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의 기획공연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춤 공연 ‘조선춤방 II’가 5월 21~23일에 풍류사랑방에서 있었다. 작년의 ‘조선춤방 I’은 전국의 각 지역에서 교방춤 내지 무대춤으로 그 맥을 전승하고 있는 무용가들을 소개하고 작품들을 공연했다. 무형문화재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일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번 ‘조선춤방 II’는 21일에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한진옥(1911~1991)과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김동민(1909~1999)의 춤맥을 소개했고, 22일에 최승희의 제자인 한순옥과 전황, 그리고 최승희의 음악을 맡았던 박성옥이 리틀엔젤스예술단과 김춘호로 이어진 춤맥을 선보였다. 23일에는 최승희-박용원(1930~1992), 조택원-김문숙(1928~2023), 배구자-한라함(1922~1994)으로 이어지는 춤맥을 공연했다. 필자는 22일 공연을 관람한바, 이날 프로그램은 신무용(협의의 신무용을 말함) 양식을 처음으로 전형화한 무용가 최승희와 인연이 닿아있는 작품들이었다.
[한순옥 춤방] 양승미 〈검무〉 ⓒ국립국악원 |
첫 프로그램은 한순옥(1932~2022)에 의해 안무된 〈한순옥류 검무〉였다. 한순옥은 최승희무용연구소 3기생으로 입문하여 활동하다가 피난후 1960년대부터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했다. 당시에 〈승전무〉라는 작품에서 검무를 군무로 안무했고, 이후에 독무로 검무를 추셨다. 이날은 국립무용단 시절 한순옥의 작품을 받았던 양승미(한순옥류검무보존회 회장)가 이 춤을 추었다. 한순옥의 〈검무〉는 전통 검무의 구성과는 다른 신무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 검무는 검을 잡기 전과 후의 구성이 있고, 대무(對舞)로서 동선이 분명하다. 음악 구성도 타령에서 자진타령으로 빨라지다가 다시 늦은 타령에서 긴장감을 높였다가 자진타령으로 넘기면서 흐름을 전환시킨다. 이러한 구성이나 전개와 달리 〈한순옥류 검무〉에서는 다양한 칼 사위들이 펼쳐진다. 한 장단에서 칼을 번갈아 돌리거나, 칼을 빠르게 밖으로 돌렸다가 안팎으로 감고, 칼을 양 어깨에 얹었다가 연풍을 돈다. 한순옥의 마지막 제자인 양승미는 화사하면서 여유롭게 검무를 추어냈다.
[전황 춤방] 윤성주-안덕기 〈장검무〉 ⓒ국립국악원 |
다음은 역시 최승희의 남성 제자로 춤과 악(樂)에 두루 능했던 전황(1927~2015)의 춤을 소개했는데, 그는 〈항우와 우미인〉, 〈쌍검무〉 등의 검무를 안무했었다. 그의 제자 윤성주(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는 전황의 〈쌍검무〉를 5인 군무로 재구성하여 〈검(劍)〉을 공연했었고, 이때 전황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감수하셨다고 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윤성주가 독무로 재안무하고, 당시에 출연했던 안덕기(한예종 무용원 교수)가 춤추었다. 다만 원작에서 입었던 갑옷이 흩날리는 두루마기 차림으로 바뀌었고, 무사의 결의와 무혼에 비중을 두어 표현했다고 하니, 극적이면서 역동적으로 안무했던 전황의 검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에 주목받았던 검무이기 때문이다.
[박성옥-리틀엔젤스예술단] 〈화랑무(무사놀이)〉, 〈밤길〉 ⓒ국립국악원 |
박성옥(1908~1983)은 예술적 배경과 활동에 있어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양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악기들을 개량했고, 최승희 작품의 반주곡을 창작하고 연주도 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무용극이나 소품을 창작하기도 했으며, 리틀엔젤스예술단에서는 음악감독과 안무가로 활동했다. 이 당시 초대 단장이었던 신순심과 합작한 신무용 작품 중에 〈화랑무(무사놀이)〉와 〈밤길〉을 이번 무대에 올린 것이다. 두 작품은 1970년대 전후 즐겼던 신무용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밤길〉은 손녀를 업고 밤길을 가는 할아버지와 등에 업힌 손녀를 표현한 1인 2역의 작품이다. 할아버지에 업힌 듯이 인형을 안고 청사초롱을 들고 추는데, 이승연(리틀엔젤스예술단)은 이 춤을 서두르지 않고 할아버지와 손녀의 각 장면에서 감정이입하면서 매끄럽게 표현했다.
