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무늬만 굿이 된 무감서기
김혜라_춤비평가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무감서기〉(9.10~13,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서울굿의 역동적인 과장인 ‘무감서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본래 서울굿에서 무감서기는 무녀가 굿을 의뢰한 이에게 직접 신복을 입혀,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고통을 마주하고 문제를 돌파해 내는 능동적 치유의 과정이라는 점이 특색이다. 무감서기가 지닌 주체적 영신(迎神)과 자력적 해방, 신명을 일으키는 춤을 통해 동시대 개인이 처한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하겠다는 기획 의도는 유의미하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전체 작품의 내용은 단출하다. 굿에서 쓰이는 오방색에 기반하여 흑·황·청·적·백의 색채마다 '눈물'이라는 정서를 투영하며 자기 극복의 과정으로 진행한다. 한국 전통에서 오방색은 우주적·주술적 장치로서 부정적인 액을 막고 복의 기운을 염원하는 상징 체계다. 이러한 오방색을 의상에 적극 차용하여 춤의 정조와 어우러지게 하려 한 것이다. 특히 이 오방색이 난장과 통합으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주요 해결책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막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대하게 펼쳐진 무대는 흥미로운 기획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윤혜정 감독의 명확한 의도 아래 영상감독을 비롯해 음악, 의상, 소도구 등 이름 있는 연출진이 가세하고, 팬덤을 지닌 젊은 외부 무용수이자 안무가 기무간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기획 의도에 상응하는 무감서기의 핵심을 붙드는 힘이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남긴 헛헛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성의 있게 준비했다고 하나, 문제는 ‘무감서기’의 내용과 에너지가 작품 안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특히 전통 오방색의 만능적 효험이라는 피상성에 기댄 의존도가 과하다. 창작진은 오방색을 치유와 해결의 상징으로 비교적 단선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색의 상징에 깃든 우주적 질서와 만물의 순환이라는 철학은 춤의 움직임 속에서 충분히 체화되지 못한 채, 주로 시각적 이미지 차원에서 제시되는 데 머문다. 우리가 ‘전통의 현대화’ 필요성을 숱하게 말하나 참으로 쉽지 않은 과제다. 그것은 전통춤에 대한 깊은 연마와 연구를 바탕으로, 오늘의 언어로 다층적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나, 명쾌한 정답이 없기에 창작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이 부분에서 여러 매체의 협업은 단기간에도 상당한 외형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알맹이인 춤 정체성이 흐려진다면, 그 작업을 결코 온전한 성공이라 판단하기 어렵다. 공공의 지원을 받는 단체는 더욱 그러하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이 작업에서 무녀의 등장은 상당히 신격화되어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설정된 무녀는 다섯 겹의 장삼을 겹쳐 입고 오색의 감정(눈물)을 감싸 안은 존재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대 뒷배경 영상으로는 무녀가 궁궐 지붕 위에서 하늘을 향해 염원하고, 동시에 무대를 느리게 걸어 나오며 세련된 미장센으로 시공간을 관통하는 아우라가 상당하다. 시작부터 역사와 상상의 시공간을 교차하게 한 영상은 인상적이었고, 매 장면마다 과하지 않게 춤에 스며들며 절제된 무드로 제 역할을 수행했다. 한눈에도 장대해 보이는 머리 장식과 의상 덕분에 무녀는 압도적으로 큰 존재로 부각되며 카리스마로 부정적인 기운을 다스린다. 이어 군무진의 형상은 무녀의 기운에 다스려져 이내 흩어지고 바닥으로 침잠하며 오케스트라 박스 아래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무녀의 역할은 인간을 치유로 이끄는 매개자라기보다 초월적 권위를 행사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후반부 의뢰자의 춤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무감서기의 핵심 서사가 부각되지 못한 이유가 된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군무를 중심으로 각 색채에 따라 펼쳐지는 ‘눈물의 장’은 창작진의 의중과 달리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선명한 색채와 디자인은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반면, 이를 뒷받침해야 할 춤의 개성은 상대적으로 희미하다. 우리가 흔히 큰 무대에서 보는 형태인 2인무, 군무, 일렬로 도열한 배열, 질서정연한 대칭의 연속이다. 예컨대 ‘청의 눈물’ 장면에선 바다라인이 드러나는 드레스에 고깔을 쓰고, 손가락과 팔 중심의 동작을 구사하는데, 이는 신무용 초기 이국적인 춤사위를 떠올리게도 하고 남방 계열의 춤도 연상시킨다. 움직임과 상징 사이의 연결고리가 충분하지 않아,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를 말하는지 그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부채의 사용 역시 내용과 어떤 연결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프로그램에서는 “설경의 문양을 품은 부채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막혀 있는 감정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고 설명했으나 무대 위에서는 잘 통하지 못한다. 