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숲은 푸르렀으나, 길은 익숙했다
김태희_춤연구자

올 상반기는 무용 공연 중에서도 유독 발레가 화제였다. 스튜디오 웨인 맥그리거·베자르 발레 로잔·몬테카를로 발레 등 해외 단체가 내한해 대표작을 공연했고,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곳곳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국내 무대를 찾았다. 5월과 6월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와 맞물려 다양한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국립발레단은 웨인 맥그리거의 2008년 작 〈인프라(Infra)〉를 국내 초연했고, 같은 시기 서울시발레단은 신작 〈In the Bamboo Forest〉(2026년 5월 15~17일, 세종M씨어터)를 발표했다.

발레를 주목하는 시선이 뜨거운 만큼, 세 살배기 서울시발레단의 행보 역시 가열하다. 해외 안무가의 프로덕션을 적극 들여오는 동시에 단체의 고유한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In the Bamboo Forest〉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출발해 안무가로 자리매김한 강효형과 협업해 내놓은 1시간 길이의 작품이다. 제목에 드러나듯 대나무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국악기 선율을 채택했다. 프롤로그와 6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번민하는 자가 대나무 숲에서 자연과 마주하면서 치유를 경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양적 특성이 뚜렷한 소재를 선택하고 음악과도 연결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뚜렷하게 만들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무대 배경을 대나무로 둘러싸고, 의상 또한 푸른 색감과 흙의 빛깔을 주로 사용하면서 부챗살·발 등으로 사용되는 대나무의 속성을 특징적으로 살렸다. 작품 제목을 모르고 관람하는 관객일지라도 주제를 단번에 파악했을 것이다.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세종문화회관



장별로 파드되와 군무 등 춤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의상을 계속해서 갈아입고 등장하는 덕에 작품은 지루할 틈 없이 다채롭게 흘러간다. 시폰 재질의 순백 의상을 입은 두 커플의 파드되(1장)에서 초록색 코르셋 의상을 입은 여성 앙상블(2장), 이어 군무로 확장(3장)한 뒤 피부색 하의만 입은 남성들의 역동적인 군무(4장)로 전환하는 구성은 안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특정 모티프나 서사성보다는 한국적 미감을 강조하고자 했는데, 이는 강효형이 2015년 첫 안무작 〈요동치다〉를 발표한 이래 10여 년간 꾸준히 추구해온 스타일이기도 하다. 걸출한 안무가와 스펙터클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자신만의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 ‘한국적’인 지점을 선택했다는 것. 이는 서울시발레단이 그를 신작 안무가로 낙점하는 데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세종문화회관



작품은 안무가가 꾸준히 추구해온 움직임 스타일을 훌륭하게 구현했다. 발레 동작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기보다는 리듬에 맞춰 동작의 맺고 끊음을 강조해 극적으로 보이도록 한 안무가 두드러졌다. 특히 거문고의 대점에 여성 무용수의 힘 넘치는 움직임이 어우러져 만드는 앙상블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여성 무용수의 안무가 상대적으로 풍성하고 독창적인 데 비해 남성 무용수의 안무는 다소 약해 보인다. 발레 움직임의 특성을 살린다기보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통용되는 여러 역동적인 동작을 짜임새 있게 엮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남녀의 파트너십은 춤을 이룬다기보다 여성을 들어올리기 위한 존재로 남성 무용수를 제한하는 느낌이다. 또한 안무가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매력이 발레라는 춤 언어가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선과 토슈즈의 사용에서 비롯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작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토슈즈 워크는 발레슈즈를 신고 소화한 장면보다 다소 역동성이 부족해 보였다.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세종문화회관



거문고 연주자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는 박다울이 작곡한 무용음악은 대체로 춤과 잘 어울렸으나 장별 편차가 심했다. 타악 리듬을 강조한 2장의 음악은 여성 무용수 다섯 명의 움직임과 더할 나위 없이 밀착했으나, 대금 선율과 인성을 강조한 6장의 음악은 마치 사극 드라마의 사운드트랙을 감상하는 듯했다. 극적 기승전결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지 풍성함을 더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알 수 없으나, 좀 더 치밀하게 덜어낸다면 춤과 작품 전체를 돋보이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세종문화회관



우리 발레계의 뛰어난 성취임에는 분명하나, 안무가 강효형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도 있었다. ‘한국적’으로 통칭하며 포함하고 있는 여러 요소, 이를테면 한국춤의 호흡, 의상의 소재와 색감, 실루엣, 국악기와 장단의 사용 등은 안무가의 고유한 스타일인 동시에 약점으로도 보인다. 뛰어난 안무가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함께 작업하는 단체 혹은 무용수와 긴밀히 호흡하며 작품에 그들의 색깔을 덧입힌다. 하지만 〈In the Bamboo Forest〉는 안무가가 그간 국립발레단과 긴밀하게 작업해온 결과물, 특히 〈허난설헌-수월경화〉 〈호이 랑〉 같은 전막 작품과 차별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연작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안무는 물론, 무대 연출 면에서 유사성을 띤다. 차별화를 위해 한국적인 요소를 택했다고 하지만, 단적으로 춤에서 ‘대나무’라는 소재를 품기 위해 피해야 할 클리셰가 얼마나 많은가. 대나무를 공간에 들일 때는 린화이민이 안무한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 〈Bamboo Dream〉(2001)의 이미지를 지울 수 있어야 하며, 남성 무용수들이 대나무 장대로 도움닫기해 뛰어오르려면 국립무용단 〈묵향〉(2013)과 서울시무용단 〈일무〉(2022) 속 죽무를 넘어섰어야 한다. 그렇다면 발레라는 세계 보편의 춤 언어를 두고 민족성을 지향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진정 맞는지 질문해본다. 도리어 ‘한국적’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걷어낼 때, 비로소 세계가 한국만의 색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세종문화회관



또한, 작품의 구상과 주제는 여전히 시대에 동떨어져 있다. 안무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작품이 이 사회에서 번민하는 남성과 그를 치유하는 자연과 같은 존재로서 여성의 구도로 보이는 것은, 그리하여 마치 낭만발레의 현현과 같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상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라는 주제를 선정하고,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이야기할 것인지 프로덕션 차원의 좀 더 깊은 고민이 함께했다면 안무가가 이전까지 발표해온 작업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결과물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발레단이 짧은 시간 남긴 궤적에서 볼 때 〈In the Bamboo Forest〉는 분명 괄목할 성취다. 2024년 창단을 기념해 전막 규모의 〈한여름 밤의 꿈〉(안무 주재만)을 대극장에 펼쳤고, 그해 가을엔 중극장 규모의 〈백조의 잠수〉(안무 차진엽)를 공연했으며, 올해 또 한 편의 신작을 완성해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작품들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이제는 초연에 그치지 않고 레퍼토리로, 또 해외 무대에서 서울시발레단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거듭나는 작품의 성장기에 함께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김태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무용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으며,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SPAF 젊은 비평가상으로 등단했다. ​​

2026. 6.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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