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분명한 차별성이 하나의 공연예술 작품으로 구현된 무대. ing 즉흥 그룹의 <백발백중>(8월 13-14일, 강동아트센터소극장 드림, 평자 13일 관람)은 분명한 메시지, 무용과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영상과의 크로스오버 작업이 즉흥을 통해 적절한 농도로 조합되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즉흥춤 공연과는 차별화를 보였다.
즉흥을 통한 크로스오버 작업을 표방한 공연의 경우 여러 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고, 각 예술장르가 서로 뒤섞인다는 점에서 그 작업의 결과는 기대한 만큼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 아티스트들이 그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충돌하거나 서로 부딪히기만 하고, 정작 융합이나 공존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백발백중>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킨, 꽤 잘 조합된 공연이었다. 4명의 댄서와 각각 1명의 라이브 연주자와 배우, 비디오 아티스트, 희곡작가, 사진작가가 작업에 참여했다. ‘국적, 문화, 장르, 언어가 다른 각각의 예술가들이 잊혀져가는 역사의 의미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백발백중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 아티스트들이 표방한 제작의도였고, 실제 공연은 광복과 연계한 평화의 메시지로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공연 초반에 흐르는 가곡 ‘선구자’의 변형된 멜로디, 공연 중반을 넘어서면서 흑백영상으로 투사된 전쟁 장면 등이 광복과 평화의 의미를 묵시적으로 암시했다.
아티스트들이 공연의 한 형태로 담아낸 즉흥성은 놀이적인 설정과 오브제의 사용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성을 겨냥하는 시도로 나타났다. 갑자기 천장에서 쏟아진 작은 인형들과 스크린에 투사된 동화적인 분위기의 영상, 그리고 이들 인형을 객석으로 던지는 행위는 다분히 관객과의 소통효과를 염두에 둔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객석과의 즉석 대화까지 이끌어내는 배우 정일균의 행보는 꽤 적극적이어서 관객들은 이내 공연의 객체에서 잠시나마 주체로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음악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즉흥성과 우연성, 그것들의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여린 감성적 터치였다. 어둠 속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 여러 종류의 악기와 생활도구, 그리고 인성(人聲)을 이용한 우광혁의 즉흥 음악은 한국(김삼진 최문애), 프랑스(클리어 필몬), 핀란드(요하나 파쇼)의 댄서들과 꽤 흥미로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무용수들의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실린 인성과 노래, 팬플루트의 매혹적인 선율을 따라가는 댄서들의 서정적인 움직임, 군무 위주의 조형미가 살아나는 듯 하다가 이내 무대가 비워지면서 등장한 김삼진의 홀춤에 실린 구음과 삼현육각의 만남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평화를 위한 한판의 진혼굿이었다.
우광혁의 만만치 않은 즉흥 감각,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캐치하면서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즉흥음악은 마치 ‘소리의 마술사’처럼 빛을 발했다. 그의 음악에 반응하는 댄서들의 순발력은 어느 장면에서는 퍼포머로 돌변하는 연주자와 만나 예기치 않은 우연성의 돌출이 주는 재미를 덤으로 선사했다.
즉흥이 공연의 한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공연과 워크숍을 병행하는 즉흥 전문그룹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외국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미국,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다국적 크로스오버 그룹을 표방하고 만든 ing즉흥그룹의 출범 역시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즉흥 그룹들이 무용수들 위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이 단체는 여러 예술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네덜란드의 Magpie 그룹과 함께 크로스오버 즉흥을 정기적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몇안되는 단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ing즉흥그룹은 2013년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 기다림을 메인 플롯으로 8명의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조율(On Going Conversation)>에 이어 지난해 강동아트센터소극장에서 가진 <두번째 시도(The 2nd Try 'Going Ahead')> 를 통해 더욱 팀웍을 공고히 했다.
향후 음악과 무용에 치중된 상호소통의 정도가 비주얼적인 작업으로도 보다 확대된다면 크로스오버 즉흥 공연으로서의 감흥이 더욱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한명의 댄서를 제외하고 전년도와 같은 아티스트와 예술 장르가 만난 이번 공연은 즉흥성이 만들어내는 우연성의 조합에서, 움직이는 무용수와 음악과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밀도에서, 그리고 50여분 길이의 공연을 통해 담아내려한 메시지의 조합에서 전작보다 진일보한 성과를 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