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이구! 훼방 잘 논다. 와! 여자가 저렇게 바뀌었네.” 옆에 앉은 중년 여자 관객이 중얼거리는 소리로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며 즐거워했다. 공연 내내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 전체가 미소 짓든가, 소리내어 웃었다. 중간휴식시간에 80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포토존 대형 사진 앞에서 춤 동작을 따라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순간 “예술작품이란 관객들에게 꼭 이해될 필요는 없다”는 나의 평소 지론에 의문을 가졌다.
존 크랑코(John Cranko) 안무의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는 강수진 예술감독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여주공인 카테리나(Katherina) 역을 여러 번 했던 작품이다. 특히 국립발레단 예술감독(2014년 2월 부임)으로 오기 바로 전, 2013년 11월에 런던의 새들러즈 웰즈 극장(Sadler's Wells Theatre)에서 남주인공 역을 맡은 폴란드 출신의 필립 바란키뷕즈(Filip Barankiewicz)를 상대로 공연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그런 그녀의 인연과 경험 때문인지, 국립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4월29-5월 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크랑코 안무 작품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인간은 현실과 다른 판타지(Phantasy)를 동경한다. 그래서 신화를 좋아하고 현대인들은 부쩍 판타지 문학이나 영상에 더 탐닉한다. 발레는 일반인들에게 또 하나의 판타지이다. 발레가 판타지인 것은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영역, 발레가 갖는 고도의 환상적인 테크닉 때문이다. 오늘날의 발레에서 표현력을 높이 사면서도 여전히 테크닉의 숙련도가 중요시되는 까닭이다.
강수진은 언젠가 “발레 무용수들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빛이 나면 설령 작품이 좋지 않더라도 좋은 무대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국립발레단의 무용수들은 김지영을 비롯해 그 기량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최고 수준이다. 유럽의 발레단 중에는 그 나라 출신의 무용수가 아예 없거나 있어야 기껏 한 두 명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에는 실력 있는 젊은 우리 발레 무용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큰 복이다. 그런 장점이 이번 공연에서도 한국 발레만의 싱그러움과 함께 독특한 아우라를 풍겼다.
남아공 태생의 존 프랑코(1927-1973)는 세 편의 ‘완판 전작 발레(Full-length Ballet Works)’를 안무․창작해 내러티브 발레(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발레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영미인들은 Narrative Ballet라는 용어를 사용함)라는 장르를 일군 장본인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1961년 독일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장이 된 그는 1962년 <로미오와 줄리엣>, 1965년 <오네긴>, 1969년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차례로 완성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시키고 명확하게 재구성하면서 그 특유의 발레언어로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를 그대로 살려 셰익스피어 희극의 재미를 잃지 않게 했다. 특히 무대의 막이 내릴 때는 관객이 주인공인 카테리나와 페트루키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놀라움을 보였다. 계속 변하는 두 주인공의 성격과 작중 다양한 인물의 복합된 성격을 코믹하게 살리면서 무용수들이 거의 연극에 가까운 풍부한 연기를 하도록 만들었다는 특징도 있다. 그런 반면 발레 고유의 묘미를 선사하기 위해 안무의 다양성과 독창성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그가 발레 안무에 있어 천재로 치부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또한 초연부터 오늘날까지 그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발레 애호가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에 주목하고 보아야 할 세 개의 2인무(Pas de Deux)를 집어 넣었다. 처음 페트루키오가 카테리나를 길들이기 전에는 여자 무용수의 기가 더 세다. 두 번째 2인무에서는 여자를 길들이려는 남자 무용수의 춤과 동작이 역동성을 갖는다. 마지막에서는 남자와 여자 무용수가 사랑과 깊은 공감으로 조화를 이룬다. 남녀 주역 무용수는 그 세 2인무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어야 하고 관객은 그 재미를 따라간다.
약간 장난기 있는 성격에 착한 이미지를 갖는 김지영은 공연 내내 자기에게 딱 맞는 카테리나 역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세 개의 2인무를 크랑코 안무에 충실히 추어 관객에게 발레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남자 주역 김현웅은 능청스러운 성격의 페트루키오 역을 여유 있게 연기하며 김지영을 이끌었다.
이 작품에서 크랑코의 2인무 안무는 일반적인 2인무와는 다르다.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갑자기 들어 올리고 우스꽝스럽게 휙 돌려버리고 확 던지는 듯한 동작을 사용한다. 둘은 숙련된 기량이 요구되는 고난이도의 이 2인무들을 관객이 탄성을 자아내도록 정확하면서도 우아하게 추었다.
평자는 트리플 캐스팅 중 신승원, 이동훈 조의 공연은 보지 못하고 이은원, 이재우 조의 공연을 한 번 더 보았다. 춤과 연기 수준에 있어 다른 수석무용수와 진배없는 이은원은 다양한 뉘앙스의 표정 연기와 춤을 보여 주었고 키가 큰 이재우는 더욱 개성있는 능글능글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 발레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본다. 셰익스피어가 <말괄량이 길들이기>-지금까지의 번역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따랐으나 ‘고약한 여자 길들이기’로 번역해야 원 뜻에 더 가까움-를 극작한 것은 1590-1592년 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400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작품은 21세기에도 찬연한 빛을 발하며 현대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역사상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야 그렇다 치자.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1969년 초연 이래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발레 애호가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다. 그 저작권이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 팔리며 수시로 공연되고 있다. 이번 공연에 사용된 16세기 이태리 마을 풍의 무대 디자인과 컬러풀한 의상은 영국 태생의 ‘발레․오페라 무대미술가’ 엘리자베스 달톤(Elisabeth Dalton, 1940-2004)이 29세 때, <말괄량이 길들이기> 초연을 위해 디자인했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부러움과 함께 교훈을 느끼게 한다. 늘 남의 뒤를 좇아가기에 급급한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