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기구 유네스코(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의 중요 사업 중 하나는 유 ‧ 무형의 인류 문화유산 보호이다. 산하단체 ‘세계유산위원회’는 보편성과 더불어 뛰어난 가치를 가진 유물 ‧ 유적 ‧ 자연물의 등재와 보호방안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다가오는 칠월, 제48차 위원회가 부산에서 개최되며(7월19-29일, BEXCO), 196개 국가가 참여한다. 세계유산보호를 선도하는 위원회의 부산 유치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도시였던 부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1)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복미경)은 위원회 개최를 기념하며, 정기공연작 〈접-삶이 춤이로다〉를 무대에 올렸다(5월29일-30일). 총 4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나비를 삶과 죽음을 잇는 상징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삶의 경로(죽음-노년기-청년기-생명탄생)를 따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춤과 노래를 배치한다. 불교의례 영산재(靈山齋)의 〈나비춤〉 ‧ 〈바라춤〉 ‧ 〈법고춤〉, 〈탈춤〉과 〈강강술래〉, 민요 〈아리랑〉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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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1장 소멸의 외침〉은 한 사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지막한 언덕길을 따라 나비를 연상시키는 여인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한참을 지켜보면 남자는 말없이 퇴장한다. 이윽고 좌우로 길게 도열한 여인들이 〈나비춤〉을 춘다. 불교의식무의 하나로,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영산재에서 행해지며, 여타 의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무(對舞)로 진행되는 〈나비춤〉은 단순한 패턴 ‘전진하기-회전하기-원래 자리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앉아서도 하는데, ‘엎드리기-좌우로 몸통 돌리기-절하기’의 반복이다. 석봉스님(경남무형유산 불모산영산재 범음범패‧법고무 보유자)의 묵직한 구음과 함께 진행된 춤은 보편적 패턴을 충실히 따른다 할 수 있으며, 정제된 동작, 화려한 복식(흰 장삼, 황색과 녹색 대령을 드리운 붉은 가사, 높다란 고깔, 양손에 든 붉은 꽃), 절도 있는 대열 변화를 통해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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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2장 늙음의 회환〉은 한 노인이 언덕에 올라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탈춤〉 한 대목이 펼쳐진다. 지역에 따라 들놀음(野遊), 오광대, 산대놀이, 탈춤, 덧뵈기 등등으로 불리는 가면무로, 춤과 노래와 연극이 혼합된 형태이다. 민중의 삶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데,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영감 할미 과장’이다. 줄거리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허름한 할미가 영감을 찾아 헤맨다. 마침내 둘은 조우하지만, 첩으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영감의 발길질로 할미가 허망하게 죽고 만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감 할미 과장’은 처첩간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비극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할미의 대사와 몸짓을 면밀히 살피면, 사뭇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할미의 삶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다. 젊은 날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 삼형제의 어이없는 죽음을 줄줄이 목도해야 했으며, 첩으로 인해 또다시 버림받는다. 그런데 할미는 매순간 낙담하지 않는다. 힘차게 엉덩이를 흔들며, 고난과 좌절을 딛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간다. 이 같은 서사구조는 탈춤뿐만 아니라, 이 땅 여인들의 길쌈 노동요에서도 흔히 발견된다.2)
작품은 할미의 내밀한 삶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처첩간의 갈등에 방점을 두고, 유머러스한 소극(笑劇)으로 개작한다. 특히 말미에 사자가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죽었던 할미가 살아나 사람들과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리고 영감의 ‘한바탕 잘 놀았네. 백중날이 다가오니 밀양의 호미씻기하는 곳으로 가자’라는 대사로 마무리된다. 이어 일군의 무리가 나타나서 밀양백중놀이의 〈오북춤〉을 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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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밀양백중놀이는 일 년 농사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를 모두 마치고, 신나게 놀아 제치는 마을 단위의 굿이다. 영감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호미씻기라고도 하며,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영남, 호남, 충남 등지에 두루 분포했다. 깃대를 세워 농신(農神)에게 제사하고 각종 놀이판과 춤판을 벌이는데, 말미를 장식한 것이 〈오북춤〉이다. 농사꾼 다섯의 흥겨운 북춤으로, 사람들의 신명을 불러일으켜 집단 뒤풀이 장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작품에서 〈오북춤〉은 〈밀양아리랑〉과 함께 연희 되었다. 이용만(국가무형유산 밀양백중놀이 전승교육사)과 신명숙(동 종목 이수자)의 노래가 길게 이어졌으며, 군무와 장기자랑용 개별 춤이 즐비하게 나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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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흥겨웠던 춤이 마무리되고, 〈3장 젊음의 질주〉가 시작된다. 언덕 위에 한 사내가 달리고 또 달린다. 걸음을 멈춘 남자는 분주하게 컴퓨터 좌판을 친다. 그러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외친다. 청년기를 상징하는 그의 모습은 어둠 속에 묻히고, 〈강강술래〉로 이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무로, 설 ‧ 대보름 ‧ 단오 ‧ 백중 ‧ 추석 ‧ 9월 중구의 밤에 연희되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추석에 행한 것으로, 달이 뜨는 이른 밤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노래의 매 소절 마다 ‘강강술래’라는 후렴을 부르며 빙글빙글 도는 〈강강술래〉는 느린 진양장단, 중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진행된다. 