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방관자들을 세게 치다
김채현_춤비평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인류 최악의 반인륜적 비극이다. 이은경의 안무작 〈세게, 쳐주세요〉는 히틀러 치하의 학살 수용소를 소재로 해서 공연의 초점을 학살 연루자들의 행태에 맞추었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 27. ~ 3. 1.). 공연에서는 언어가 대사로서 행한 역할이 작지 않은 비중을 점하는 특이점이 보였다. 출연자들이 내뱉는 허밍도 유사한 역할을 하였다. 공연 소재로 부각된 당시의 홀로코스트는 물론 특정한 시기와 지역에서 진행된 과거사였다. 하지만 안무자는 그런 비극의 구체적 실상보다는 그런 일이 자행되도록 조장한 이면의 요인을 짚어내면서 이 과거사가 1회의 과거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경고하였다. 그것은 언제든 현재사로 재발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안무적 판단의 저변을 이루는 것은, 집단의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면 거악(巨惡)이 시기와 지역을 불문하고 출현하기 마련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잘 알려진 ‘악의 평범성’ 개념이다.

알다시피, 악의 평범성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할 때 착상하였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친위대 장교로서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업무를 총괄한 실무책임자로서 적극 활동하였고 히틀러의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하고 결국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되었다. 아렌트는 친절한 이웃에다 성실한 관료였다는 아이히만 같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국가나 조직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순종하는 세상에서는 비록 사악한 의도가 없다 해도 스스로 홀로코스트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결론을 악의 평범성으로 개념화하였다.

〈세게, 쳐주세요〉에는 세 남성이 출연하여서 우선 단출해 보일 것 같다. 그 당시의 홀로코스트라 하면 곧바로 아우슈비츠의 참상부터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공연에서 그러한 현장은 사실상 묘사되지 않는다. 오로지 공연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은 홀로코스트 당대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의 행태와 심적 상황이다. 홀로코스트의 당사자에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방관하여 홀로코스트가 커지도록 도운 자들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소 복합적인 시각에서 조망하기 때문에 〈세게, 쳐주세요〉는 겉보기의 단출함과는 달리 다층적인 구조로 진행된다. 옴니버스적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단편들에서 홀로코스트 연루자들의 행태와 심경이 들추어지고 그것들은 관객이 되새겨야 하되 불편한 순간순간들로 밀려온다.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2026 ARKO 제공 ⓒSang Hoon Ok



그 참혹한 비극이 〈세게, 쳐주세요〉 공연의 배후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공연의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정장 차림에다 머그잔을 들고 아리아를 들으며 여유롭게 배회하는 강제수용소 간부의 모습이다. 우아하며 느긋한 분위기는 그에게 조금의 반감을 품은 듯한 하급자(아마도 유대인으로서 수용소 감시자였던 카포?)가 등장하고 어느 관리자가 서류를 갖고 들이닥치면서 깨뜨려진다. 세 사람이 서류를 보다 간부가 지시를 내리자 신문(訊問) 테이블이 갖춰지고 간부는 자신의 업무를 만방에 자랑하듯 제스처를 취한다. 머그잔을 든 채 오페라 〈비밀 결혼〉의 상쾌한 바리톤 악절을 립싱크하면서 취하는 그런 당찬 제스처들. 강제수용소의 공포스런 분위기와 상충되는 그래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은 실제 역사적 사실로 증언되곤 하며, 이는 악의 평범성에서도 반증될 것이다.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2026 ARKO 제공 ⓒSang Hoon Ok



이 도입부의 신문 현장이 정지 화면처럼 멈춰지자 스피커를 착용한 관광 가이드가 별안간 등장하여 해설하기 시작한다. “지금 보는 이 건물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도착했는지 모릅니다. 남겨진 기록들은 그들이 겪었던 혼란과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당시 수감자들의 동선과 거의 겹칩니다.” 홀로코스트 현장에서 지금도 진행될 다크투어가 재연되는 것에 더하여 당시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발해졌을 살벌한 명령들이 오버랩되면서 관객들은 수용소 내부로 인도된다.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2026 ARKO 제공 ⓒSang Hoon Ok



