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발레단 · 윤별발레컴퍼니 · 김옥련발레단
발레, 발레, 발레
정옥희_춤비평가

공연이 넘쳐나는 가을이다. 이 와중에 굳이 〈지젤〉을 비평해야 할까 싶지만,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여느 신작 못지않게 관심을 모았다. 김주원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취임 전에 기획된 공연일 테니 관건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있다. 공연은 물론 비주얼과 기획에서 집요하고 섬세한 디렉팅이 엿보인다.

〈지젤〉은 발레계의 ‘사골’ 레퍼토리다. 하지만 오래된 이야기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게 인간 아닌가. 수십 번 본 고전도 여전히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신진 주역 무용수들의 대거 발탁이다. 기존 주역인 박슬기, 박종석, 김기완, 이재우, 허서명 외에 김윤, 이하연, 이은서, 안수연, 엄나윤, 나대한 등이 무대에 올랐다. 총 7회 공연에서 다섯 커플이 캐스팅되어 성장과 도전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이 가운데 신인으로서 유일하게 두 차례 무대에 오른 이하연-김기완의 공연을 보았다.





국립발레단 〈지젤〉 ⓒ국립발레단



〈지젤〉의 줄거리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지젤〉 극작가이자 비평가였던 테오필 고티에는 당대 발레 비평문에서 줄거리를 짧게 해치운 뒤 무용수의 수행을 구체적이고 집요하게 묘사했다. 오늘날의 발레 비평가도 다르지 않다. 원형적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무용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하연은 대단한 몰입력을 보여주었다. 1막에서는 유독 긴 일자목처럼 다소 뻣뻣해 보이기도 했지만, 신인답지 않은 대담함과 여유로움으로 춤췄다. 그의 매력이 돋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머리를 풀어헤친 매드씬부터다. 커다란 눈과 비쩍 마른 골격이 비극성을 더한다. 세상의 풍파를 어떻게 견뎌왔을까 싶을 만큼 가녀린 몸통으로 심리적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2막에서는 그의 긴 팔이 홀로 춤춘다. 흉골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상완과 하완을 거쳐 손끝까지 전달되는 동안 굽이굽이 물결치며 흐느낀다. 김기완은 자기 계급 속에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귀족청년으로 말끔하게 춤췄고, 안정적인 파트너로 이하연을 뒷받침했다.

주역뿐 아니라 솔리스트와 군무진의 움직임에서도 집요하고 섬세한 지도가 드러난다. 2막에서 미르타를 맡은 정은지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몸을 완벽하게 제어하면서 탄력 있는 그랑 점프를 수행하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윌리를 맡은 엄나윤과 최유정 역시 짧은 시퀀스 안에서 공중을 하늘거리듯 떠도는 흐릿한 움직임 질감을 놀랍도록 풍부하게 표현했다.





국립발레단 〈지젤〉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이 보유한 파트리스 바르 버전은 지젤 어머니를 통해 농촌 삶의 핍진성을 드러낸다. 앞치마를 네모반듯하지 않게 꼬인 채 말아 멘 모습이나 지젤과 친구들의 초라하게 긴 앞치마는 신분제가 일상에서 멀어진 시대의 관객에게도 계급 차이가 뚜렷했던 세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연주는 발레 지휘자 필립 엘리스의 지휘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엘리스는 속도 조절에 능했다. 1막 마을 군무 장면에서 빠른 박자가 휘몰아치듯 지나갈 때는 숨 쉴 틈 없는 시골 공동체의 압박이 느껴진다. 반면 솔로나 듀엣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에 맞춰 유연하게 뒷받침했다. 특히 2막에서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들어 올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앞으로 나아가 피케 아라베스크로 내려놓는 장면에서는 무용수가 움직임의 관성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하연의 긴 팔이 서두르지 않고 펼쳐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지휘가 있었기에 춤의 호흡도 온전히 살아났다.

국립발레단의 〈지젤〉에서 빛나는 건 고전을 다루는 태도다.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스팅의 폭을 넓히고, 무용수 각자의 해석을 끌어내며, 작품을 지탱하는 세부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익숙한 〈지젤〉이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면, 그건 새롭게 살아내고 새롭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윤별발레컴퍼니 〈카르멘〉, 윤별발레컴퍼니 제공 ⓒ윤식스포토



〈지젤〉에 비하면 〈카르멘〉은 최근작이지만, 비제의 매력적인 오페라 음악을 바탕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소설은 고고학자인 화자가 여행 중 만난 호세 나바로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식 구성이다. 조르주 비제의 1875년 오페라는 이를 카르멘과 돈 호세의 사랑 이야기로 압축하고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비중을 키웠다. 발레에서는 롤랑 프티의 1949년 버전과 마야 플리세츠카야를 위해 알베르토 알론소가 안무한 1967년 버전이 유명하다. 프티가 집시와 하층민의 삶을 비교적 현실적으로 그렸다면, 알론소는 남녀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에 집중했다.

