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리을무용단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김정민, 김진숙 안무가의 <현과 타>(11월 8-9일, 대학로예술극장소극장) 공연에서 두 안무가는 현악기와 타악기의 음악적 색깔을 테마로 자서전적인 사랑 고백을 하고 있다. 김정민의 ‘동행-현(絃)’무대는 남녀의 사랑을 섬세하게 우회적으로, 김진숙의 ‘우리 집-타(打)’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희극적이며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김정민은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독백조로 풀고 있다. 얽히고설킨 마음의 겹을 한 올 한 올 벗겨가며 사랑의 의미와 자세를 찾는 과정을 보인다.
돌출된 정사각형의 흰 무대 바닥은 검정 선으로 크고 작은 사각 틀이 구획 지어져 마치 칸딘스키의 그림 구도와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다. 큰 사각 틀은 자신이고, 작디작은 여러 개의 칸들은 안무자의 심리적 공간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몸을 밀착시켜 교감하는 한 쌍과 각기 서 있는 한 남자와 여자의 유사한 움직임이 동일인으로 보인다.
실제와 이상사이의 갈등이라고나 할까? 안무자는 내적 갈등의 정도를 움직임보다는 공간 바닥면의 형광 조명 빛에 투과시켜 우회적으로 다스리고 있었고 이러한 시도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자신의 맘 상태를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적절해 보인다.
반면 움직임의 어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게 상대를 향해 갈망하는 몸짓이기에 상대적으로 단선적으로 보였으나, 내면의 격정과 고민이 추상적인 공간적 구도와 사실적 몸짓으로 혼용되어 표현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으며, 그저 ‘나’를 ‘나이게 하는 상대’와 동행하며 교감하고자 한다는 김정민의 결론은 진실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다소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움직임의 변주를 통해 얘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어지는 김진숙의 ‘우리 집-타’는 엄마에 대한 연민과 한 인간으로서 희생을 강요당한 삶의 행태를 그려내고 있다. 형형색색 각가지 옷 무더기가 한 가득 쌓여 있는 무대에서 경쾌한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드레스를 갖춰 입은 예비부부는 그 옷더미를 가로지르며 신나게 뛰어 다닌다. 결혼서약과 함께 여자가 짊어져야 할 일상의 무게임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춤꾼들은 옷더미 위에서 분주하게 빨래를 개고 음식을 마련하는 일을 한다. 갑자기 시점이 바뀌면서 춤꾼들은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엄마’를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 ‘엄마’… 한참 후에 무대 한켠 옷 무더기에 묻혀 있던 거대한 엄마가 일어난다.
옷가지로 휘감긴 거대한 몸에서 여러 가닥의 빨래 줄이 풀리기 시작하고 춤꾼들은 각기 이 줄들을 잡고 이리저리 당기며 엄마를 힘들게 한다. 그러기를 한참 후에 그들은 강아지 새끼처럼 옹기종기 엄마의 품에 가까이 안겨 안식을 취한다. 엄마는 자신의 짐 덩어리인 옷으로 그들을 다시 보듬는다. 거대한 엄마는 이미자의 노래에 맞춰 흐느적거리고 객석에서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눈물을 닦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진숙은 한 여자로서 엄마의 고된 삶의 일상을 옷무덤이라는 오브제로 적절하게 활용하여 무게감과 친숙함의 공감을 기발한 발상으로 찡하게 표현하였다. 무엇보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엄마라는 큰 집, 일상적 삶을 포용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경쾌함에서 처연한 정서로 그리고 숙연함으로 연결되는 극적 완성도가 인상적이었다.
절제된 감정과 정적으로 풀어낸 김정민의 작품은 담백한 현의 소리를 담고 있으며, 왁자지껄하게 한 판 넋두리를 풀어 놓은 김진숙의 작품은 타의 울림과 닮아 있다. 두 명의 중진 안무가들의 공연은 특별함은 없지만 군더더기 없는 정갈한 무대로 리을무용단의 안정감 있는 면모를 다시 확인 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