[박성옥-김춘호 춤방] 청명무용단 〈입춤〉 ⓒ국립국악원 |
그리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성옥의 유일한 후계자 김춘호(1936~1998)의 춤맥이 소개되었다. 박성옥은 김춘호를 내제자(內弟子)로 키웠고, 김춘호 역시 오철주(청명무용단 대표)를 양아들로 삼으며 내제자로 가르쳤다고 한다. 청명무용단 단원들이 춘 〈입춤(기본무)〉은 굿거리장단에 하체 동작 중심으로 선보였다. 이어서 오철주의 〈한량무〉는 침착(沈着)하고 진밀(縝密)했으니, 호방하고 외향적으로 추는 여느 한량무와는 달랐다. 그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보이는 춤이었다.
600 [박성옥-김춘호 춤방] 오철주 〈한량무〉 ⓒ국립국악원 |
‘조선춤방 I, II’는 아카이브적 성격의 공연이었고, 국립국악원이 그동안 올리지 않았던 작품들을 올린 무대였다. 국립국악원이기에 가능했고, 국립국악원으로서 해야 할 기획이었다. 그리고 ‘조선춤방 II’의 프리뷰에서 이번에는 “전통춤의 맥락을 확장하여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서구춤이 조선춤과 결합하여 생성된 신무용 계열의 전통춤 맥락도 조망한다고 했다.” 여기서 ‘신무용 계열의 전통춤 맥락’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신무용과 전통춤의 관계에서 오해가 생길 설정 내지는 표현이라고 본다. 신무용을 전통춤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춤은 전통의 시대라 하는 대략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까지 형성된 전통적인 기법과 미의식을 토대로 전승되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펼쳐졌던 춤이다. 전통춤과 신무용은 그 역사적 맥락이나 춤의 정신이 다르고 기법도 다르므로 엄연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다만 신무용이 20세기 중후반에 이룬 예술적 성취와 무용사적 의의와 맥락이 춤계에서 충실하게 평가받지 못한 상태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통춤의 위상이 재정립되고, 창작춤이 발흥하면서 춤계는 신무용을 퇴조시켰다. 새로운 정신과 기법이 등장하면 기존의 것은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신무용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지 않았고, 세대를 넘기며 교육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5월 22일 ‘조선춤방’의 공연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신무용의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신무용이 이룬 무용사적 의미를 4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 2020년대까지 춤계가 다양한 춤의 조류(潮流)들과 지형을 겪은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통춤은 전통춤대로, 신무용은 신무용대로 각각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인식함으로써, 20세기 춤계가 이뤄낸 성과들을 풍성하게 남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통춤과 신무용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근래 추어지는 신무용 작품들에 붙는 ‘○○○류’ 라는 표기는 ‘○○○ 안무’ 또는 ‘○○○ 작’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엄연히 한순옥이 〈검무〉를 구성하고 안무했기 때문이며, 전황이 〈쌍검무〉를 구성하고 안무했기 때문이다. 신무용 작품들에 붙는 ‘○○○ 류’라는 표기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공연을 돌아보며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작품들 속에 당시 한국의 춤이 예술적으로 고민하고 지향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성과와 한계를 포함하여 춤문화사의 측면에서 분석해 봄직하다. 둘은 신무용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경로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전통의 시대에 지역이나 계열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전통춤의 전승 양승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작품에 대한 미혹뿐만이 아니라 인맥, 단체, 문화예술계 제도의 변화, 사회적 변화 등이 계기가 되어 전승의 연(緣)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