국내에선 오랫동안 뜸하다가 최근 와이즈발레단과 윤별발레컴퍼니가 한 달 간격으로 〈카르멘〉을 공연했다. (아쉽게도 와이즈발레단은 보지 못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고전은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와 같다. 오래된 양피지 위에 새로운 글을 덧쓰듯, 하나의 작품은 반복적으로 다시 쓰이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안무가도 관객도 작품을 볼 때 이전 버전의 그림자를 의식한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에서 탄생한 〈카르멘〉은 어떤 모습일까. 팜므 파탈, 스페인풍의 의상과 부채 등 콩쿠르 솔로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요소를 나열하거나 발레 특유의 스타일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는 않을까.

윤별발레컴퍼니 안무가 박소연은 감옥에 갇힌 돈 호세의 회상으로 시작해 카르멘의 주검 앞에서 뒷걸음치는 회한으로 끝냈다. 1막은 세비야 광장을 배경으로 호세가 서서히 카르멘에게 매료되는 과정을 그린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쑥맥 같은 군인 호세와 남자들을 후리는 카르멘의 대비가 흥미롭다. 박소연이 직접 맡은 카르멘은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능수능란하다. 과장되거나 관습적 제스쳐에 기대지 않고 작은 몸짓과 표정으로 대담하고 자유로운 성격을 드러낸다.

인상적인 장면은 밧줄 파드되다. 담배공장에서 소동을 일으킨 카르멘을 호세가 밧줄로 묶어 호송하다가, 오히려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풀어주고 만다. 두 사람의 손목에 걸리고 몸을 감싸는 굵은 흰 밧줄은 〈라 바야데르〉의 스카프 파드되나 〈고집쟁이 딸〉의 리본 파드되처럼 소품으로 제약된 독특한 움직임을 창출한다. 두 손목이 묶인 카르멘을 호세가 들어 올리고, 카르멘의 몸통을 옥죄던 밧줄이 어느덧 호세를 감싸는 순간에는 두 사람의 관계 역전이 시각화된다. 안무가는 소품을 움직임의 원리로 전환하는 데 능숙하다. 익숙한 파트너링 관습을 답습하기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움직임을 자신 있게 구사한다.

2막은 1막보다 짜임새가 좋다. 흥청망청한 술집에서 카르멘과 에스카미요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한 뒤 투우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무용수들이 계단 구조물에 꽃장식을 직접 다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이자 무대 위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군무 무용수들을 조합해 투우를 표현한 장면도 춤이라는 매체의 장점을 살린다. 떠들썩한 축제의 흥분이 고조될수록 호세의 절망은 더욱 선명해진다. 다만 호세는 강력한 자기장에 갇힌 듯 시종일관 홀로 등장해 카르멘과 만난다. 그가 군중에 섞여 카르멘을 엿보거나 떠들썩한 인파 속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윤별발레컴퍼니 〈카르멘〉, 윤별발레컴퍼니 제공 ⓒ윤식스포토



아쉬운 것은 1막의 군무다. 남녀 무용수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이들은 극적 상황을 형성하기보다 배경으로 남는다. 이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인가, 집시인가, 노동자인가, 야바위꾼인가. 어디서 살고 무엇을 먹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막연한 스페인풍 외에는 이들의 존재를 구체화할 기표가 부족하다.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공장에서 일하지만, 무대 위 인물들은 지나치게 말끔하다. 노동을 흉내 내지만 삶에 찌든 사람들의 아귀다툼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 집시의 역사적 삶이 한국 관객에게 낯설거니와 동시대 발레 관객이 기대하는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일 테다. 그 결과 작품의 배경은 화려한 장식으로 남고 인물들의 사회적 삶은 희미해진다.

이러한 한계는 〈카르멘〉이라는 작품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더욱 아쉽다. 〈카르멘〉은 출생 신분이나 계급, 도덕성 면에서 결함이 없는 인물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여겼던 시대에, 손가락질받는 집시 여성을 세웠다. 카르멘은 매혹적인 여성이나 그녀의 삶은 그 매혹적인 이미지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도박과 밀수, 불법과 기만이 뒤섞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거친 삶이야말로 이 인물을 특별하게 만든다. 하지만 박소연의 〈카르멘〉은 화사하고 건전하다. 말끔하고 매혹적인 드레스를 입은 카르멘에게 지리멸렬하고 구차한 삶의 냄새는 없다.

그럼에도 안무가가 처음으로 전막 서사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춤과 춤 사이가 뚝뚝 끊기지 않고 인물의 감정을 움직임 안에서 표현하고 연결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음악 역시 특정 장면을 연상시키는 원곡의 매력을 살리면서 필요한 구간을 늘리거나 변형해 장면에 맞게 구성했다.

