르를 이루어 그만큼 비중이 절대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춤이나 전통춤을 손질한 춤들로서 솔로 댄스는 부지기수다. 발레의 바리아시옹도 솔로 댄스에 속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도 솔로 댄스는 장르를 막론하고 창작자의 자기 실현에 있어 막중한 구실을 하였고, 스트릿댄스에서 솔로 댄스의 위치는 대단하다. 지금도 전통춤 계열에서 독무를 레퍼토리로 하는 공연은 전국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우연의 일치인지 올해 6월에 솔로춤을 더 상상해보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몇 개 있었다.

‘모노탄츠 서울’은 전체 공연작이 독무로만 진행된다. 기획사 코리아댄스어브로드가 헝가리의 베틀렌극장과 협업으로 2019년부터 격년으로 여는 프로그램으로서 올해는 6월에 있었다(6. 20~22.,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그 전부터 헝가리에서 열리던 모노탄츠 페스티벌에 한국이 참여하여 독무 안무가의 교환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본이나 그 외 나라의 무용인들도 소수 참여하는 선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모노탄츠 서울에서는 한국의 6편, 헝가리의 2편, 일본의 1편이 올려졌다. 모노탄츠 서울은 소품들 위주의 이벤트로서 국제 교류에 용이해 보인다. 더욱이 국제 교류가 다변화되었으되 더 다변화되어야 하고 솔로춤의 가치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노탄츠 서울이 견실한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서정빈 〈한 권의 자세〉 ⓒ김채현



서정빈은 〈한 권의 자세〉에서 여성의 품위를 강조했던 과거를 예리한 시선으로 묘사하였다. 공연은 책 한 권을 머리에 이고서는 조신한 걸음으로 뒷걸음질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안무자는 책이 지식의 상징이라는 지당한 말씀 속에 감춰진 훈육과 억압에 착안하였다. 후반부에 책을 머리에 얹기 전에 한참 진행된 움직임들에서 그러한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공연 도입부에서부터 쪼그려 앉아 몸을 비비꼬거나 찡그린 표정, 꿈틀대며 바닥을 비벼가는 비정형의 동작들은 나름 완성도를 가졌고 호소력도 있었다. 춤적 자세를 안무자의 자기 방식대로 해체하고 다수 일상적 동작을 재구성함으로써 억압받는 쪽의 심상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정정운 〈Boyhood〉 ⓒ김채현



정정운의 〈Boyhood〉에는 상큼한 센스가 있었다. 다채로운 움직임과 자세들이 자기 도취의 심성을 자유로이 그려낸다. 삶의 결정적 순간을 노리며 발버둥치는 청년이 결정적 순간에는 종착점이 있을 리 없고 도리어 매순간이 결정적이라는 깨달음을 담은 공연이다. 달리기와 실신, 달밤에 체조하기 식의 밑도 끝도 없는 동작들이 쉴새 없이 그리고 부산스럽게 전개되는 끝에 자기 각성의 미소와 평안한 표정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소재를 무리하지 않고 경쾌하게 끌어가는 저력이 엿보이고 움직임의 활용도가 아주 높았다.



하지혜 〈Prides〉 ⓒ김채현



하지혜는 수동적 존재에서 깨어나 자기를 찾는 여정을 〈Prides〉에서 밀도있게 구현하였다. 앉은 상태를 축으로 하여 주변 응시, 뒤척이기, 몸 일렁임, 구르기, 미끌어지기 등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일어나 가슴에 조명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자기를 회복하는 순간에 이르는데, 보다 복합적인 구성을 필요로 하였다. 헝가리의 레카 기예브나르는 책을 소재로 한 공연에서 매끈한 동작을 아주 정갈하게 처리하며 진지함을 보였다. 기예브나르는 앞서와 유사한 기조로 다른 날의 〈윈터 송〉에서도 겨울의 감성과 내면의 흐름을 연결지어 작품을 전개하였다. 기예브나르의 두 작품은 움직임 시퀀스들을 반복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구성에서 임팩트가 뚜렷하지 않아 서사는 불투명해지고 움직임 또한 나열 구성되는 감이 컸다. 일본의 아야노 요코야마의 〈Ghost Matter〉는 고스트 같은 존재와 춤출 때 이미지의 접점을 확장한다는 해석을 춤화하였다. 힙합 계열의 차림새로써 무대를 배회하며 접점들을 심도가 낮은 중에서도 여러 면으로 짚어갔다.





