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적 감각에서 예술적 언어로 도달하기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의 시즌 첫 무대인 더블빌 〈머스탱과 개꿈〉(4.3~5.)은 무용수로 익숙한 정재우와 정록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안무가로서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인 무대였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란 이상적인 무대에 서는 건 창작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인 만큼,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을 넘어 안무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펼쳐낼 지가 관건이다. 정재우는 환경에 길들여진 자신을 성찰하며 자유를 향한 욕망을 '머스탱'이라는 아이콘에 투영했고, 정록이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삼켜버린 감정들을 ‘개꿈’처럼 몽글몽글한 ‘입 속’ 풍경으로 구현했다. 두 작품 모두 강렬한 오브제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그 물성(Physicality)을 다루는 지점은 극명하게 갈렸다. 〈머스탱〉이 끝내 예술적 언어에 도달하지 못한 반면, 〈개꿈〉은 안무 와 밀착시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대조를 보여주었다.
상징적 오브제인가, 안무의 걸림돌인가
철제 흔들의자에 몸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머스탱〉은 전개된다. 검정 작업복 같은 올인원을 착용한 무용수들이 의자에 눕고, 기대고, 넘어가고, 반동으로 서는 동작들은 편안한 익숙함에 대한 의문이 시작됨을 알린다. 점차 의자는 단단한 구조물인 사회적 울타리로 형상화된다. 그 틈새를 기고 오가는 모습에서 안무가는 자유에 대한 단상을 조심스럽게 드러내지만, 여전히 의자 주변부에서 맴도는 동작들은 갈망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불확실한 상태를 피력하는 데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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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머스탱〉,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이러한 모호함은 무대 위로 실물 머스탱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안무적 돌파구가 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무대 상단에 도열된 의자에 붉은 'MUSTANG' 스펠링이 새겨지고, 거친 라이브 연주와 대형 자동차가 헤드라이트를 번뜩이며 등장할 때만 해도 무대는 어떤 뜨거운 분출을 예고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각 장치는 그 자체로 응집된 힘을 발휘할 잠재력을 품고 있었으나, 정점을 향한 에너지를 허망하게 휘발시켜 버린다. 특히 무대 바닥을 채운 소박한 갈대 더미와 만나며 더욱 길을 잃고 만다. 안무가가 갈망한 곳의 형상이라기엔, 유약한 갈대 사이를 미끄러지고 배회하는 무용수들의 존재감은 오브제에 비해 한없이 희미해진다. 결국 작품은 다시 흔들의자에 눕거나 무기력하게 미끄러진 무용수들의 모습 위로, 의자가 갑작스럽게 낙하하며 마무리된다. 시각적 장치들이 무대를 채우며 장면을 전환하지만, 정작 그 이미지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지 못해, 관객은 안무가가 도달하려 했던 종착지가 어디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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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머스탱〉,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더욱이 작품의 핵심 '머스탱'은 길들여진 삶을 거부하는 야생적 본능과 포드(Ford)차로 대변되는 과시적 남성성이라는 이중적 기표를 무대로 끌어들인다. 정재우는 이 강렬한 아이콘으로 내면의 욕망을 가시화하려 했으나, 음악의 자유로운 에너지나 자동차의 기세는 안무적 서사로 치환되지 못한 채 전시적 풍경에 머물렀다. 특히 무용수와 자동차 간의 신체적 교감이 부재한 탓인지 팽팽한 긴장은 발생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머스탱은 안무가 사유의 빈틈을 가리는 장식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시각적 장치에 의존하느라 정작 안무의 내실을 놓치는 신진들의 전형적인 함정이기도 하다. 오브제와 신체가 결합된 미학적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연출보다 안무의 구조적 설계를 함께 고민하며 다져가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오브제가 무용수와 호흡하는 행위적 동반자가 될 때 예술적 언어로 기능한다. 이러한 연결을 상실한 오브제는 결국 무대 위를 겉도는 무색의 물체에 머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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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머스탱〉,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감각적 오브제인가, 안무와 밀착된 통로인가