그런데 노래를 이끄는 선창자에 따라 다른 장단을 삽입하기도 하고, 노랫말이나 속도를 자유롭게 변형하기도 한다. 이로써 춤의 동작과 속도 역시 다채롭게 변화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각종 놀이(남생이놀이,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덕석말이, 쥔쥐새기놀이, 대문놀이, 가마등밟기, 수건찾기, 봉사놀이)를 첨가하여 신명과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품에서 선보인 〈강강술래〉는 강태홍류 〈산조춤〉을 혼합한 창작이다. 전반부는 여성적 미감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산조춤〉에, 중반부는 둘의 혼융에 강조점이 있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후반부는 〈강강술래〉에 주안점을 두고 대형을 다채롭게 변주하며, 몇몇 놀이를 섞기도 한다. 〈강강술래〉와 〈산조춤〉은 느린 진양장단에서 점차 속도가 빠른 중모리, 중중모리로 이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하나는 마당이나 들녘에서 민중의 유희본능을 직접적 ‧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또 다른 하나는 방안이나 무대에서 개인의 정한(情恨)을 지극히 절제된 표현으로 구현한다. 상반된 두 춤의 결합을 통해 감지된 이미지는 무엇인가? 여성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도드라지는 원무(圓舞)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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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이어지는 춤은 〈바라춤〉이다. 불교의식무의 하나로, 의례 공간을 정화하여 신성한 공간으로 전환 시키는 구실을 한다. 서양악기 심벌즈(cymbals)와 유사한 바라를 들고 추며,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보다 제자리에서 진행된다. 단순 동작의 무한 반복인데, 하체는 회전, 전진, 굴신이 주를 이룬다. 상체는 바라를 앞뒤로 가르거나, 모으거나, 올리거나, 양팔을 일자(一字)로 벌리는 것이다. 작품에서 선보인 〈바라춤〉은 이 같은 기본 동작을 무대에 적합하도록 정제했으며, 번쩍이는 황금빛 바라와 함께 대열을 절도 있게 변화시켜 차분함 속에 시각적 풍성함을 제공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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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바라춤〉이 마무리되자, 굵직한 피리 선율이 청각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커다란 법고(法鼓) 앞에 불교음악과 의례를 대표하는 어산어장(魚山魚丈) 동희스님(국가무형유산 영산재 전승교육사)이 서있다. 그가 선보인 〈법고춤〉은 북춤의 하나로,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극락세계로 이끈다는 의미를 갖는다. 앞서의 〈나비춤〉 ‧ 〈바라춤〉과 함께 영산재를 비롯한 여러 불교 의례에서 행해지며, 이들 춤을 묶어 작법(作法)이라고 한다.
스님의 〈법고춤〉은 격렬한 북가락으로 정서를 절정으로 몰아붙이는 〈승무〉의 법고와 다르다. 코끝을 향해 내향(內向)하는 시선과 자세, 비정비팔(比丁比八)의 단정한 디딤새,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한 몸짓으로 간간이 북을 칠뿐이다. 단순하고 고요한 그의 춤은 신묘한 몰입감과 정서적 울림을 만들며 이어졌고, 인간적 색채가 짙은 〈승무〉와는 결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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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4장 생명의 탄생〉은 언덕 위에 한 사내가 다시 등장하여 아이의 출산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동희스님의 〈화청〉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불교성악곡(梵唄)의 하나로, 일반 민중들이 잘 알고 있는 민요 가락에 불교 교리를 쉬운 말로 풀어서 부르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를 설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작은 등불을 든 사람들이 등장하여 절을 하거나 기도한다. 그리고 객석 관객들도 미리 받은 등불을 켜고, 각자의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노래가 마무리될 즈음 〈나비춤〉의 나비와 〈궁중학무〉의 청학과 백학이 등장하여 화평한 춤을 추고, 합장한 스님이 그 주변을 감싸 돌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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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접(蝶)-삶이 춤이로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옥상훈 |
1시간25분가량 진행된 작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부산 유치를 알리고,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우리 춤과 노래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공력을 다해 다듬은 동작, 민천홍의 격조 있는 의상, 김철희의 세련된 조명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석봉스님, 동희스님, 일우스님(진관사수륙보존회 범패, 작법 강사)이 직접 참여하여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불교음악과 춤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증진시켰다. 뿐만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이용만과 신명숙의 흥겨운 밀양아리랑을 맘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 속에서도 아쉬움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삶과 춤의 상관관계를 그리고자 했다. 때문에 각 장 서두에 한 남자가 등장하여, 인간의 죽음, 노년기의 회한, 청년기의 질주, 생명의 탄생을 명료하게 알려 준다. 그리고 각종 춤이 펼쳐지는데, 죽음과 탄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노년기를 대표하는 것이 왜 하필 〈탈춤〉과 〈아리랑〉인지, 또 청년기를 대표하는 춤이 왜 〈강강술래〉를 비롯한 〈바라춤〉와 〈법고춤〉인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이로써 삶과 춤의 관계는 모호해지고, 각 장 서두는 불필요한 사족이 되며, 작품 전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춤과 노래의 정치(精緻)한 배열로 다가선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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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란도시 부산유산 홈페이지. https://www.busan.go.kr/wartime_capital/index
2) 조동일(1983). 『서사민요연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57-162.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