탄탄한 음악과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갖춘 만큼 〈카르멘〉은 발레 안무가에게 매력적인 도전이다. 다만 이야기를 춤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인물의 심리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세계까지 구축해야 한다. 박소연의 〈카르멘〉은 움직임을 다루는 능숙함과 서사 구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화려한 이미지 너머의 삶까지 포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옥련발레단의 〈금관의 물길 510km〉, 김옥련발레단 제공 ⓒ박창현



발레가 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 연출가나 대본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떨까. 부산 김옥련발레단의 〈금관의 물길 510km〉(이하 〈금관의 물길〉)은 연출가 최병규, 대본가 진남수와 협업한 ‘K-발레컬’이다. 뮤지컬의 형식을 빌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명확한 대본과 대사, 인물별 노래 넘버가 또렷하게 존재한다. 발레컬이라 하지만 발레보다는 본격적인 뮤지컬에 가깝다.

을숙도문화회관과 공동주최한 작품답게 〈금관의 물길〉은 을숙도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낙동강 510km를 따라 금관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으로 헤어진 학도병과 소녀의 사랑을 연결한다. 메타적인 설정을 겹겹이 덧씌우면서 덧없는 인간사 뒤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갈대밭, 보름달을 중심에 놓는다. 역사 소재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연결하며 입체적으로 재현하려 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여러 시대가 중첩되면서도 각각의 상황과 스토리가 살아있다. 지역성을 강조하고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는 구성, 노래와 대사와 춤의 결합, 화려한 영상과 객석을 넘나드는 연출까지 빠짐없이 갖췄다.

문제는 그 모든 요소가 관(官)이 좋아할 만한 예측 가능한 모범답안처럼 제시된다는 데 있다. 어린이들이 물수제비를 뜨고 배우들이 구지가와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노래하며 중장년층 관객의 추억을 자극한다. 한편 마지막 장면에선 구지가를 힙합풍으로 변형해 부르며 전 세대가 춤으로 화합한다. 그 사이 배경막에서는 억새풀이 끝없이 휘날리고 거대한 보름달이 수십 번 떠오르다가 폭발한다. 이미지도 설정도 대사도 노래도 과하다. 작품은 절제를 모르고 감정과 볼거리를 밀어붙인다.

엔딩이 특히 과하다. 낙동강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학도병과 소녀는 나이 든 모습으로 작품 내내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조우한다. 갑자기 모든 출연진이 구지가를 합창하며 춤추다가 관객에게 손가락 불빛을 날린다. 엔딩은 화려하고 흥겨워야 한다는 관습적 선택이다. 지역의 역사와 장소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하기보다 친숙한 정서와 볼거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서 정작 발레는 찾기 어렵다. 약 40명의 출연진 가운데 발레 무용수는 두세 명에 불과하고, 토슈즈를 신고 파트너링을 하는 두 무용수는 서울에서 초빙했다. 주요 무용수들은 한국무용수와 비보잉 댄서이고 그 외 배우, 연주자, 아역이 등장한다. 주요 배역 대부분을 배우가 맡았다. 작품이 철저히 대사와 노래로 진행되다 보니 춤은 부수적인 위치로 밀려난다.





김옥련발레단의 〈금관의 물길 510km〉, 김옥련발레단 제공 ⓒ박창현



발레 없는 발레컬이라 비판하기 좋다. 하지만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것이 의도적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옥련은 부산 무용계의 터줏대감 같은 안무가이고 김옥련발레단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을 이어왔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지금껏 만든 전막 작품만 40여 편, 누적 관람객은 24만 명에 이른다. 이 작품이 지역대표예술단체지원사업 선정작이라는 점은 그가 쌓아온 활동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함께 작업할 무용수가 없다시피 하다. 무용수 교육과 정착의 사다리가 끊어졌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어떤가. 발레를 어렵게 생각하는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그러모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당의정처럼 발레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까.

현실적 어려움이 작품의 완성도를 변호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금관의 물길〉은 지역 민간 발레단이 처한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으로부터의 명분, 열악한 인적 인프라, 얕은 관객층이 ‘K-발레컬’로 귀결된 건 생존의 문제에 가깝다.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레가 사라졌을 뿐이다. 이 현실을 서울에서 온 관객이 어찌 쉽게 비판할 것인가.

정옥희

춤 연구자 및 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Dance Chronicle 자문위원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진화하는 발레클래스』(2022), 『이 춤의 운명은: 살아남은 작품들의 생애사』(2020)가 있다.​​​​​​​​

2026. 11.
사진제공_국립발레단, 윤별발레컴퍼니, 윤식스포토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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