금배섭 〈바흐〉 ⓒ김채현



금배섭은 〈바흐〉에서 좀 특이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하얀 테이프를 바닥에다 기다랗게 두 가닥으로 부착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바이올린 연주자가 라이브 연주하는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 선율을 타면서 그의 〈바흐〉는 전개된다. 바흐의 선율이 공연의 흐름을 좌우한 것은 아니어서 선율과 공연 사이에 직접적 연계는 없고 선율 즉 바흐는 어떤 단서의 구실을 하였다. 먼저 하얀 셔츠를 두 겹으로 입은 금배섭은 한 겹을 벗어 진중하게 개어서 가슴 앞에 품듯이 든다. 바흐의 선율에 따라 두 가닥 흰 테이프 사이에서 몸을 일렁이는 등 조용한 움직임 위주로 바흐의 선율에 반응하는 여러 모습을 이어간다. 이로써 두 가닥의 테이프 안으로 조성된 공간은 특별한 의미 공간이 된다. 그는 셔츠와 한 쌍을 이루며 느린 2인무를 진행한 후 그 셔츠를 바닥에 가지런히 두면서 셔츠의 양 소매를 테이프의 끄터머리에 매어둔다. 뒤로 한참 물러나 셔츠를 응시하며 조용히 접근해서 그 셔츠를 들어 올리니 두 가닥의 테이프가 동시에 떨어져 올려지면서 아주 기다란 하얀 동아줄 같은 모양이 된다. 셔츠와 두 가닥 테이프를 끌어당겨 그 셔츠를 야트막한 높이의 트라이포드에 걸쳐 놓는다.



금배섭 〈바흐〉 ⓒ김채현



이후 셔츠와 헝클어진 두 가닥 테이프를 배경으로 금배섭은 느린 굴신과 전신 일렁임을 동반한 움직임들에 이어 두 가닥 테이프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그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셔츠를 뒤집어쓰고서 심취하는 순간을 지속한다. 이어 바흐 연주가 그치고 금배섭이 무릎을 꿇어앉아서는 몸을 숙여 일렁이자 셔츠가 상체로부터 이탈하여 셔츠는 바닥에 남고 금배섭은 상체가 벗겨진 상태가 된다. 마치 허물을 벗은 듯한 상태에서 그는 셔츠를 물끄러미 보다 물러나서 사라지고 무대에는 덩그러니 허물 같은 셔츠만 한동안 남는다.

두 가닥의 하얀 테이프 사이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 퍼포먼스에서 공간은 비가시적인 어떤 것으로 물들여졌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특정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 아마도, 바흐의 선율이 요란하지 않고 그의 곡들이 종교적인 또는 신앙적인 감성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바흐〉의 공간이 어떤 초월적인 것과 연계되는 경우도 상상될 만하다. 그리고 금배섭에게서 모두 벗겨진 두 벌의 셔츠는 지상 또는 일상을 벗어난 세계의 상징으로 유추됨 직하다. 다시 말해 바흐의 선율을 수용하는 방향에 따라 〈바흐〉에 대한 풀이는 정해질 것이다. 안무자는 바흐의 시대와 감각을 오늘의 삶 안에서 만나고 우리가 〈바흐〉에서처럼 바흐와 연결된다고 한다. 바흐를 단서로 그 무엇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다만, 안무자 자신이 바흐의 선율에서 상상하는 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서 미련은 남는다.



무이척인 안무, 황서영 출연 〈붉은 제전〉 ⓒ국립현대무용단, 최근우(스튜디오 오프비트)



국립현대무용단은 ‘솔로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세 공연작을 소개하였다(6. 6~8.,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원로 중견 안무가가 젊은 무용수들과 함께 솔로춤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홍콩의 무이척인, 일본의 야마다 세츠코, 한국의 미나유, 세 안무가가 각자 황서영, 정록이, 임종경과 짝을 이루었다. 그 솔로춤들은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에 대한 오마주(〈붉은 제전〉), 무대 위 1인 무용수의 집중 조명(〈정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과속 사회 속의 공포(〈On Air〉)를 주제로 한다. 〈붉은 제전〉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동시대적 상황을 납득할 수는 있지만 작품의 참신성은 옅다. 〈정록이, 여기에 있습니다〉가 출연 무용수의 허우적대는 자아를 부각시키고 〈온 에어〉에서 시대의 고질적인 불안감이 묘사되는데, 두 작품에서 감지되는 바는 비교적 평이하다.



