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백봉 100년 공연
신무용의 현재화와 동시대성의 과제를 화두로 내놓은
‘김백봉,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루다’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김백봉춤보전회(회장 안나경)가 주최하고 김백봉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 유옥재)가 주관한 〈김백봉,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루다〉 공연이 9월 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1926년 이시이 바쿠의 내한공연으로 산정한 신무용 100년과 1927년 김백봉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고자 기획된 공연이었다. 20세기 중후반 한국무용계에 신무용의 큰 획을 그었던 김백봉(1927~2023)의 제자들과 또 그 제자들이 마련했으며, 예술총감독을 양성옥(태평무 예능보유자)이 맡았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프롤로그, 1부 은하수 : 춤의 우주, 2부 축제 : 춤추는 생명 유산, 3부 해후 : 춤의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이 구성을 연결하는 영상과 낭송(朗誦)이 각 부 사이에 있었으니, 낭송을 맡은 양성옥이 각 대목에서 김백봉의 신무용사적 위상과 공연의 의미를 전달했다. 이러한 구성 틀에서 김백봉의 대표적 신무용 작품들이 프로그래밍되었고, 각 작품의 책임지도와 재안무를 김백봉의 제자들이 맡았다. 〈선의 유동〉을 안병주(경희대학교 교수)가, 김백봉의 장고춤에서 〈타의 예〉는 안병주가, 〈여인화사〉는 임성옥(국가유산진흥원 예술단 예술감독)이, 〈김백봉 화관무〉를 안병주가, 김백봉의 무당춤인 〈광란의 제단〉을 김경회(강원대학교 교수)가, 〈청명심수〉를 정은혜(정은혜 민족무용단 예술감독)가, 〈김백봉 부채춤〉을 안병주가 재안무했다.



〈여인화사〉 ⓒ김백봉춤보전회



〈김백봉 화관무〉 ⓒ김백봉춤보전회



〈광란의 제단〉 ⓒ김백봉춤보전회



각 작품들은 새로운 감각을 선보이고자 했고, 인상적인 지점들이 있었다. 〈선(線)의 유동(流動)〉은 신무용에서 보이는 여러 인물춤들과 달리 이미지를 추상화시킨 창작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신무용이 창작춤으로 넘어가는 단초를 보여주는 대표작이었고,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김백봉의 장고춤인 〈타(打)의 예(藝)〉와 〈여인화사(女人華奢)〉를 별도로 드러낸 점은 각 장고춤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김백봉 화관무〉는 예악당의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사용하고 궁중무 〈무고〉까지 결합시켰다. 그 규모와 버라이어티에서 88올림픽 당시 개막공연으로 이천명이 춤추었던 화관무가 떠올랐다. 〈광란(狂亂)의 제단(祭壇)〉은 무당춤 하면 떠오르는 주제의식들 – 의식, 죽음, 한, 액살 등을 무당춤 앞뒤의 브릿지 장면으로 창작하여 추가하였다. 〈청명심수(淸明心受)〉는 원래 독무 작품인데, 독무로 추다가 2인무로 또 군무로 재구성했다. 다른 색 의상을 입은 2인무가 인상적이었으며, 2인은 자아와 타인이 보는 자아인 듯도 했고, 스승과 제자의 모습인 듯도 했다. 〈김백봉 부채춤〉은 중앙의 꽃봉오리 장면을 상수에 배치하여 흔히 보았던 부채춤의 구성에서 살짝 일탈하였다. 당일 무대에 올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중규모 인원으로 펼친 부채춤이었다. 화려하면서도 격식을 갖추어 진행된 ‘김백봉,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루다’의 공연에 무용가 김백봉의 제자들 뿐 아니라 관객들도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청명심수(淸明心受)〉 ⓒ김백봉춤보전회



〈김백봉 부채춤〉 ⓒ김백봉춤보전회



이 공연에서 읽을 수 있는 기획 포인트는 신무용의 현재화 내지 동시대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원작을 고스란히 무대에 올리지 않고, 김백봉의 제자들에 의해 모두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개의 춤 작품들이 무대에 따라 소소하게 재구성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제자들이 현재의 미의식을 적극적으로 가미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방향성이 신무용에 생명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으며, 또 전체 구성에서 조명 아웃 없이 각 작품을 연결하는 연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춤 공연에서 차지하는 영상의 비중을 줄였다는 점도 위에서 말한 기획의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는 근래 여러 춤 공연에서 춤의 표현을 압도하고 있는 영상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는 점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의상도 신무용의 전형적인 의상에서 약간씩 변형하였다. 한복의 저고리 소매 끝을 넓혀서 나풀거리게 했으며, 치마는 굵은 기계 주름을 잡아 매끈하게 흐르게 하거나, 층이 지게 디자인하기도 했다.



피날레 〈해후〉 ⓒ김백봉춤보전회



이러한 변화들이 가능했던 배경은 신무용이 창작 정신을 바탕으로 발화(發花)된 근대춤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백봉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최승희의 춤을 계승한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아마 제가 어딘가에 (최승희) 선생님 같은 데가 있겠지요. … (하지만) 선생님 춤을 그대로 춘 것은 하나도 없어요.”(문애령 대담, 『한국현대무용사의 인물들』, 눈빛, 2001, 91p. 괄호는 필자 주.) 라고 답한바 있다. 김백봉은 최승희에게 기법만 배운 것이 아니라 창작 정신을 습득하여 작품 활동을 했으며, 김백봉의 제자들 역시 김백봉의 창작 작업을 수십년간 지켜보았었다. 그렇게 신무용의 창작 정신은 이어졌으나, 이번 공연에서 귀밑까지 손을 내렸다가 다시 끌어올려 뻗는 신무용의 전형적인 팔사위는 둔화되어 있었다. 신무용의 본체와 미적 특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신무용의 기법에 대한 관찰과 분석 작업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해는 이시이 바쿠가 경성에서 다양한 신무용을 공연한 1926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이고, 이를 기점으로 설정한 신무용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물론 1926년 이시이 바쿠의 공연이 신무용이 수입된 해이지, 한국 신무용의 기점이 아니라는 관점도 다수 있다.) 한국춤평론가회의 심포지움이 있었으며, 신무용의 작품들을 재조명하고 그 위상을 재정립하고자 기획된 『전통과 모던의 만남 신무용』(보고사)의 발간도 있었다. 현재 한국춤계의 여러 흐름 속에서 이번 공연은 신무용의 현재화와 동시대성의 과제를 화두로 내놓았다고 하겠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6. 10.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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