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공연’이란 부제가 붙은 2015 국수호의 춤(8월 6일, 달오름 극장)은 크게 일본의 전통 공연예술인 노(能)와 국수호가 재현한 백제시대의 춤으로 짜여졌다.
1부에 선보인 일본 노악협회의 이사인 사쿠라마 우진(櫻間右陣)의 노(能) <이즈츠 (井筒)>는 엄숙하고 장엄했다. 일본 특유의 걸음걸이와 무릎을 꿇고 앉은 남성코러스들의 인내, 그 자체만으로도 짜릿했다. 절제된 움직임, 화려한 음악 없이도 ‘노’는 그렇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만으로 전통을 얘기할 수는 없다. 역사의 정신이 예술작품에 녹아날 때, 관객들의 마음은 동(動)한다. 지겨울 정도로 느리고 단순한 ‘노’는 결코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고 둥글며 딱딱한 소리가 나는 북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두드리고, 비명소리같이 ‘옥’, ‘악’하는 음악, 긴 시간 작게 한걸음씩 걷는 걸음, 오른쪽 왼쪽으로 살짝 움직이는 남성 무용수들, 시종일관 앉아 있는 일련의 퍼포머들, 그러나 무대는 거의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음악, 춤, 대사 등 어느 것 하나도 다채롭게 변주되지 않았으나 야무지게 손가락을 치는 악사의 강한 정신과 매 걸음마다 집중하게 했던 무용수의 정확한 발걸음,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퍼포머들의 행태는 ‘노’를 독창적인 유형의 공연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2부는 국수호의 안무로 초연된 <미마지(味摩之)의 舞樂(무악)>. 미마지는 백제의 예인으로 중국 오나라에서 기악무를 배우고 백제 무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소년들에게 기무(妓舞)를 가르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첫 장면. 아스카 벽화 속의 남녀가 무대에서 환생한 듯한 몽환적인 무대와 전통적인 기법의 무대장치가 눈길을 끌었다. 작곡가 강상구가 재현한 백제의 음악은 아름답고 우아했다. 그러나 “이것 이구나" 할 정도로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늘 우리에게 친숙했던 음악이란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결국, 상상의 음악이 소리로 환생한 듯했다. 남자 무용수와 여자 무용수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영상으로 추상화되어 내용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어 미마지로 분한 주인공 국수호가 작고 야무진 장고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이 또한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조재혁에 의해 탄생된 상상의 새를 형상화 한 ‘가루라(금시조·金翅鳥)의 춤’ 또한 안무가의 상상력이 빛난 장면이었다. 진초록색의 가면에 닭의 벼슬같이 생긴 붉은 수염의 독수리 가면과 황금색 의상은 상상의 새가 무대에 환생한 듯 독특했다.
안무가 국수호의 아이디어와 강상구의 음악, 박찬수의 탈, 한진국과 이호준의 의상 등 스태프들간의 협업은 무대장치나 음악, 그리고 소품이나 의상 등에서는 다양한 볼거리와 상상 속의 백제 모습에 어느 정도 숨결을 불어넣었다. 정작 아쉬움은 무용수들의 몸짓에 있었다.
춤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움직임의 발현과 조합이다. 안무가에 의해 고안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몇 개의 동작 없이도 정신이 살아 있었던 ‘노’의 깊이에도, 현대적인 독특한 몸짓으로 추상화하여 독창적인 태(態)로 발현되는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용적으로도 5명의 무용수에게 몸짓을 전수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나열함으로써 예술가의 상상력은 빈약해져 버렸다.
“미마지가 귀족 자제에게 백제춤을 가르쳤다”는 내용을 그대로 설명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단순한 텍스트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무가의 상상력은 더욱 빛이 난다. 목에 건 장고 또한 다양한 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발상이었으나 이를 활용한 새로운 춤은 결코 없었다. 무대를 점한 무용수들의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춤사위 역시 다채로움을 방해한 요인이 되었다
상상의 세계는 무한대이다. 백제의 춤을 일본으로 전한 미마지는 그런 의미에서 매력적인 작품의 소재다. 미마지라는 인물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고, 또 상상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무가 국수호는 새로운 소재의 발굴에 적극적이다. 그런 그의 안무가로서의 감각은 결국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마지’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극장무대로 불러냈다. 그 의도와 작품에 투자한 노력에 비해 무대에서 펼쳐진 상상의 세계는 그러나 어느 일면 단순했다. 단지, 미마지가 일본에서 귀족 자제들에게 춤을 가르쳤다는 설정만으로 작품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무대는 학문적이거나 설명을 요하는 곳이 아니고 예술가의 상상이 현실로 탄생되는 곳이다. 지나친 설명과 이야기식의 무대는 극무용의 함정이 될 수 있다. 내용을 추상적으로 풀어내고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이 교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수호의 이번 공연은 절반의 상상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아쉬운 무대였다.
국수호의 안무가로서의 역사인식과 자료 수집 등을 통한 탐구정신, 이를 창작작업과 연계시키는 실천적인 노력은 국내 안무가들에게 적지 않은 귀감이 되고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과 연계시킨 기획자로서의 감각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번 작업에서의 미비점을 보완한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