야마다 세츠코 안무, 정록이 출연 〈정록이, 여기에 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 최근우(스튜디오 오프비트)



솔로프로젝트의 춤들이 일반적인 솔로춤인지 검토해볼 여지는 크다. 솔로춤을 춤추는 사람 자신이 춤의 모든 것을 꾸리는 춤이라고 하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발레의 바리아시옹의 경우나 전통춤 레퍼토리들에서는 이미 정해진 안무가 춤추는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솔로프로젝트에서 홀로 추는 무용수에게 타인의 안무가 주어졌으므로 솔로프로젝트의 춤은 솔로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솔로프로젝트에서는 이미 정해진 안무는 없고 안무는 안무자-출연진 간의 상호작용 아래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솔로프로젝트에서 춤추는 이는 많게 적게 개입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종 결과물이 공동 창작물일 개연성도 있다. 솔로프로젝트에서 그 명칭은 춤추는 사람(솔로) 위주이되 실제 공연에서 안무자가 별도로 있으므로 솔로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미나유 안무, 임종경 출연 〈온 에어〉 ⓒ국립현대무용단, 최근우(스튜디오 오프비트)



일반적으로 솔로춤에서는 춤을 꾸리는 사람의 춤에 대한 자의식을 기본 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다. 반면에 솔로프로젝트에서 출연한 춤추는 사람의 자의식이 얼마나 어떻게 발휘되었는지 간파해내기에는 불투명하다. 춤에 대한 자의식이 발휘되든 않든 간에 무대 공간에서 독무로 진행되는 춤들로 구성되는 것이 솔로프로젝트라면 일반적으로 열리는 솔로춤 레퍼토리 공연과의 변별성은 어디서 찾아져야 하는가. 요컨대, 솔로프로젝트에서 솔로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과정이 손질되고 또 그 내용이 관객들과 공유되어야 무대는 호소력을 가질 것 같다.

국립무용단이 꿈틀대는 중이다. 고인물을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그간 산발적으로 표출된 터에 이번의 〈파이브 바이브〉(Five Vibe)도 그 선상에서 파악된다(6. 25~29.,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파이브는 한국춤의 선·숨·흥·장단·시간의 다섯 요소를, 바이브는 죽이 맞아 발산하기를 뜻한다. 공연은 그 다섯 가지 요소에 담긴 한국춤의 특성을 강점으로 확대하면서 이를 남성춤만으로 구현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파이브 바이브〉는 갖가지 모양의 오디오 스피커를 배경 무대장치로 하고 패션쇼의 런웨이 구도를 가미한 환경 속에서 전자음악과 디제잉을 기본으로 전개되었다.

한 마디로 남성적 매력과 에너지를 기반으로 강렬하며 매혹적인 춤이 무대를 쓰나미처럼 휩싸는 듯하다. 바닥구르기와 뜀뛰기처럼 기존 국립무용단에서는 어느 면 실종되었다 싶은 움직임까지 가세하며 출연진들은 열성을 쏟았고 춤판은 열기가 고조되었다. 정기공연은 아니지만 국립무용단의 환골탈태를 고대하는 갈망이 무용단 내적으로 누적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공연이다. 공공무용단 중에서도 특히 국립무용단의 변신은 권장되어야 하며, 향후 국립무용단의 향방은 일단 내부 구성원들의 선택과 안목에 달렸다 하겠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움직임에서나 구성에서나 매스(mass·量塊·덩어리)의 느낌으로 돌진하는 품세의 이미지가 두드러졌다. 이 매스는 굳센 힘을 동반하였고, 전원 남성들이 출연한 남성춤의 특성에 앵글을 맞춘 결과로 보인다. 이 와중에 파이브 가운데 한국춤 고유의 선의 요소는 아예 등한시된 듯하고 장단과 시간 요소에서도 우선 완급의 교차를 짚어보기가 어려웠다. 일테면 쉬어가는 여유가 퍽이나 아쉬웠다고나 할까. 힘과 흥에 치우친 춤으로서 파이브 가운데 일부가 부각된 〈파이브 바이브〉를 보는 동안, 솔로춤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도 스며들었다. 즉, 드센 집단춤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홀춤의 섬세한 그리하여 내적으로 삭이며 심지어 객석이 함께 음미하도록 하는 미적 특질은 한국춤이 지구상에서 드물은 솔로춤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이번처럼 힘과 흥의 춤에 대해서는 특히 그 오묘한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7.
사진제공_김채현, 국립현대무용단, 최근우(스튜디오 오프비트)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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