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밤 공기는 차갑고 낮 공기는 뜨거웠던 5월에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2026년 ‘세실풍류’가 막을 올렸다. 네 번째 기획인 올해의 타이틀은 ‘득무의 순간 이 시대 전통춤’. 전통춤이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재에 다시 태어날 것이며, 우리 춤을 만나는 고품격 전통춤시리즈라고 표방했다. 작년 3년차 공연이 큰 호응을 받았기 때문인지 연장선상에서 유사하게 프로그래밍되었다. 그리고 명무부터 중견 신진 춤꾼까지 한 무대에 모여 세대와 계보를 잇는 연대기적 작품이 펼쳐진다는 기획 의도를 밝혔다.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계열의 전통춤 작품들을 ‘세실풍류’에서 볼 수는 있었다.
올해의 ‘세실풍류’는 4월 29일부터 5월 15일까지 6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37명의 무용가들이 초대되었다. 필자는 2회의 공연을 관람했는데, 5월 1일 공연에 김연정(이애주승무보존회 회장)의 〈태평춤〉, 이미희(서정춤세상 예술감독)의 〈서정시나위〉, 박종필(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박종필류 덧배기춤〉, 정신혜(신라대 교수)의 〈별신〉, 하예송(예송춤타예술원 대표)의 〈구음학춤〉, 황순임(전통공연예술문화학교 교수)의 〈비선무(飛仙舞)〉가 무대에 올랐다. 작품마다 특색이 있었으니, 박종필의 〈박종필류 덧배기춤〉은 관객에게 대사를 던지며 시작하였고, 판을 열어놓고 춤추었다. 남성춤의 품새가 보였고, 노련한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구음학춤〉은 부채를 들고 추는 학춤이었는데, 후반에는 한량무의 특성이 강했다. 김연정의 〈태평춤〉은 경기도당굿 가락에 도당굿 무구를 차례로 들고 추었던 고 이애주의 〈태평춤〉을 재구성한 춤이다. 작품의 주제나 구성으로 보아, 당일 공연 프로그램에서 중후반에 배치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작품이었던 황순임의 〈비선무〉는 연륜과 안정감으로 그날의 춤판을 마무리해 주었다. 앞선 작품들이 창의의 아이디어들에서 저마다 색다르고 다소 산만했지만, 황순임의 〈비선무〉는 기존 전통춤에서 여성 홀춤의 틀거리와 정조를 지키며 춤의 연륜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김연정 〈태평춤〉, 이미희 〈서정시나위〉 ⓒ국립정동극장 |

|
박종필 〈박종필류 덧배기춤〉, 정신혜 〈별신〉 ⓒ국립정동극장 |

|
하예송 〈구음학춤〉, 황순임 〈비선무(飛仙舞)〉 ⓒ국립정동극장 |
5월 15일에는 주진희(평양검무 이수자)의 〈운현(韻絃)〉, 이수현(조선락광대 대표)의 〈이수현류 소고춤〉, 전진희(서울시무용단원)의 〈허튼 시나위(허튼의 결 몸에 스미다)〉, 김유미(경남무형유산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의 〈산홍(붉은 산호의 노래)〉, 장래훈(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의 〈장래훈 작 한량무〉, 신미경(예술단 ‘결’ 단장)의 〈검무랑〉, 장유경(대구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의 〈선살풀이춤〉이 추어졌다. 주진희의 〈운현〉은 전립을 쓰지 않고 독무로 구성한 검무였다. 검무 본연의 칼사위를 추다가 의연하게 멈추기도 하고, 조명이 포커스를 잡아 공간을 집중시키면서 무언가 숨어있는 복선을 상상하게 했다. 이날 추어진 또 하나의 검무로 신미경의 〈검무랑〉은 무예 검과 춤을 결합한 작품이었다. 초반에 무예 동작을 훈련하는 듯 춤추다가 2개의 장검을 들고 본격적으로 검무가 추어졌다. 조선후기에 의협(義俠)을 추구했던 여성 낭인(娘人)이 검(劍)과 무(舞)를 넘나들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검술이나 춤에 있어서 일정 수준의 기량을 갖추어야 춤출 수 있는 작품이며, 초연 시기에 비해 춤은 진중해졌다. 이수현은 〈소고춤〉에서 끈소고를 능숙하게 놀렸으며, 장단에 능숙한 만큼 장단의 배를 다양하게 조직하고 완급을 조절하며 춤추었다. 장유경의 〈선살풀이춤〉은 부채 손잡이에 살풀이 수건을 연결하여 구성한 작품으로, 이미 여러 무대에서 추어졌다. 흰 의상과 소품 일체, 그리고 크고 원초적인 춤사위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부채에 수건을 감았다가 다시 푸는 과정이 핵심이며, 쾌자를 뒤로 젖힌 채 번갈아 뒷발질하는 동작은 동해안 무녀의 춤사위에서 가져왔다. 전통춤으로 살을 풀어내는 춤의 또 다른 전형을 창출했다.

|
주진희 〈운현(韻絃)〉, 이수현 〈이수현류 소고춤〉 ⓒ국립정동극장 |

|
전진희 〈허튼 시나위(허튼의 결 몸에 스미다)〉, 장래훈 〈장래훈 작 한량무〉 ⓒ국립정동극장 |

|
김유미 〈산홍(붉은 산호의 노래)〉 ⓒ국립정동극장 |

|
신미경 〈검무랑〉, 장유경 〈선살풀이춤〉 ⓒ국립정동극장 |
근래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봄마다 진행하고 있는 ‘세실풍류’는 매년 전통춤계의 공연 시즌을 개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관객들을 봄바람과 함께 극장 세실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통춤에 창의(創意)를 더해 전통춤의 컨템포러리를 제안한다니 궁금하고,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올해의 ‘세실풍류’에서도 기존에 발표했고 관객의 호응을 받았던 작품들과 신작으로 초연한 작품들도 있었다. 초연한 작품들이 아무래도 불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이 관객에게 첫 번째 검증을 받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춤 무용가로 하여금 전통춤에 대한 접근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춤꾼이나 관객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획 내지 연출에 있어서 세심함의 부족이다. 이미 새로 만들었거나 만드는 전통춤 작품에 대해서 팜플렛에 전혀 설명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려진 전통춤 종목들이라면 혹시 생략할 수도 있겠으나, 이 기획은 전통춤 무용가들이 일정한 아이디어를 얹어서 새로운 전통춤을 만드는 작업이므로, 작품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전통춤 작품을 통해 무용가의 생각이 드러나며, 관객 또한 이해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자의 멘트만으로는 부족했다. 초연 시기와 반주자에 대한 정보도 팜플렛에 담아야 한다. 이미 발표한 작품이라면 초연 연도를, 이번에 초연하는 작품이라면 ‘2026년 초연’이라고 밝히면 된다. 스승으로부터 전승된 춤이 아니라, 새롭게 구성하고 안무한 전통춤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회 공연 프로그램의 배치 과정에서 각 작품의 특성과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연출적 판단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한 37개 작품 중 두 개의 검무 작품을 15일 공연에 왜 같이 배치했는지도 의문이다. 즉 무용가들과 관객들이 최상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연출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새로운 전통춤에 대한 관심과 함께 내년의 ‘세실풍류’를 다시 기다려 본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