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코레오 커넥션〉
〈코레오 커넥션〉이 펼쳐 보인 세 가지 몸짓 감각
최찬열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의 2026년 〈코레오 커넥션〉(5월 4~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 2)은 서로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세 안무가의 작품을 한 무대에서 소개하고, 각기 다른 창작 환경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들의 안무 메소드가 병존하고 교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동시대 한국 현대춤의 다양성과 춤 생태계의 확장 가능성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만의 고유한 안무 방법론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이남영과 신승민, 그리고 김유진은 각각 경계와 변형, 관계라는 서로 다른 문제의식을 무대장치와 공간, 빛과 소리, 오브제와 움직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장면들을 통해 특색 있게 형상화한다. 곧 이번 공연은 지역성을 외형적인 특징이나 전통적인 정체성의 형식으로 내세우는 대신에, 각 지역의 창작자가 그동안 축적해 온 자기만의 감각과 방법론을 통해 눈에 띄게 달리 구현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이번 공연은 바로 그러한 차이가 한 무대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세 작품은 서로 닮지 않았고,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였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탐색하는 몸, 관계를 재구성하는 몸, 환경과 더불어 확장되는 몸이 한자리에서 교차하면서, 동시대 춤이 신체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그것의 잠재적 힘을 다채롭게 펼쳐내는지를 보여주었다. 요컨대 지역과 중앙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넘어 각각의 장소에서 생성되는 여러 몸짓 감각이 평등하게 만나면서,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런 차이들의 연결망 자체가 동시대 한국 춤의 새로운 지형도로 자리 잡는 것. 바로 그것이 〈코레오 커넥션〉 공연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이남영의 〈무-호흡〉: 경계를 탐색하는 몸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남영의 〈무-호흡〉은 세련된 감각과 정제된 표현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또한 숨이 가빠지거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듯한 여러 상황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호흡’과 ‘무호흡’ 사이의 불안정한 경계 상태를 선명하게 가시화하는 점도 무척 인상적이다. 회색 계열의 의상과 무대 바닥에 놓인 네모난 판들은 간결하고 절제된 공간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안과 밖, 안정과 불안정, 생명과 그 너머 사이를 구획하는 일종의 경계 장치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춤꾼들은 물에 빠졌다가 어렵사리 헤쳐나온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맹렬히 달리다 사점(死點) 이른 듯 풀썩 쓰러지며, 빠르게 두 팔을 휘저어 수영하거나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한다. 곧 몹시 급박한 사건적인 상황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일련의 작은 움직임들이 섬세하면서도 정교하게 펼쳐지는 공연이다.



이남영 〈무-호흡〉,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또한 공연에서는 호흡의 변화가 움직임과 공간을 새롭게 조직하는, 세밀하게 조율된 미장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호흡은 단순한 생리적 현상을 넘어 작품 전체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춤꾼들은 숨이 차오르고, 호흡이 막히며, 몸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 지점에 내몰리는 듯한 상황을 연출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결코 수미일관한 하나의 인과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곧 각각의 장면은 독립적인 사건처럼 출현했다가 사라지고 곧바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그런 점에서 〈무-호흡〉은 단속적인 사건적 순간에 놓인 몸의 다양한 반응과 상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병치하고 연결하는 공연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에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생명의 조건을 새삼 낯설게 실감한다.



이남영 〈무-호흡〉,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여기서 〈무-호흡〉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공연은 재현과 사건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진행된다. 관객이 특정한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현적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그 장면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춤꾼들의 거친 호흡은 질식이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생을 지속하려는 격렬한 에너지처럼 감각되기도 한다. 바둑판처럼 구획된 무대 바닥 역시 이러한 의미의 불확정성을 강화한다. 그것은 몸을 특정한 영역 안에 가두는 경계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위태롭고 불완전한 몸이 잠정적으로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안정적인 토대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춤꾼들은 바닥을 이루던 네모난 판들을 뜯어내어 세우고,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돌출된 형태로 재배치한다. 이제 바닥은 더 이상 안정적인 기반이 아니다. 그것은 손에 들리는 사물이 되고, 놀이의 도구가 되며, 공간을 새롭게 구획하는 가변적인 물체로 변한다. 몸과 사물이 함께 공간의 질서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이처럼 공연은 의미의 단서를 제시하지만, 그 의미는 어느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계속 미끄러진다. 재현은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사건은 다시 그 재현의 의미를 흔들어놓는 것이다. 재현성과 사건성이 수시로 교차하며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독특한 공연이다.



