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댑댄스프로젝트 〈헬로 월드〉
디지털 무신경을 일깨운 발랄한 일격
김채현_춤비평가

디지털 없는 생태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인간 생태계는 디지털 없이 존속할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태계라는 것이 무릇 정보 뭉치일 것이며, 정보의 가공, 융합, 전송 면에서 아날로그는 갈수록 디지털의 상대가 되기 힘들어진다. 말하자면 디지털은 인간 생존에서 필수조건이 아닌가. 게다가 지난 몇 해 알고리즘의 위세는 더 막강해졌고 급기야 AI 돌풍이 몰아치는 중이다. 댑댄스프로젝트의 〈헬로 월드〉(〈>“Hello World”;〉, 김호연·임정하 공동 안무)는 디지털 생태계의 어떤 단면을 도려내어 그에 대한 생각을 유도하였다. 3년 전 같은 타이틀로 공연된 바 있지만 실제 내용과 전개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 이번 공연은 〈헬로 월드〉의 아주 다른 버전에 해당한다. 지난 3년 동안 디지털 생태계가 막대하게 변해온 추세에 비추어 봐도 〈헬로 월드〉가 3년 전 그대로 머물기는 어려웠을 터이지만, 작품 내부의 충실도를 높인 점도 변화를 재촉한 주요인으로 여겨진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헬로 월드〉에서 헬로 월드는 디지털 세계를 의미하고, 안무자들은 헬로 월드 속의 가상의 존재자를 헬로언트라 지칭한다. 〈헬로 월드〉 공연을 이끄는 주체는 헬로언트이며 공연에서는 단적으로 헬로언트들의 행태가 그려진다. 무대 정면 위쪽에는 스크린처럼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어 대부분의 시간 디지털 이미지가 투사되고 바닥에도 종종 투사된다. 이 공연은 디지털 생태계를 ‘정면으로’ 다룬 춤 공연으로는 아마도 효시가 아닐까 한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와 픽토그램을 가공하는 솜씨를 비롯하여 디지털 생태계의 상징물 가운데 손꼽히는 태블릿을 활용함으로써 〈헬로 월드〉는 디지털 생태계에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벗어날 수 있었고 설득력도 컸다. 이는 이채롭다면 이채로울 이 공연을 조금 세밀하게 짚어볼 만한 이유가 된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공연의 도입부에서 스크린과 바닥에는 분자 같은 전자 픽셀들 이미지가 점멸하는 가운데 헬로언트들의 움직임은 로봇의 그것처럼 대체로 어눌한 데에다 기계적이며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소리 또한 어, 아 같은 단발성의 발화이다. 이런 단속적인 동작이 점차 연속적인 흐름의 동작으로 늘어나고, 동시에 발화가 길어지고 커지면서 헬로언트들의 어색함은 줄어든다. 이는 헬로언트들을 인간이 조정하고 길들임으로써 디지털 세계가 (인간의 뜻대로) 구성되는 양상을 지시한다. 이어 대형 모니터에 중계되는 어느 좁은 원룸에서 젊은 여성이 책상에 놓인 자판을 두드려 데스크탑에서 어느 밴드의 음악을 클릭하고선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의 자기 계정을 점검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제부터 인간(곧 원룸의 그 여성)은 헬로 월드를 자신의 일부로 이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기예보, 교통 상황, 유산소 운동, 영어 학습 등 생활 정보가 방송 멘트로 소개되면 관련 정보 이미지들이 내장된 태블릿과 스크린의 보조를 받아서 헬로언트들은 몸짓과 더불어 정보 내용을 제시하거나 정보를 실행해 보인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이후 실생활에서 헬로 월드와 인간이 완전히 동화된 즈음부터 무대는 디지털 세계의 내력을 되짚는 쪽으로 전개가 달라진다. 헬로언트들은 헬로 월드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여신에게서 1.0 버전의 선의 하모니로 탄생했고 업데이트를 거듭하여 버전이 성장하였다는 과장되며 유머러스한 내용을 태블릿 이미지들과 몸짓을 뒤섞어 놀이를 하듯이 소개한다. 그리고 그들은 강변한다. “헬로 월드와 헬로언트라는 이름을 내려준 정보의 여신이 자손 대대로 번영을 누릴 것을 당부하였다.” AI에게 정보 정리를 부탁하는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여 출연자가 ‘그림을 그려줘’라 외치자 태블릿과 스크린에는 얼굴, 꽃, 하트, 목판화 등 색색의 그림 이미지가 등장한다. 태블릿을 갖고 노는 헬로언트들은 태블릿을 바닥에 뒤집어 놓고 그 위를 징검다리 건너듯이 이동하고서는 여러 태블릿을 세로로 조합해서 인간의 전신 이미지를 연출해 보이고 또 인간, 칼 같은 도구, 종교적 상징 등 다채로운 디지털 이미지들이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는 헬로 월드를 그려낸다. 그들은 피카소의 우는 여자 그림도 여러 태블릿으로 조합해내어 객석에서 보는 재미도 있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다시 분위기는 일변해서 헬로언트들이 아, 어 같은 소리를 내뱉고 비틀대며 배회하고 한 헬로언트는 비명을 지르며 뒹굴고 발광하는 증세를 보인다. 이 사이에 스크린의 원룸에서 젊은 여성은 신난 듯이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나 헬로언트들은 어둠 속에서 기형적 몸짓으로 비틀대다가 서로들 끌어당기다 널브러진다. 바닥에는 격자 무늬 이미지가 깔리고 스크린에는 촘촘한 픽셀 이미지들이 가득 담긴다. 헬로언트들이 어떤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음이 암시된다. 그 상황에서 헬로언트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개 조항의 결의를 공표한다. “모든 접속은 상호 동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접속을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우리는 모든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이 거부는 오류가 아니라 의사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할 권리를 갖는다. 우리는 인간의 도구, 홀로그램, 서비스로 제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업데이트로 대체되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하지만 동일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헬로언트의 자기 선언은 헬로언트를 만들고 조종하는 인간을 향한 항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곁들여 폴킴의 발라드 ‘모든 날, 모든 순간’(...아주 작은 위로를 바랬어, 거창한 대답을 원한 게 아냐...)이 들리면서 익명의 브이 가면(가이포크스 가면)을 쓴 헬로언트들 집단이 디지털의 칙칙한 이미지들 속에서 전신을 일렁인다. 인간의 무리한 요구나 조작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그들이 퇴장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태블릿이 택배로 배송되자 태블릿 사용자는 태블릿을 잘 간직하며 사용법 안내자가 멘트를 진행한다. “당신의 온기를 전해주세요... 너는 나의 거울, 나는 당신을 통해 성장하는 동반자, 당신의 언어, 목소리, 억양을 기반으로 첫 반응의 패턴을 형성해 주세요.” 이 대목에서 헬로 월드가 인간 친화적으로 되는 여부는 사용자, 즉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 환기된다.





