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원장 서승미) 무용단이 기획공연으로 〈춤, 화찬(畵讚)〉을 7월 16, 17일에 풍류사랑방에서 공연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직전 예술감독이었던 김충한이 연출과 안무를, 무용단 안무자인 박성호가 대본을 맡았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함께 연주했다. 필자는 15일의 프레스 공연을 보았다.
우선 공연 제목이 눈길을 끄는데, ‘화찬(畵讚)’은 그림에 얹는 찬(讚)을 말하며, 찬은 말(言)로서 기리거나, 칭찬하거나, 밝힌다는 뜻이다. 그림 한편에 시문(詩文)을 남기는 제화시(題畫詩)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 공연은 춤으로 화찬을 한다는 의미이니, 조선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1758~1814)의 그림들을 기리고 다시 보며, 현재적 해석을 춤으로 표현한다는 창작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공연 프로그램북에는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를 필두로 〈월하정인(月下情人)〉, 〈유곽쟁웅(遊廓爭雄)〉, 〈쌍검대무(雙劍對舞)〉, 〈노상탁발(路上托鉢)〉, 〈청금상련(聽琴賞蓮)〉, 〈무무도(巫舞圖)〉, 〈사시장춘(四時長春)〉이 첨부되었다. 그림들에는 다양한 계급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상황 내지 갈등이 묘사되었으며, 그림의 감정선들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이 그림들은 얼마든지 전후 과정을 떠올리고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신윤복의 그림들에는 기녀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춤, 화찬’은 그림의 주인공인 기녀와, 그 기녀를 그렸던 화공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다. 기녀의 이름은 보배이고, 그 시대에 화공과 기녀의 사랑을 테마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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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앞의 혜원 ⓒ국립국악원 |
작품은 일곱 개의 획, 즉 7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획은 기억, 두 번째 획은 처음 만남, 세 번째 획은 만유(漫遊), 네 번째 획은 재회(再會), 다섯 번째 획은 밀약(密約), 여섯 번째 획은 비정(非情), 마지막 획은 너이려니 나이련 듯으로 이어진다. 첫 장면에서 신윤복 역할의 김진우(무용단 부수석)가 〈미인도〉 앞에서 붓을 들고 춤추었다. 굴곡진 전개를 예고하는 프롤로그였다. 이어서 공터에서 놀이판이 벌어지는데 탈춤꾼 취발이와 소무가 등장하고, 법고를 밀고 들어온 2명이 중춤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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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발이와 소무의 탈춤 ⓒ국립국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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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漫遊)에서 기생과 아낙들 ⓒ국립국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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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의 〈입춤〉 ⓒ국립국악원 |
아낙과 기생들, 그리고 양반들이 등장하면서 〈부채 산조〉와 〈한량무〉 등이 추어지고, 주인공 보배 역의 박경순(무용단 수석)의 〈입춤〉 독무가 추어졌다. 그 풍경을 신윤복이 눈에 담고 있는데, 강대감이 보배를 눈여겨 보고, 보배의 아버지 칠성이와 강대감이 거래를 한다. 하지만 보배는 신윤복을 마음에 두고 월야(月夜)에 재회하여 2인무를 추고, 연정의 징표로 꽃신을 주고받으며 밤이 무르익는다. 장면이 전환하여 강대감이 본격적인 연회를 벌리자 〈검무〉, 〈수건 입춤〉, 〈장고춤〉 등이 추어지는데, 보배가 기녀로서의 수청을 거절하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고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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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과 보배의 월하 2인무 ⓒ국립국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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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의 수건 입춤 ⓒ국립국악원 |
신윤복은 보배를 찾아 길을 떠나고, 남루한 복색으로 은거한 보배와 결국 재회하지 못한다. 무대에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보배가 등장하지만 이는 상상 속의 모습일 뿐, 신윤복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여한을 남성 3인과 함께 4인의 살풀이춤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신윤복은 다시 〈미인도〉를 마주하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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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살풀이춤〉 ⓒ국립국악원 |
무용극 〈춤, 화찬〉에 대해 김충한은 연출의 변에서 신윤복의 화폭들을 보고 있으면 그림 밖의 시간이 궁금해졌고, 그림이 미처 담지 못한 시간을 춤으로 이어보고자 했다고 하였다. 신윤복의 그림들이 무궁한 상상력과 함께 각 그림의 에센스를 춤으로 표현하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춤계에서 신윤복의 그림을 소재로 한 시간 남짓 전통춤 무대를 만들었던 춤판들이 있었으나, 대개는 그림 속의 춤을 현재의 전통춤으로 추어내는 단편적인 구성이었다. 그러나 〈춤, 화찬〉은 조선후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여러 인물들과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설정하여 풀어냈다. 의미있는 시도였으며, 여러 역량들의 가동이 가능한 국공립 단체로서 해야 할만한 기획이었다.
다만 이러한 규모의 무용극을 구현하기에는 풍류사랑방이 적합하지 않았다고 본다. 반주단을 객석 앞으로 옮겨 무대를 가능한 넓혔으나, 각 춤을 효과적으로 펼치기에는 비좁았다. 등퇴장의 동선 특히 가장 바깥 무대를 돌아서 등퇴장하는 동선도 보기에 편치 않았다. 또한 반주석에 앉았던 연주자들이 진행에 따라 바로 무대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동선은 연출적 복안이 있었어야 했다. 무대를 제대로 갖추었다면 주인공 외에 강대감과 태대감, 칠성이, 무녀의 서사와 표현도 더 효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립국악원에는 예악당 외에 무용 공연에 적합한 극장이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그럼에도 몇몇 춤 장면들은 기억에 남았다. 재인의 모습을 표현한 취발이와 소무의 탈춤은 작품 흐름에 맞게 재안무되었고, 탈을 얼굴에 착용하지 않은 채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다시 소품으로 사용하면서 춤추었다. 표현의 주체를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었다. 3인이 추었던 〈수건 입춤〉은 깔끔하게 구성되었고, 짧은 수건을 들고 추면서 기녀라는 캐릭터가 잘 드러났다. 또한 신윤복과 보배의 사랑의 징표로서 꽃신이 사용되었다. 꽃신은 전통공연예술 중 무용극 한량무라든가 봉산탈춤 등에서 연정(戀情)을 상징하는 기제였으니, 이를 〈춤, 화찬〉의 전개에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윤복을 포함하여 4인의 남성 살풀이춤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였다. 주인공 신윤복의 내면을 살풀이춤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리고 이를 여성이 아닌 남성의 춤으로 군무화한 것이다. 김진우의 독무로 시작하여 4인 군무로 확대되었고, 춤의 정조는 처연한 비애(悲哀)가 아니라 침착한 비개(悲慨)였다. 남성 살풀이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언젠가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신윤복 그림을 다시 기리며, 무용극으로서 무대를 갖추고 춤으로서 구성지게 화찬하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