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무용단 〈더블빌: 시나위〉
올드 & 영, 이분법의 역설
이지선_춤연구자, 비평가

국립무용단을 비롯한 국립예술단체들이 하나같이 더블, 크리플 빌 등 일련의 작품을 묶어 함께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안무뿐 아니라 기획과 마케팅에도 전문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프로덕션의 시대. 국립무용단의 신작 〈살풀이 生〉(배정혜 안무)과 〈AHRA〉(배진호 안무)는 개별 작품의 제목 위에 〈더블빌: 시나위〉라는 기획의 이름을 덧입고, 문화상품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2026.10.08-10) 무대에 진열되었다.

짧고 다채로운 콘텐츠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감각에 대응하려는 듯, 복수의 작품에 거장과 신예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기획이 더해졌다. 관객의 기대는 한껏 높아졌고, 공연은 매진에 가까웠다. 최근 서울시발레단의 〈더블빌: 죽음과 소녀〉나 국립현대무용단의 〈트리플 빌〉 등 무용계의 여러 ‘n 빌’ 기획들이 기존 작품들을 새로운 주제로 묶어 읽어내고자 한 시도와 달리, 이번 국립무용단의 더블빌은 하나의 주제 아래 창작된 두 신작의 묶음이라는 점에서 그 쓰기와 읽기의 결을 달리한다. 안무가뿐 아니라 무용수들 마저 세대를 갈라 국립무용단 I, II라는 형식에 그럴듯한 당위를 부여했으니, 대결구도는 한층 첨예해졌다.

그러나 정작 두 작품을 하나의 기획으로 묶은 ‘시나위’는 무엇이었을까. 개별성과 공존, 즉흥적 변주와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하는 시나위의 음악적 특성은 안무가들이 공유한 창작원리였을까, 서로 다른 두 작품을 묶기 위한 기획적 포장지였을까. 거장과 신예, 관록과 참신함의 대결이라는 기획 아래 두 작품은 지극히 의도적으로 대비되어 읽혔지만, 차이가 선명해질수록 정작 공통의 주제는 쉽사리 파악되지 않았다.


기쁨과 고통, 삶을 대하는 두 개의 풍경

배정혜의 〈살풀이 生〉은 진경산수화를 옮겨놓은 듯한 무대에서 시작된다. 듬성듬성 놓인 바위와 산수의 풍경, 오색찬란한 꽃봉오리처럼 한껏 부풀려진 치마, 냇가에 발을 담그고 놀았을 법한 맨발의 여인들. 신윤복의 풍속화 속 인물들이 걸어 나온 듯한 풍광에 부채를 든 선비들까지 등장하면, 산수 좋은 어느 골짜기는 남녀가 한가롭게 노니는 유희의 공간이 된다. 전통적인 한국창작춤의 무대 어법을 떠올리게 하는 이 풍경에서 삶은 고통이나 비극보다 흥과 놀이, 기쁨의 정서로 펼쳐진다.



배정혜 〈살풀이 生〉 ⓒ국립무용단



반면 배진호의 〈AHRA〉는 텅 빈 시커먼 무대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시뻘건 조명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인생의 끝없는 고행길, 아리랑 고개를 상징하는 듯한 경사로와 문은 다분히 연극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한국무용수의 넓은 치마폭에 가려졌던 단련된 신체를 보여주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듯, 무용수들은 한 치의 나태함도 허락치 않는 검은 망사의 전신타이즈를 입었다. 무용수들은 시종일관 갈등과 투쟁 속에서 삶의 고난을 이어가는듯 그려진다.



배진호 〈AHRA〉 ⓒ국립무용단




원숙한 몸과 긴장된 몸, 서로 다른 움직임의 언어

〈살풀이 生〉에서 배정혜 안무가는 여러 유파의 살풀이춤을 토대로 새로운 춤을 구성했다고 밝힌다. 무용수의 몸은 관객을 향해 한껏 열려 있으며, 정교한 발디딤과 호흡은 한국춤 고유의 멋을 유감없이 살려낸다. 무엇보다 흠잡을 데 없는 무용수들의 원숙한 기교는 애써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기보다 모든 춤이 일상의 그것으로 보이게 하는 경지를 이룬다. 살풀이 수건을 뿌리고 잡아채고 어깨에 둘러 한삼 자락처럼 놀리거나 부채를 접고 펼치는 무구의 놀이, 군무의 대형과 배치를 통한 시각적 조형미, 발레의 남녀춤을 연상케 하는 2인무가 조화롭게 배치된다. 열과 대형을 맞춘 무용수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의 변주는 다채로운 색채와 어우러져 안무가가 그간 한국창작춤에서 구축해 온 현대적 창작 방식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배정혜 〈살풀이 生〉 ⓒ국립무용단



