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천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가을연꽃 - 혼란한 시대를 가로지른 단 하나의 칼>(예술감독 김윤수)이 무대에 올랐다. 2014년 초 부임한 김윤수 감독이 민속춤 중심의 작품을 제하고는 현대적 창작품으로는 부임 후 처음 올리는 야심찬 무대였다. 조선 인조 때 주변열강 속에서 북벌론을 끝까지 지키다 결국 역적으로 몰려 고문 끝에 죽게 되는 임경업 장군과 그의 칼 ‘추련도’에서 제목을 가져와 <가을 연꽃>이라는 운치 가득한 제목으로 무대가 열렸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사(死)의 정재(呈才)’로 같은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 사이에 반청활동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5개의 장이 치밀하게 채워진 대작이었다. 임경업 장군이 명장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명청의 대립 속에서 명을 따른 자신의 입장을 바꾸거나 굽히지 않고 그에 따른 굴곡을 온몸으로 받아내었으며, 그 근본엔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렬의 혼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었던 행적과 실천 때문일 것이다. 뜻을 지켜 목숨을 바치는 장렬함이 백성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그의 이야기는 민간에 떠도는 설화의 소재가 되어 ‘임경업전’등으로 백성의 사랑을 받는 문학작품으로 재탄생되는 특이한 예가 되었다. 백성의 사랑을 받았다 함은 최영 장군등과 더불어 우리 무속에서 모셔지는 장군신 중의 한분으로 남았으며 그가 서해바다를 건너다니던 행적 때문에 연평도 바닷가의 용신제에서 물길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할 때 임장군은 더욱 중요하게 모셔진다.
인천시립무용단이 임경업 장군이야기를 작품화하는 배경 속에는 지역성에 근거해 서해에서의 장군이 신화화되어 정착된 부분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가을 연꽃>은 실화 중심으로 풀어 나가기보다는 설화적 분위기에 기대어 제의와 정재, 한국춤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렇다고 작품이 모호하게 제의성만을 강조한 채 엉성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바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깨어진 예측에 불편해지기도 하고 눈이 크게 떠지는 놀람을 경험했는데, 이는 김윤수 안무의 평소 스타일의 흐름에서 한층 세련된 조명, 의상, 음악, 무대, 소품이 짜임새 있게 대작의 규모를 탄탄히 받쳐주어 근래에 어디서도 보기 드문 완성도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무용극이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이전의 무용극과 다른 결을 가져갈 수 있는 출발은 장군의 칼 ‘추련도’에서 검의 혼을 설정하여 여성 무용수로 의인화시킨 지점이다. 흔히 설화나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무용극에서 보통의 주인공은 남자와 그의 여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춤을 끌고 가는 정서적 힘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칼이 갖는 남성성을 가득 품은 여성으로의 의인화(유나외, 배아란 출연)를 통해 상투적인 멜로와 2인무에서 가볍게 탈출할 수 있게 하였다. 장군이 흰옷을 입을 때, 검의 혼은 검은 색 상의와 바지를 입고 칼을 들고 현대적 동작을 하며 중성적 내지는 양성적 느낌으로 장군(박재원, 김철진 출연)의 주변을 맴돌면서 호위하는 모습은 한국 무용극에서는 그간 보기 힘들었던 설정이었다.
병자호란으로 청에 짓밟힌 백성과 조정의 모습을 담은 ‘삼궤구고두례-치욕의 고리’ 장면은 청을 치고 왕세자를 구출하기 위한 장수들의 결의 장면 ‘대녹림결의-칼의 서약’으로 이어지고, 김자점에게 배신을 당하는 ‘깊고 푸른 바다-반청과 신의’ 장면을 넘어 승려로 신분을 위장하며 피신을 다니는 와중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나 검의 혼을 살리기 위해 칼마저 어둠 속에 두고 떠나는 ‘잿빛 관복-죽음의 예감’으로, 죄인이 되어 조선으로 압송당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추련도에 쓰여진 한시에서 따 온 구절 ‘시호시래부재래- 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장면으로 비장감 가득한 종결로 치닫는다.
옆막을 거두어 내고 깃발을 종으로 반쯤 보이도록 세워 옆막을 대신하도록 한 것은 무대라는 정형화된 공간의 답답함을 없애는 동시에 전장의 긴장감을 돌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좋은 선택이었다. 청태종(박이표 출연)과 인조(송성주 출연)가 등장하여 불평등한 국제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에서 무대는 뒤에 바짝 붙였으나 4단 정도의 흰 계단이 무대 전반에 깔리면서 다른 장치는 다 없애 태종의 금빛 옷을 강렬하게 부각함으로써 절제감이 승리한 예를 보여 주었다.
초록색과 오렌지색 빔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무대 공간과 바다 공간, 이승과 저승 등을 환상감있게 구분해 낸 것과 마지막 장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며 길을 떠날 때, 수평으로 펼쳐놓은 빔 속을 걸어들어가 몸통이 점점 물에 잠기는 듯 보이는 장면 역시 인상 깊게 짜여진 장면이었다. 음악 역시 이 작품이 다른 무용극과는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든 요소였는데, 장면마다 다양하게 음악을 구성했으며 특히 숨소리, 비명, 목소리 등을 샘플링하여 만든 음향식 음악을 많이 사용하여 극적 표현이 가능한 시간을 확보해주고 장면이 춤동작으로 쉽게 흘러가는 것을 잡아줌으로써 긴장감을 높였다. 무대소품과 의상도 장면 안에서 섬세하게 고려되었는데, 특히 소품은 이름대로 소품이 아니라 만들어진 공이 느껴질 만큼 공예적 아름다움과 섬세함이 무대에서도 보일 정도로 다자인과 질감이 좋았으며, 나오는 장면마다 스펙타클을 만들어내는데 기발하게 사용되고 변용되어 무용수들의 이동과 동작의 구실이 되었다.