수용소 안에서 세 사람의 역할은 고정되지 않으며 에피소드에 따라 가변적이다. 세 사람은 주로 놀이 부류의 행태를 관객들이 보란 듯이 버젓이 펼쳐보인다. 어느 출연자가 이 공연의 소재를 소개하며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름을 내뱉으려 하자 두 사람이 입막음을 하며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 대목은 (지금도) 불편한 과거사를 은폐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너 때문이야, 나도 먹고 살아야지, 나만 아니면 돼” 같은 언사를 지껄이며 서로 엉킨다. 자기합리화와 책임 떠넘기기의 심사가 역력하다. 또한 그들은 “아돌프 아이히만” 이름을 리듬을 맞춰 읊으며 옷벗기를 하거나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손짓 게임을 벌인다. 슬랩스틱 류의 놀이에서 보듯 폭력에 대한 그들의 윤리의식은 매우 허약하다. 세 사람은 또한 아, 아 소리를 외마디처럼 외치다 신문관을 제외한 두 사람은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제곡에 따라 빠른 난장을 발작하듯 펼친다. 그러다 세 사람은 악수하고 이제는 느긋하게 흐르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제곡에 맞춰 흥겨운 춤으로 서로 어울린다. 그 배후에서는 공범들 간의 유대의식 같은 것이 흐른다.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2026 ARKO 제공 ⓒSang Hoon Ok



이후 세 사람이 뒤엉키는 빈도가 잦아지고 그들 사이의 분위기가 가까워지면서 아, 아 허밍을 길게 부르며 서로 뒤엉키고 배회하다 실신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사람이 내보일 최소한의 반응으로서 아 소리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치일 터인데, 세 사람은 수용소 안에서 저마다 인간이기를 발버둥치는 듯한 모습이다. 몸 비틀기, 경미한 발작, 몸부림 같은 동작들을 함께 하던 끝 무렵에 이르러 세 사람은 마주 서서 격하게 헐떡이다 고개를 숙인 채 느리게 밀착해서는 하나로 엉겨붙는다. 앞서 간부, 관리자, 하급자였다가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되었던 세 사람은 이제는 몸들이 축 늘어진 하나로 엉겨붙었다. 마침내 각 출연자마다 그 역할도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개인에게 그러한 역할이 뒤엉켜 잠복해 있고, 사회 구조(와 풍토)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이 좌우된다는 의미가 감지된다. 아울러, 악의 평범성에 따르면, 폭력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까지.



이은경 〈세게, 쳐주세요〉, 2026 ARKO 제공 ⓒSang Hoon Ok



세상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진상이 규명되는 데 비해 방관자의 진상은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방관자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긴다는 진단은 야릇한 역설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세게, 쳐주세요〉에서는 가해자뿐 아니라 방관자도 세게 쳐야 한다는 것이 강조된다. 이를 위해 안무자는 강제수용소와 우아한 클래식, 강제수용소와 슬랩스틱, 가해자와 피해자 같은 상충되거나 어긋난 것들을 병치시키는 발상으로 세게 치기를 의도하였다.

이항대립의 장치들을 통하여 유발되는 당혹감과 관객이 무작정 감정이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두도록 하는 서사극 기법은 〈세게, 쳐주세요〉를 돋보이도록 하였다. 서사극 기법으로 관객은 당혹스런 무대 동향을 마주치는 상황에서 외면, 자기합리화, 공범 의식으로 무장된 방관자까지 목도했을 것이다. 여기서 방관자가 남 이전에 먼저 관객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인식까지 가능했을지 관객마다 다를 듯하다. 이와는 별개로, 공연에서 제시되는 단편들의 정돈과 그것들 간의 균형, 주제 움직임의 부각, 가해자·피해자·방관자의 유형 구별(특정 출연자가 특정 페르소나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대사의 전달 면에서 손볼 점도 있었다. 악의 평범성이 투영된 춤 공연이 국내 무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데 비하여, 그것이 무대에 투영되어야 할 가치는 크다. 세상의 갈수록 우려스런 상황을 방관하고 말 것인가. 세게 쳐야 할 것이다, 줄곧.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6. 5.
사진제공_2026 ARKO , Sang Hoon Ok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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