이남영 〈무-호흡〉,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이 때문에 〈무-호흡〉에서 드러나는 경계는 단순히 서로 대립하는 두 항을 갈라놓는 실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죽음으로, 질서가 무질서로, 정지가 움직임으로 이행하는 순간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구성되는 희미한 경계 지대로 보인다. 말하자면 경계는 이미 존재하는 두 항을 나누는 선이라기보다 하나의 상태가 계속 변해가는 과정에 속하는 생성과 변화의 장소이다. 호흡 역시 그러하다. 들숨과 날숨, 채움과 비움, 긴장과 이완은 서로 명쾌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통과하며 순환한다. 이를테면 살아 있다는 것은 어느 한쪽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경계 지대를 넘나드는 이행을 지속하는 일인 셈이다.



이남영 〈무-호흡〉,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무엇보다 이남영은 이러한 존재론적 문제를 잘 짜진 스토리텔링이나 상징적 장치에 의존해 드러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움직임의 질감과 호흡의 변화, 공간의 구획, 무대장치와 오브제의 감각적 활용을 통해 재치 있게 드러낸다. 요컨대 〈무-호흡〉은 때로는 이미 정해진 의미를 춤으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몸과 공간, 사물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상황 속에서 의미가 사후적으로 발생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신승민의 〈메타모포시스〉: 관계를 탈-구축하는 몸

두 번째 작품인 신승민의 〈메타모포시스〉는 몸을 독특한 방식으로 운용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다섯 명의 춤꾼이 무대 뒤쪽 배경막 가까이에 모여 서서 온몸을 요란하게 떤다. 어떤 특별한 의도도 드러나지 않고, 특정한 형태를 이루지도 않는 움직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들은 마치 공간 속으로 흩어지기 직전 제자리에서 세차게 요동치는 작은 점들처럼 보인다. 그러다 떨림은 점차 주변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춤꾼들이 팔을 길게 뻗고, 서로 연결하거나 다른 방향을 잡으면 점이었던 몸은 선을 생성한다. 다시 여러 선이 서로 만나고 어긋나면서 공간 안에 일종의 면과 형태가 만들어진다. 점-선-면으로 이어지는 조형적 변화는 〈메타모포시스〉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를테면 공연 제목이 의미하는 ‘변형’은 단순히 한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관계가 형성되고 해체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신승민 〈메타모포시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그런데 떨림과 형태의 관계는 우연과 구조의 관계에 대한 유비로도 읽힌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우연과 구조의 관계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한다. 떨리거나 흔들거리는 하나의 몸은 독립적인 개체처럼 존재하지만, 다른 몸과의 거리와 방향이 달라지는 순간 전혀 다른 집단적 형상을 구성한다. 한 춤꾼이 팔을 뻗는 작은 움직임 하나도 그 몸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의 다른 몸과 공간 전체의 형태를 바꾼다. 또한 하나의 몸은 구조에 흡수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가 된다. 반면에 구조는 안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흩어지고 만나고 멀어지고 다시 접속하는 몸들에 의해 형성되는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구성체이다.





신승민 〈메타모포시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특히 이 공연에서 흥미로운 점은 계속해서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움직임의 질감이다. 팔과 다리를 뻗거나 몸통을 이용해 기하학적 형태를 만드는 동작은 자칫 지나치게 형식적이거나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춤꾼들의 움직임에 묻어 있는 떨림과 긴장이 끊임없이 구조를 뒤흔든다. 곧 기하학적 질서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신체가 유발하는 우연성이 한 무대에서 충돌하는 셈이다. 때문에 〈메타모포시스〉가 보여주는 변형은 완성된 하나의 구조나 형태로 귀착되지 않는다. 몸은 계속해서 잠정적인 형상을 만들었다가 그것을 다시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중에서 독특한 몸짓 감각들이 매우 인상적으로 현시된다.