〈AHRA〉에서 배진호 안무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과 안무를 다룬다. 도입부 다소 긴 무음악의 구간에서 움직임은 고유한 리듬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옆으로 선 무용수의 몸은 지극히 각지고 뒤틀린 움직임 감각을 자아내고, 느리고 여백이 많은 움직임은 높낮이와 폭의 극렬한 대비로 인상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거미 혹은 지네의 기어다님을 연상시키는 낮은 무게중심의 잔뜩 웅크려진 몸에서 일순간 깨끼발로 솟아오르는 몸, 부드럽게 물결치거나 메고 감는 팔의 움직임에서 양손이 허리 뒤에 묶인 듯한 자세가 교차한다. 상반된 움직임의 질감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 충돌하며 긴장과 이완의 강렬한 리듬을 형성한다. 춤은 강강술래 놀이에서 보았을 법한 감아 도는 원형 등의 집단적 대형을 주로 그린다. 비대칭적 배열은 중심을 비켜선 신체와 함께 정연한 대칭과 질서를 강조하는 배정혜의 무대와 또다른 대비를 이루었다.





배진호 〈AHRA〉 ⓒ국립무용단




시나위, 대결이 만든 득과 실

두 작품이 무대와 움직임에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면, 하나로 묶은 시나위의 의미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살풀이 生〉은 여러 전통 춤사위가 하나의 질서정연한 구성 안에 놓인다. 여러 춤사위의 결합과 조화에서 시나위의 발상을 읽을 수 있지만, 개별 춤사위의 상호작용보다는 완결된 군무의 조화에 수렴한다. 한편 〈AHRA〉에서는 움직임의 반복과 변형, 신체 간의 긴장과 반응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창작과정에서 활용하였다는 즉흥적 상호작용은 완성된 안무에서 무용수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관계 속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원리로까지 선명하게 지각되지는 않는다. 두 안무가 모두 시나위를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지만, 그것이 실제 안무를 통해 얼마나 설득력을 확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서로 다른 두 작품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나위의 미학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배정혜 〈살풀이 生〉 ⓒ국립무용단



작품을 따로 놓고 본다면 어떨까. 배정혜 안무가는 〈춤, 춘향〉(2002), 〈Soul 해바라기〉(2006), 〈코리아판타지〉(2009) 등을 통해 신무용의 색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창작춤의 현대화 방향을 뚜렷이 보여주었던 안무가다. 그때의 새로움이 안겨준 전율이 〈살풀이 生〉에서 거듭되지는 않았고 예측 가능한 온건한 무대였지만, 오랜 시간 다져온 자신의 춤언어로 배정혜는 배정혜 했다.







배진호 〈AHRA〉 ⓒ국립무용단



한편 배진호 안무가는 전작들을 통해 한국창작무용계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주제와 몸짓으로 과감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왔다. 이번 〈AHRA〉에서도 신체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흥미로운 시도가 발견되지만, 그것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독자적인 안무언어로까지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국립무용단 무용수의 몸으로 여과된 그의 참신함과 파격은 동시대 무용에서 유행을 주도하며 가가(gaga)의 충동적 몸짓 계보를 잇는 샤론 에얄 혹은 샤하르 빈야미니로 대표되는 스트릿+테크노+섹슈얼+그로테스크 감성의 무엇과 다른지 그 경계가 흐릿했다. 필시 새로움을 위해 인고를 거쳐 탄생한 움직임일진대, 숙련된 국립무용수들에게조차 때때로 드러나는 어색한 몸선과 불안정한 수행은 순식간에 그 목적과 과정의 설득력을 갉아먹었다.

거장의 자기반복은 관록으로 읽히지만, 신예의 기시감은 참신함의 결핍으로 읽힌다. 올드 앤 영의 대결 기획은 두 안무가에게 애초부터 서로 다른 기대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댔다.

〈살풀이 生〉이 끝난 무대의 박수 소리는 배정혜 안무가가 갑작스레 선보인 화답의 즉흥무 인사에 한층 따뜻해졌다. 반면 〈AHRA가 끝난 무대에서는 막이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왔다 다시 올라 무용수들이 모두 인사할 때까지 당혹스러운 정적이 흘렀고, 미적지근한 호응만이 잠시 들렸을 뿐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진일보를 위한 과정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대결의 구도는 선명했지만, 그 차이가 왜 하나의 공연으로 묶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한국무용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국립무용단의 행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전통춤과 신무용, 한국창작춤과 컨템퍼러리 무용의 역사가 중첩된 자리에서 국립무용단의 무대는 늘 그 이상의 기대를 짊어진다. 잘해야 본전이고, 그 이상을 보여주기는 더욱 어려운 위치다. 굽이굽이 미학적 고개를 넘어야 하는 국립단체의 자리에서, 전통의 재해석을 표방한 이번 시나위 기획은 올드 앤 영의 대결을 통해 전통으로부터의 차이를 재확인하고, 동시대 속에서의 차이를 잃었다.

이지선

춤연구자, 비평가.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 댄스&미디어연구소 연구원으로 동시대 춤 미학과 비평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실천연구에 관심을 갖고 공연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퍼실리테이터로서 안무리서치, 기획 및 아카이빙 등에 참여하고 있다. 2004년 국제공연예술제 제1회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춤웹진, 몸, 춤과사람들, 춤in 등에 기고하였다. ​

2026. 11.
사진제공_국립무용단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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