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직도 텐트 치고 짐 정리에 몇 시간 걸리는 오토 캠핑이 주변에서 흔한 와중에 캠핑은 차박, 글램핑, 미니멀 캠핑, 백패킹...으로 분화하고 있다. 보편적 라이프스타일로서 길떠나는 설렘으로 꿈꿔지는 캠핑이 그러나 며느리 명절증후군에 못지않은 고역으로 시종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다만 며느리 명절증후군은 비자발성에서 기인하는 데 비하여 캠핑에서의 고역은 한 가정 내 부부의 자발적인 행동임에도 고역이 되고 만다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런 현상을 고블린파티는 공연작 〈부부〉(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6월 26~27일)의 단서로 착안하였다. 공연 소재인 어느 부부의 캠핑에서 여성이 수시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는 모습은 오늘 우리의 자화상으로 수긍되면서 잔잔히 공감을 끌어내었다. 고블린파티는 춤계에서 10년 전의 〈옛날 옛적에〉부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해왔고 〈부부〉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었다.
공연 제목 부부의 뜻은 중의적이다. 공연 단체가 앞에 내세운 타이틀은 영어 booboo이고, 대수롭지 않은 상처를 뜻한다. 그 발음의 한국어 뜻은 다 아는 그대로이다. 〈부부〉가 겨누는 것은 부부나 가족 사이에 있음 직한 작은 상처, 즉 일방에게는 대수롭지 않겠으나 일방에게는 상처로 남는 그런 류의 상처이다. 이 점을 더 확대해 보면 공연작 〈부부〉는 그 같은 상처가 쌓이고 쌓인 세상에 들이대는 진단서로 수용될 법하고, 실제 객석 현장에서의 공감대에서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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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파티 〈부부〉, 고블린파티 제공 ⓒ장재훈 |
〈부부〉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정경들이다. 부부가 캠핑 왜건을 끌고 들어오고 짐을 부리던 도중 소낙비를 만나 다시 비닐 우의 차림으로 등장해서 텐트를 치고 캠핑 도구들을 늘어놓는다. 접이식 벤치와 비치 체어, 휴대용 바비큐 화로가 놓이고 장작을 서로 전달해 쌓는다. 그러나 이 모든 정경들이 물 흐르듯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진즉 짐이 잔뜩 실린 왜건을 갖고 들어올 때부터 두 사람의 걸음은 느렸고 시선은 아래로 쳐졌으며 서로 말도 없이 도구들을 내려다 놓았고, 한 마디로 분위기는 스산하고 캠핑과는 어색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부부가 우의를 입은 채 빗방울을 털어낼 적에도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서로 말이 없는 것은 여전하고 한참 동안 우의에서 빗방울을 털어내는 손짓 팔짓은 점차 맹렬해져서 손이 우의를 스쳐 내는 마찰음이 음향 효과의 일부를 이룬다. 이 부부는 평소 감정이 불화의 임계치에 도달한 터에 마침 소나기를 만난 통에 그 순간의 격한 몸짓들로 폭발한 것 같다. 부부가 부둥켜안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거쳐 캠핑 장난으로 돌아가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척척 맞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자잘한 도구들을 비치하려는데 남자는 제 흥에 취하다 눈치가 보여 멈칫하고 남자가 비치 체어에 몸을 기댄 채 느긋이 저 혼자만 음료수(혹은 알코올?)를 마실 동안 여자는 벤치에서 안절부절한다. 남자가 잠들 동안 여자가 눈가에 티슈를 갖다 대는 데 이어 두 사람이 바닥에서 허우적대면서 이미 캠핑의 놀이 분위기는 제대로 바스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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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파티 〈부부〉, 고블린파티 제공 ⓒ장재훈 |
그렇더라도 부부는 벤치에서 꽤 오래 소통 모드로 서로를 토닥였고 텐트를 쳤으며 바비큐 작업에 들어갔다. 바비큐 화로와 장작 사이에 앉은 것을 시작으로 화로에 장작을 얹는 다양한 움직임들을 펼치던 중에도 무표정한 긴장감은 여전하다. 부부는 장작들을 무질서하게 내던지고 갑자기 캠핑 소품들까지 미련 없이 내팽개치는 모습을 함께 연출한다. 캠핑의 완전한 포기와 냉랭한 배회. 다시 수그러진 분위기에서 부부는 텐트 입구에 앉아 서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텐트 속으로 기어든다. 바비큐는 더 진행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 부부의 캠핑에서 캠핑의 일반적인 설렘에 부합하는 것은 남자가 음료수를 마신 것과 두 사람이 텐트에서 잠잔 것,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지퍼를 잠근 두 사람만의 텐트는 그들대로의 기운에 따라 함께 꿈틀댄 끝에, 다행이라 해야 할지 급전(急轉)이라 해야 할지, 텐트에서 ‘응애’ 아기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부부 사이에 사랑은 있었고 삶은 굴러갈 터이다. 아기가 선사하는 그 해피엔딩으로 앙금이 씻은 듯 사라졌을지, 공연이 남긴 여운(餘韻)이다.
