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차지은 〈DREAM〉
춤추는 몸은 꿈과 기억의 아카이브
이만주_춤비평가

근래 보기 드문 스펙터클한 대작이었다. 무대 천정에 옆으로 뉘어 매달린 큰 생나무. 그 밑에서 벌어지는 제의(ritual) 형식의 춤은 지극히 한국적인 컨템포러리 댄스였다. 상충되는 많은 이질적 함의와 다양한 연출의 묘(妙)가 깃들어진 차지은의 춤 작품 〈DREAM〉은 춤추는 몸이 꿈과 기억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오후 6시, 서울 서강대메리홀에서 ‘(사)메이드인댄스예술원Madeindance Company’ 대표이자 서원대학교 연구교수인 차지은 안무의 〈Dance No.4 Dream〉의 공연이 있었다. 이미 안무자는 〈바람-살아있는 화살〉, 〈간결한 표현〉, 〈SAD POEMS〉 등의 춤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작품은 〈Dance No.1 OH! ME OH! MY LIFE〉, 〈Dance No.2 SELF〉, 〈Dance No.3 풍덩〉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격이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은 안무자가 창작력과 함께 의지와 열성을 갖춘 부지런한 춤 작가임을 알게 한다.

어느 나라 신화에서나 지하와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며, 계절에 따라 무성한 잎이 지고 다시 피어나기를 반복하는 나무는 생명과 부활의 상징이다. 매달린 큰 생나무가 윗부분을 채우는 무대는 세속적인 영역과 구별되는 태고의 성스러운 공간이다. 그 성역에서 무용수로 나온 안무자 차지은은 터키의 세마(Sema) 춤을 추는 수피교도처럼 한없이 맴돌았다. 마치 돌고 돌아 트랜스(trance) 상태가 되어 자아(Ego)를 잊고 우주의 질서에 몰입하는 세마의 수행 행위처럼 보였다.

“꿈은 끝나지 않는다. 꿈은 깨질 뿐이다.” 차지은은 불교 선방의 화두 같은 이 문장을 통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원’이나 ‘치유’라는 성급한 결론을 거부했다. 대신 고통을 닫지 않고 존재의 흐름 안에 다시 놓아두는 ‘이행’의 과정을 선택했다. 무대 위에 오른 무용수들의 몸은 서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억이 통과하며 자국을 남기는 ‘물질’ 그 자체로 존재했다.

작품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호출하는 제의적 행위에서 시작된다. 무용수들은 ‘걸레질’이라는 바닥을 닦는 반복 노동을 수행한다.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할머니의 고단한 생애를 몸의 기억으로 빌려오는 의식이다. 허리와 무릎을 구부려 바닥을 닦는 행위는 낮은 곳에 머물렀던 할머니의 생애 위에 다시 무릎을 꿇는 겸손하고 숭고한 행위이다. 걸레질하는 손바닥과 발바닥은 기억이 몸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통로가 된다. 여기서 안무자는 스스로를 ‘잔여(殘餘)’로 규정한다. 사라진 자는 소멸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의 살아있는 몸 안에 계속 머문다는 감각, 즉 소멸이 아닌 존재의 지속임을 몸의 언어로 얘기한다.









차지은 〈Dance No.4 Dream〉 ⓒ유지예



개별적인 할머니의 호출은 7인이 추는 군무를 통해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일곱 쌍의 발이 각자의 리듬으로 땅을 후려치다 하나의 장단으로 수렴되는 순간, 개인의 슬픔은 억압된 여성 전체의 집단적 기억으로 증폭되며 저항이 제의가 되는 광경을 연출한다. 작품의 미학적 문법은 물, 붉음, 회전, 침묵이라는 네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물’은 순환을, ‘붉음’은 상처와 생명의 흐름을 동시에 상징하며 무대를 채운다. 특히 수피의 세마 춤의 회전은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풀어내고, 침묵은 존재의 밀도를 겹겹이 머무르게 한다. 이런 문법은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몸을 통해 세계가 흐르도록 허용하는 행위다. 무대 위, 생나무는 허공에 존재하지만 단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는 고통이 인간 내부에만 고여 있지 않고, 자연의 거대한 순환 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생명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다. 무대 바닥을 덮다시피 하는 큰 붉은 천은 무용수들의 춤과 연기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변형되며 다양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천정에 매달린 큰 생나무와 대비되어, 때로는 대지가 되었다가 때로는 역사의 파도가 되고 처절한 핏빛 기억이 된다. 한 예로 무용수가 붉은 천을 어깨에 메고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뒷모습은 과거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첫 번째 ‘이행(移行)’을 상징한다.