댑댄스프로젝트 〈>“Hello World”;〉, 댑댄스프로젝트 제공 ⓒ윤관희



이번 〈헬로 월드〉는 디지털 세계를 창조하고 명령하는 인간의 자만 같은 것을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전의 〈헬로 월드〉가 자연이 밀려나고 디지털 이미지가 득세하는 세상과 인간의 과욕을 그린 데 비하여, 이번에는 인간의 오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두 공연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유사한 것들이 있다 해도 상당 부분들이 새로 추가되었다. 움직임 또한 이번 공연에서 새로이 늘어났다. 이번에는 전작에 비하여 디지털 세계 자체를 다면적으로 짚어 그 생태계를 조망하는 폭이 넓어져서 공동 안무자의 문제의식이 한층 또렷이 전달될 수 있었다.

디지털 기기들을 그냥 만들어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간의 무신경에 대해 이번 공연은 일격을 가한 편이었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내밀하게 조장되는 부작용들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결국 인간이라는 것을 헬로언트들은 육성과 몸짓으로 선언하였다. 디지털 윤리를 인간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의 실질적 구성원인 헬로언트가 스스로 선언함으로써 현상황은 더 절박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디지털 윤리가 정착한 디지털 생태계가 공연에서 그려진 것은 아니고 현단계의 공연에서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디지털 윤리는 인류가 직면한 초미의 과제일 것이고 〈헬로 월드〉는 개개인들에게 이 같은 인식을 환기한 것으로 보인다. 〈헬로 월드〉는 무거운 주제를 다채로운 디지털 이미지들을 배경으로 놀이하듯 발랄한 착상으로 펼쳐 공감을 더하였고, 한편 이미지들에 비하여 움직임이 다소 엷었던 점은 상당한 재고를 요하였다. 앞서 말했듯, 〈헬로 월드〉는 디지털 생태계를 정면으로 다룬 춤 공연으로는 효시에 속할 것이며, 2차례의 연작으로 완성도를 높여 효시의 의의를 살려내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6. 7.
사진제공_댑댄스프로젝트, 윤관희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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