반면 정록이의 〈개꿈〉은 오브제가 무용수의 내밀한 감정을 뱉아내는 감각적인 통로로 기능한다. 무대 막이 한 켠만 열리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커다란 풍선을 안은 채 흔들거리는 무용수들은 꿈 속 등장인물이다. 이어 무대 위로 작은 공들이 던져지고 바닥을 채우는 순간, 공간은 입 안이라는 감각적인 실체로 바뀐다. 모호한 꿈의 세계에서 현실의 입 공간으로 진입하는 찰나, 사적인 이야기들이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분홍색 커튼이 삼면을 둘러싼 입 안에서 무용수들은 입안의 점성을 닮은 말랑말랑한 공을 가지고 놀고, 한국춤 사위를 추고, 무심하게 배회하기도 하며, 만화 캐릭터 의상을 입고 놀기도, 입천장 한 켠에 가만히 머물기도 한다. 입 안을 채운 침(점액)이자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실체이기도 한 이 이중적 의미의 점성 공들은 무대 위 파편화된 행동들과 맞물리며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내면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렇듯 겹겹이 쌓인 층위의 감정들은 무용수들의 신체를 빌려 서로 다른 결의 생동감으로 반복되어 표출된다. 안무가는 꿈의 세계를 빌려오되, 무대 전체를 입 안이라는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그 안에서 감정의 편린들을 제약 없이 펼쳐놓는 영리한 구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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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록이 〈개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안무가는 상큼한 색감의 조명과 의상, 리드미컬한 효과음을 빌려 무거운 현실에서 꺼내지 못한 말들을 '가벼운 것으로 퉁 쳐버리듯' 유희와 위트로 구사한다. 무용(無用)해 보이는 동작의 나열과 종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표정들, 사이키 조명 아래 무아지경으로 흔들리는 몸짓과 지독한 고독이 어우러진 무대에서 관객은 발화되지 못한 여러 감정의 상태를 보게 된다. 이내 무대 중앙에는 혀를 형상화한 오브제가 등장하고, 목구멍에서 기어 나온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의상의 무용수들은 공 덩어리를 뭉쳐 혓바닥 위로 가져간다. 그것이 삼켜버리겠다는 의지인지,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체념의 표현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을 다시 꿈으로 되돌리겠다는 표징(表徵)인지 단정 짓긴 어렵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무용수가 홀로 선 채 무대 막은 닫히고, 그는 그렇게 다시 자신만의 꿈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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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록이 〈개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안무가는 아마도 현실에서 대안을 찾기보다 그 꿈을 지키는 행위 자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개꿈〉에서 오브제를 다루는 방식은 상상력의 발칙함을 넘어, 말하지 못한 것들의 실상을 시각적 언어로 목격하게 하는 주요 장치였다. 언어 권력에서 밀려나 몸속 찌꺼기처럼 남겨진 ‘말 못한 말들’을 불러내려 한 안무가의 의도는 시각적인 생동감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그 예민한 감각을 무기 삼아, 사적인 내면의 정서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해 나가는 안무가의 다음 단계를 보고싶다. 입 안에서 맴돌던 그 질긴 말들이 타인에게 닿는 힘 있는 목소리가 되고, 그것이 강력한 몸짓으로 전달될 때 안무가 정록이만의 예술적 언어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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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록이 〈개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황승택 |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공적 혜택은,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냉정하게 심판하는 날카로운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국현이 극장이라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 창작 컨설팅 등 무형의 인프라를 열어두고 있는 만큼, 신진 안무가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보완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 공적 지원은 단순히 무대라는 판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자기 객관화를 실현하는 치열한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무대는 완성도를 증명하기보다 개성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場)이어야 한다. 단 한 번의 결과로 재단하기보다 서툰 발걸음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인내, 그리고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일. 이는 기성세대와 공적 기관이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기에, 국현이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예술적 터전이자 공적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을 꾸준히 이어가길 바란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장.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