차지은 〈Dance No.4 Dream〉 ⓒ유지예



작품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정령과 동물의 감각으로도 심화된다. 생나무는 세계의 고통이 자연의 순환 속으로 스며들 준비를 마친 생명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무가 하강하고 사슴 군무가 이어질 때, 무용수들은 시각이 아닌 방울 소리로 공간을 읽는다. 무아지경의 몰입이란 통제를 잃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존재와 연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의 ‘난장’과 ‘승천’은 해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붉은 천이 파도처럼 덮쳐올 때, 무용수들은 저항하지 않고 그 힘에 휩쓸리는 것을 허용한다. 하늘로 올라가는 큰 생나무를 바라보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고통을 삶의 흐름 속에 다시 놓아두는 장엄한 이행의 순간이다. 이는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고통이 자연의 순환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차원으로 전환되는 ‘이행’을 의미한다. 나무가 올라갈수록 무용수의 몸은 가벼워지지만, 그것은 짐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차지은은 안무에 있어 기교적인 화려함보다는 무용수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 것의 에너지의 진정성을 중시했다. 유연하고 유기적인 움직임과 부드럽고도 힘 있는 곡선 위주의 안무를 구사했다. 무용수들 간의 연결이 마치 하나의 생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단절되지 않는 '의식의 흐름'을 묘사했다.





차지은 〈Dance No.4 Dream〉 ⓒ유지예



안무자는, 깨진 꿈의 조각들이 무용수의 몸이라는 아카이브를 통과하며 남긴 흉터와 진동이 관객에게도 어느 정도 전달된다면 이 제의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작품에서 관객에게 해답이나 위로를 주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까지 화해를 선언하지 않는다. 관객이 답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극장을 떠나길 원했다. 작품은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내면에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을 각자의 기억으로 채우게 하는 고도의 안무 전략을 구사했다.

나는 평자로서 안무자가 보내온 작품 의도와 해설을 미리 읽어 볼 수 있었다. 저이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교의 선문답 같았다. 달리 말하면 일반 상식을 거스르는 상충되는 비논리적인 글.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자동기술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은 문장들이 혼란을 주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의도를 춤 무대에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어쨌든 그렇게 많은 의도와 시도를 높이 사주고 싶었다. 공연을 보고 놀랐다. 작품은 안무자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무용수들도 십분 소화해 춤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작품의 감상은 관객과 평자의 자유다. 각자 마음대로 받아드리면 된다. 또 나는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이 ‘포스트모던 댄스’가 발흥하던 시절에 펴낸 책,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 1966)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예술 작품을 일일이 해석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랬을 때 〈Dream〉은 근래에 드문 문제작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대부분의 춤 작품은 춤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춤은 종합예술이다.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더욱 빛난다. 〈Dream〉은 큰 생나무와 큰 붉은 천으로 이루어진 무대장식이 소위 말하는 비주얼(visual)에 성공했다. 평자인 나 자신도 처음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조선 신화의 ‘환웅의 신단수(神壇樹)와 신시(神市)’를 떠올렸다. 요정들의 옷 같기도 하고 제사장들의 옷 같은 느낌을 주는 의상도 작품에 어울렸다. 〈Dream〉은 느낌으로써 좋은 작품이었다. 일반 관객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차지은의 스승이 되는 ‘메이드인댄스(Madeindance)’의 이연수 예술감독은 처음 창단에서 “우리는 춤에 있어서 공연예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국과 아시아의 움직임과 전통 등에서 찾아지는 독창적인 표현 양식을 실험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일상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형적이고 존재론적인 층위를 반영하는 시적 감수성을 포착해 춤, 퍼포먼스, 신체 연기로 아우러지는 피지컬 퍼포먼스(physical perfrmance)로 춤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라고 표방했다. 그 꿈 실현의 한 경우가 이번 차지은의 〈Dream〉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작품은 그러한 의지가 개화된 하나의 꽃이었다. 차지은의 〈Dream〉은 환상적이고 확장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다. 단순히 잠을 자며 꾸는 꿈을 넘어, 현실의 제약을 벗어난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내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춤으로 풀어냈다. 현대무용의 틀을 유지하면서 연극적 요소와 현대적인 감각의 연출을 결합했다. 〈Dream〉은 완성도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면서도 일반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접근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을 출간했다.​​​​​​​​​​​​​

2026. 5.
사진제공_유지예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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