신승민 〈메타모포시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요컨대 〈메타모포시스〉에서 다섯 몸은 하나의 통일된 구조를 재현하기보다 만남과 분리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다른 구조를 생산한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지만, 그 면은 다시 선과 점으로 흩어진다. 이 공연에서는 바로 그 지속적인 이동과 순환, 형태 변형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핵심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김유진의 〈메타 소마〉: 세계와 공명하는 몸

마지막으로 김유진의 〈메타 소마〉는 사건적 성격이 한층 강한 작품이다. 공연 초반, 마치 수명을 다해가는 형광등처럼 조명이 몇 차례 깜빡인 뒤 무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흰 배경막과 흰 무대 바닥, 그리고 그 위에 흰 의상을 입은 춤꾼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 앉거나 서 있다. 그리고 무대는 전체가 거의 단일한 백색으로 채워져, 현실의 구체적인 장소라기보다 아직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어떤 추상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순백의 공간은 결코 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마치 조그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춤꾼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미세한 변화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한 사람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것이 새로운 움직임을 발생시킨다.



김유진 〈메타 소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춤꾼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조명과 음악 역시 춤을 꾸미는 배경이나 보조 장치에 머물지 않고 춤꾼의 움직임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공연 중반 한 춤꾼의 목소리와 춤추는 몸의 공명이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며 극장 전체로 퍼져 나가는 장면은 이 공연의 백미이다. 이를테면 공연은 춤꾼의 몸을 중심에 놓고 소리와 조명, 음악과 무대가 그것을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 외려 〈메타 소마〉에서는 그 위계가 느슨해지거나 무너진다. 빛이 변화하면 몸이 달라지고, 소리가 발생하면 움직임의 속도와 공간의 감각 역시 달라진다. 무엇이 일차적인 원인이고 무엇이 파생적인 결과인지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인간 신체와 비인간 신체가 평등하게 만나 정동을 주고받는 관계가 시종일관 형성되는 것이다.





김유진 〈메타 소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이 지점에서 〈메타 소마〉는 현대 사유가 제기하는 질문과 흥미롭게 만난다. 인간만이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아니라 사물과 빛, 소리, 공간 같은 비인간적 요소 역시 관계망 속에서 일정한 힘을 행사한다는 관점이다. 무대에서 움직이는 것은 춤꾼들뿐이지만, 실제 공연을 끌고 가는 것은 몸과 빛, 소리와 공간 전체의 상호작용이다. 공연은 의도된 안무에 종속된 신체를 보여준다기보다 여러 ‘체’(body, 體)들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계로 확장하는 몸을 현시한다.



김유진 〈메타 소마〉,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den Hwang



‘메타 소마’라는 제목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소마(soma)’가 몸이라면 ‘메타 소마’는 기존의 신체 개념을 넘어서는 몸을 암시한다. 그것은 피부로 경계 지어진 자족적인 육체가 아니다. 빛을 받아들이고 소리에 반응하고 다른 몸의 움직임에 감응하면서,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고 뒤섞이는 신체이다. 요컨대 이 공연에서 몸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형성되는 사건의 장인 셈이다.


지역성 이후의 커넥션

잘 알려져 있듯, 이번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중심의 지역 주도 균형성장 전략은 수도권 중심의 1극 체제를 해체하고, 지역이 스스로 성장의 주체가 되는 구조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초광역 협력과 지역 주도 사업의 실행 기반을 강화하고 있으며, 문화정책에서도 지역 간 수평적 협력 확대와 지역 현장 중심의 문화권 육성을 중요한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레오 커넥션〉은 이러한 정부의 지역 불균형 해소 및 지역 주도 균형성장 정책과 연계하여 사업의 방향과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무용 창작과 유통, 공연 기회의 불균형을 완화한다는 관점에서, 지역 안무가의 작품을 일회적으로 소개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각 지역이 독자적인 창작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교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과 지역, 지역과 국립 기관이 서로 민주적으로 연결되는 수평적 협력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리서치와 레지던시, 공동창작과 지역 간 순회공연, 후속 유통 등을 연계함으로써, 각 지역에서 생산된 창작 역량이 축적되고 다른 지역으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부가 지향하는 지역 주도 성장과 지역 간 초광역 협력이라는 정책 방향을 춤 예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코레오 커넥션〉은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지역에서 형성된 고유한 감각을 서울의 관객과 춤계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작품이 서울이라는 주요 유통의 장에서 가시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관객 및 예술계와 대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 창작자들의 활동 반경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춤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에 지역을 단지 주변부가 아니라 독립적인 창작과 생산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복수의 거점들이 상호 연결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역 불균형 해소라는 정책적 목표와 〈코레오 커넥션〉 사업의 예술적 취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일 것이다.

최찬열

한국춤과 현대춤, 전통춤과 탈춤을 추었다. 국립모스크바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소속 민족인류학연구소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다시 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6. 10.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Aiden Hwang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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