무구의 물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지닌 섬세한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나머지 장마다 대입된 눈물의 서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울을 흔들며 내면의 감각을 깨우려 시도하고, 너슬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한다고 하나, 막상 각 장마다 무구의 직관적 물성이 도드라져, 춤의 정서와 호흡을 보조하기보다 무대의 중심 요소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무구와 무용수의 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움직임의 질서를 생성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또 하나, '백의 눈물'에서 솔로를 춘 기무간의 살풀이는 작품이 요구하는 정서적 무게감과 응축된 서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이 대목은 인생의 고통이라 설정한 앞선 장면들을 수용하여 극복하려는 의지가 몸짓에서 확연하게 드러나야 했다. 이 거대한 무대에서 왜 하필 그의 춤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은 부족하다. 흑과 청의 눈물 안무까지 도맡았음에도, 방송 춤에서 종종 발견되는 속도감과 형태적 완성도에 집중한 나머지, 열렬한 기세와 형태적 완성도에 비해 움직임의 내적 축적과 깊이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삶의 고통을 통과하며 수용을 표현해야 하는 장면인 만큼, 경험 풍부한 중장년 춤꾼의 녹진한 살풀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따라서 이어지는 오방색이 뒤섞인 의상을 입고 40여 명의 무용수가 펼치는 난장의 춤은 원래 취지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앞선 장들에서 눌린 정서가 차곡차곡 쌓이며 긴장감을 끌어 올려야 할 서사적 빌드업이 실종된 탓이다. 분명 해당 장면은 무엇이 해결된 모양새나 해소의 지점까지 나아가지 못해 정서적 전환을 이끌지는 못한다. 기승전결의 외형은 갖추고 있으나 이를 연결하는 중심 서사는 비어 있다. 마치 ‘기’와 ‘결’만 덩그러니 놓인 듯하다. 다만 이 공허한 흐름 속에서도 짧은 순간이긴 하나 각각의 무용수들이 즉흥적으로 자신만의 신명을 표현한 장면은 눈여겨볼 만했다. 그것은 관습적으로 짜맞춰지지 않은 가장 자연스럽고 자기다운 춤이었고, 그제서야 무용수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명씨에서 이름과 의지가 깃든 존재로서 말이다. 같은 군무 안에서도 각자의 몸과 기질, 호흡이 살아날 때 군무는 더 이상 하나의 형상을 재현하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별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춤이 된다. 무용수가 안무적 형상을 재현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무엇인가를 발화하는 순간, 비로소 작품의 대상에서 주체로 이동한다. 이 지점이야 말로 오늘의 춤에 요청되는 동시대성이 아닐까.



서울시무용단 〈무감서기〉 ⓒ세종문화회관



또 하나, 마지막 장에 의뢰자가 신복을 입고 등장하는 클라이맥스에서 무감서기 춤이 폭발해야 하나 무녀와 의뢰자의 차별점이 선명하지 않다. 또한 오방색 의상을 입고 춤추던 군무진들은 결정적으로 마지막 절정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들은 등을 지고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는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능동적 전환이라기보다, 힘을 소진한 존재들의 퇴장처럼 보인다. 다시 무녀가 이들이 벗어놓은 옷을 감싸 안으며 장면이 끝난다. 새로운 일상으로의 전진이 아닌 마무리로 읽히기에, 작품의 핵심 내용과도 어긋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지향하는 목적성과 일정 부분 충돌하며, 무감서기가 지닌 영적·신체적 역동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앞서 여러 의구심이 드는 부분을 지적했으나, 전체적으로 관객에 따라서는 어렵지 않은 서사 전개,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매력적인 색감의 향연, 방송을 통해 각인된 스타 마케팅 효과, 대극장에서 무녀가 뿜어내는 아우라 등 대중적으로 매력적인 요소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잘 차려진 스펙터클한 무대는 역설적으로 '전통의 현대화'라는 명목 아래 국공립 단체가 반복해 온 타매체에 지나치게 무게를 싣는 편향으로 단선적인 안무의 빈틈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국립무용단에서 정구호식 의상과 연출이 강한 대중적 지지를 얻은 이후, 이번 무대 역시 춤 자체보다 패션과 시각적 연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전통의 현대화는 결국 춤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외형적 화려함 뒤에 전통춤의 핵심과 본질을 가리는 ‘무늬만 전통’의 경향이 국공립 예술단체의 새로운 관성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이 무대는 무감서기의 정신이 부재한 채, 무감서기를 둘러싼 화려한 풍경만을 펼쳐 보였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장.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6. 10.
사진제공_세종문화회관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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