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양승관 〈Alpha〉
근원을 향한 도전, 멈추지 않는 질문
김혜라_춤비평가

솔로와 듀엣 소극장을 주 무대(〈홍시〉, 〈Mille Moules〉, 〈Sole〉, 〈Try again, Fail again〉)로 꾸준히 안무 역량을 쌓아온 양승관의 대극장 데뷔작인 〈알파〉(6.13~14,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는 자전적인 질문들을 무대 위에 투영하는 과정이다. 생명, 사랑, 인간과 자연, 관계와 순환 등 존재의 근원을 향한 묵직한 화두를 통해 젊은 안무가가 삶을 반추하며 나아가는 모색의 여정을 보여준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무대 중앙, 남성 무용수의 손길로 화초가 다듬어지고 바닥으로 뿌려진 흙은 대지의 기반을 다진다. 무용수는 흙이 되고 나뭇잎이 되기도 하며 생명력을 입은 사물의 물성을 몸짓으로 펼친다. 한쪽에서 비스듬히 쏟아지는 조명은 마치 따스한 햇살처럼 나무 위로 내려앉고, 그는 빛과 일체화된 연기로 〈알파〉가 품은 생명의 서사를 조심스럽게 연다. 5분의 1만 열린 막, 사람의 형상보다 흙의 존재감과 소리의 파동을 강조하기 위한 이 좁은 틈새로 숨소리와 음절들이 물리적 박동처럼 원초적인 질감으로 번져 나간다. 일렬로 자리한 흙더미 너머에서 “하나 둘 셋”, 방울소리, 박수와 함께 라틴어 어근을 빌려 조합된 언어들은 “Om, Hu, Ka (우리의 가장 오래된 숨결은,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깃들며), Tos, Ego, Amor, Alpha (선한 나의 사랑은 근원에서부터 강하게 존재한다)”는 맹세가 되어 무용수들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작품을 관통하는 신념이 된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카르미나 부라나’의 강렬한 선율이 퍼지면, 무대는 붉은 조명 아래 혼돈의 몸짓과 분열상으로 뒤덮인다. 흙더미 속 두 무용수는 나뭇가지를 입에 문 채 서로를 의지하며 무대를 휘젓는다. 이들이 내뱉는 괴성과 격한 감정의 분출은 원초적 욕망과 본성을 드러내며, 자연 앞에 선 유한하고 나약한 인간의 실존을 대면하게 한다. 흙에서 자라나 자연의 일부가 된 무용수들의 방황은 곧 우리가 흙과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임을 수용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극명한 대비로 내면을 파고든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서정적인 선율에 맞춰 외로움을 춤으로 표현하는 무용수가 있는가 하면, 한 켠에서는 무미건조하게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며 또 다른 결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러한 대조는 적막속에 표류하는 인간군상을 파편적으로 드러낸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이후 ‘라데츠키 행진곡’과 함께 무용수들은 각자의 리듬을 되찾으며 집단적 환희에 찬 축제의 장으로 전환한다. 마치 과거 중세 마을 공동체 시공간을 무대 위로 소환한 듯하다. 황색 톤의 의상이나 디자인에 기인한 인상이다. 멈춰 선 무용수들이 스스로의 감정에 침잠한 뒤, 각자의 언어로 삶의 의미를 읊조리고 박수를 치며 찾아가는 고유의 리듬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무대 중앙에 물이 분사되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흙에 심는 행위는 새소리와 어우러지며 유토피아적 귀환을 암시한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고유한 생명력이 회복된 시점이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양승관의 작업은 인류 보편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야심 찬 도전으로 원초적 제의성과 공동체의 결속, 혼돈과 질서의 충돌을 씨어터적 요소로 형상화한다. 다만 내용의 전개를 위해 사용한 말과 연극적 설정이 내적 몰입을 방해해 아쉽다. 춤이 아닌 말로 의미를 한정 짓는 방식은 극적 서사 측면에서는 유효할 때도 있으나 사유의 공간을 좁히기도 한다. 무용수들의 몸짓이 연기에 밀려 스스로 의미를 생성해 나갈 여백이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사랑’, ‘근원’, ’생명’이란 상념들이 관객의 마음에 머물기도 전에 휘발되어 버린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흙은 인상적이나, 이와 연계된 나뭇가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증명하는 매개체로서 힘이 부족하다. 극적 반전을 꾀할 방황의 장면들도 그 골이 깊지 못해 후반부 회복의 의지와 맹세 또한 설득력이 약해졌다. 회복의 역동성은 결국 방황의 깊이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대 위 장치들은 소재의 관습적 상징성을 서둘러 구현하는 데 머물며 기시감을 남긴다. 익숙한 소재를 뒤트는 전략이나, 말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춤 사이의 치밀한 변증법적 고민이 필요하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대지의 생명력이나 인간의 필멸성을 은유하는 흙, 나뭇가지, 물 같은 직관적인 오브제는 해석이 쉽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자칫 상투적인 클리셰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이 익숙한 소재들과 연기, 대사, 음악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지가 관건이다. 최근 관람한 알렉산더 에이크만의 〈한여름밤의 꿈〉의 연출력과 제작 환경은 우리 춤계가 당면한 과제를 환기한다. 극장춤이 선사할 수 있는 몰입과 시각적 전율은 철 지난 방법론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스펙터클은 관객에게 대체 불가능한 상상력과 만족감을 준다. 안무가의 구상을 완성도 있게 구현해 내는 해외의 제작 환경과는 달리 국내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알파〉속 오브제들이 다소 조심스럽게 다뤄진 배경에는 안무가의 연출 경험치 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나 무대 환경의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극장의 규모에 걸맞은 무대 미학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제작 기반에 대한 유연한 대책이 필요하다.







양승관 〈Alpha〉, 양승관댄스프로젝트 제공 ⓒ옥상훈



그럼에도 양승관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화려한 테크닉에 매몰되어 본질은 텅 빈 허상을 좇는 최근의 세태와는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제와 내용을 놓치지 않고 삶의 근원을 붙들기 위해 생명의 속성을 진지하게 탐색했다. 물론 서사의 엉성함이나 서툰 장르적 결합도 눈에 띄나, 삶을 아우르는 거시적 주제의식은 토탈아트(Total Art)적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한 총체적 언어로서 움직임과 연극적 요소들의 유기적 결속을 시도했다. 쉽지 않았을 한 시간의 대극장 데뷔전을 치른 그가 향후 어떤 선명한 춤의 언어를 피워낼지 기다려 보자. 결국 춤이란 삶을 향한 완벽한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그 과정을 지켜볼 만하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장.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6. 7.
사진제공_양승관댄스프로젝트, 옥상훈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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