결국 김윤수 감독의 <가을 연꽃>은 시각 요소와 청각 요소들이 춤의 주변으로만 머물던 한계를 넘어 작품 전체를 위해, 그리고 작품의 미적 완성도를 향해 최대치를 끌어내어 융합시켜 놓은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 요소들이 춤을 침해하지 않은 것은 이 요소들이 안무자의 감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가 생각하는 무대 위에서의 춤을 상상하고 밑그림을 그릴 때 그는 이미 이 시각과 청각 요소들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춤을 보완하고 춤을 받쳐주도록 고안된 듯하다.
종합하면 그는 대극장 무대에서 춤이 어떻게 전시되어야 하며, 집중과 긴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연출력을 갖춘 안무가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속도감과 정지, 고조와 침잠의 극대치를 자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관객의 호흡을 낚아챈다. 보통은 한국춤의 사위가 그런 힘이 있다고 말한다. 호흡에 따른 시간요소와 에너지, 즉 장단고저를 손안에 넣고 신의 기술로 다룰 때 관객은 눈과 귀와 호흡을 빼앗겨 숨을 멈췄다 몰아쉬었다를 반복하면서 마음을 빼앗겨 간다. 그리고 한국춤은 어느 춤 보다 그런 힘을 가진 춤으로 평가된다.
김윤수가 한국춤으로 오랜 시간 다져지고, 걸출한 선생들에게서 춤의 핵심을 전수 받고, 무대춤과 무용극의 전성기에 활동하고 훈련하였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 특히 무용극 형식을 다루는 솜씨는 종합무대예술로서 한국춤의 현시점에서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무대 요소들이 섬세하고 세련되고 촘촘하게 하나의 작품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관객이 전개의 흐름에 압도당하도록 호흡의 주도권을 연출력이 가져간다.
안무가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감각이 한 작품 안에 이렇게 시종일관하게 유지되고 관철되는 경험이란 쉽지 않을뿐더러 관객의 입장에서 많은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단원들 역시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상당한 현대적 표현 기량을 갖춰 인천시립무용단의 이전의 작품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군무로 참여하면 장면이 미적으로 훌륭한 짜임새를 갖춰 돋보였고, 개별춤으로 등장하면 무용수의 감성이 표현되고 돋보일 수 있도록 다른 요소들이 비켜주어 무용수들 낱낱이 또렷이 보였다. 춤을 알고 무대를 아는 안무가의 중요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세대의 춤언어를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냈다” 등 리플렛에 보이는 문장 들 역시 심상치 않다. 그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곳곳에 그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자신감이 묻어있다.
요즘처럼 국·시립 무용단이 혼란을 겪고 있는 이때에 단체의 장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이라고 뚜렷이 소신있게 출사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내가 높이 사고 싶은 것은 작품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김윤수 예술감독이 이런 패기를 갖추고 있으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예술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한국춤 기반의 무용극은 그의 손에 의해 송범 선생 이후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흐름을 압축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등극(登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김윤수 예술감독에게 기대할 수 있다면, ‘이 흐름’과는 완전히 다른 무용극에 대한 시도를 요청하고 싶다. ‘이 흐름’이란, 무용극임에도 스토리와 구성이 빈약하여 관객이 이미 동감할 수 있는 지점이 부실한 무용극, 상투적인 정서, 즉 신파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케케묵은 정서표현 때문에 현대의 관객이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유치한 무용극,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상한 매스게임을 동원해서 시각적 볼거리와 비주얼만 감각적으로 자극적으로 흐르는 무용극, 무용극의 역사상 국가 주도예술이 되어 자연스럽지 않은 메시지 중심의 무용극을 말한다.
이런 무용극은 무용계에서 만들면 만들수록 득이 될 게 없는 무용극이다. 물론 김윤수 감독도 이 흐름에서는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자랐기 때문인지 이 작품 역시 과도한 시각적 자극, 각 장면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 다른 장면과의 배열에서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문제, 약한 내용 전달력, 감정선의 단순함 등 조금 더 다듬어져야할 지점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50여 년 동안 다져진 한국 무용극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난 다른 무용극을 추구해왔고 <가을 연꽃>을 통해 대부분 그것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용극은 인류의 오랜 문화적 산물이다. 경험과 사건을 이야기로 전달하고 소통해야 했던 절실한 필요는 이후 세대에 문화적 동질감과 축적물을 전수하는 중요한 사회적, 교육적 기능을 갖는다. 그래서 춤에 이야기를 담는 형식은 다양해질 수 있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중국 베이징에서 그들의 현대적 무용극을 본 적이 있다. 역사적 시인을 다루는 작품이었는데 요란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감정으로 여유와 위트를 담아 소박하게 자신의 영웅을 지금의 대중들에게 알려 자부심을 느끼도록 한 작품이었다.
무용극을 통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영웅과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던가? 이야기 자체로는 감동스러운 내용도 무용극이 되면 이상하게 촌스럽고 진부해져 내용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무용극 후진국에서 산지 오래다. 무용극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은 작은 감동이지 매스게임과 볼거리를 통한 감각적 만족은 아닐 것이다. 빨리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매스게임과 볼거리로 몰고 가는 행정기관의 욕심도 벗어나야겠지만 판에 박힌 정서로 감각 자극만을 하려는 무용극은 더 이상 현대에는 가치를 갖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깨어남에 김윤수 예술감독과 인천시립무용단에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