공연 도입부에서 왜건을 당기고 미는 과정, 우의를 손바닥으로 스쳐대는 장면은 길게 느껴졌으며, 그런 느낌은 평면적인 전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들이 평면적이지 않고 생생하도록 변화들이 더 첨가되었어야 하였다. 이에 비해 공연작은 중반 이후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텐트를 활용하여 그것에다 캐릭터 역할을 부여한 점은 〈부부〉 공연에다 방점을 찍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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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파티 〈부부〉, 고블린파티 제공 ⓒ장재훈 |
텐트는 〈부부〉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부부〉의 소재인 캠핑을 선명하게 환기하는 텐트의 움직임은 두 차례 있었다. 모두 그 안에서 노닥대는 부부의 움직임을 따라 텐트도 함께 움직였는데, 공연 중반에 부부의 격정을 표출하듯 가벼운 재질의 텐트는 코믹하게 요동치며 격하게 뒹굴었고 공연 마무리 부분에서 텐트는 꿈틀대었다. 텐트의 격상이라 할 만큼 텐트는 그 부부의 동반자가 된다.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응용하면서 피지컬한 춤을 지속해온 고블린파티다운 순간으로 각인된다. 같은 맥락에서, 트래킹 쇼츠 차림의 두 사람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양다리를 서로 포개어 겹치고 풀기를 반복하는 것, 그리고 화로에다 장작을 얹을 때 양팔의 위치와 움직임 속도를 달리하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상대에게 장작을 전달하는 장면에서 고블린파티의 트레이드마크는 줌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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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파티 〈부부〉, 고블린파티 제공 ⓒ장재훈 |
텐트에서 아기울음 소리가 나온 데 이어 텐트 좌우에서 각자의 팔이 하나씩 슬쩍 삐져나와서는 서로 손을 맞잡는다. 부부의 몸체와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까닥이는 맞잡은 손의 손가락들은 그 무엇을 갈구하거나 약속하는 느낌을 전한다. 맞잡은 손은 다시 과자 봉지를 쥐어뜯어 크래커를 꺼집어내어 그것을 텐트 위로 던지고, 텐트 위에 안착한 크래커를 부수어 공중으로 털어올리니 크래커는 바닥으로 비산한다. 부모의 양육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위트는 바비큐 도구인 가스 토치와 점화기를 들고 사격 연습을 흉내내는 놀이에서도 재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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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파티 〈부부〉, 고블린파티 제공 ⓒ장재훈 |
공연의 상당 부분에서 두 출연자는 상대의 것과 유사한 동작을 반복하는 미러링을 수시로 펼쳤다. 서로 동조하며 교감을 표현하는 이 움직임들에 힘입어 〈부부〉는 일반적인 듀엣 차원을 더 건너뛰고선 일테면 버디 댄스(buddy dance)로 뻗어나갔다. 놀이 같은 분위기로 소환될 때뿐만 아니라 불편함이 표출될 적에도 버디 댄스는 이어졌다. 두 사람만 출연해서 짝을 이루어 움직임으로 호흡을 척척 맞추고 교감함으로써 짝꿍춤은 춤의 묘미를 살려낸다. 우리 주변에서 버디 댄스는 사실 흔치 않다. 공연에서 두 사람 간에 호흡이 맞고 더 나아가서는 짙은 표현의 대목과 관련하여 그들이 실제 부부인 점이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짐작은 상당히 제한적인 듯하고, 이보다는 고블린파티다운 발상의 연속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부부〉는 삶의 우연을 직시할 것을 권한다. 대부분 사소한 그 우연들은 유사한 것들끼리 엮여 때를 만나 삶의 큰 변수로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삶은 예기치 않은 사태를 품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일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이 실상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진실. 잔잔한 반주음으로 소담하게 진행되는 〈부부〉에는 이처럼 서늘한 진실이 감춰져 있다. 이것이 고블린파티의 코믹과 위트가 던지는 그 여운의 실체가 아닐까. 10년 동안 그들의 아크로바틱 댄스는 변신을 모색해왔고, 그것은 〈은장도〉 〈초상달〉에 이어 〈부부〉에서 확장되었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