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년 주제는 ‘역사와 기억’이다. ‘크로씽 댄스’의 일환으로 기획된 해외안무가 초청공연이 9월 26-2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있었다.
<우회공간>(7월 25-26일)이 과거 춤 소극장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공간사랑’의 실험성을 환기시키며 역사적 시간성을 되짚어 보았다면, 이번 해외안무가 초정공연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몸이 점령할 수 있는 가능한 공간성(국가, 무대형식)에 집중한 기획이다.
해외 안무가와 오디션을 통해 선별된 한국춤꾼들과 공동작업이란 점 이외에도 아직까지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이탈리아 현대춤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또한 이번 기획은 안애순 감독의 국제적 교류와 다양한 양식적 차이를 접속하고자 한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자 코르테시(Luisa Cortesi)와 미켈레 디 스테파노(Michele Di Stefano)두 안무가는 관성적인 몸의 반응과 그에 따른 움직임의 변주를 선보였다. 루이자의 <마우싱>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와 상상을 연결한 이미지 공간으로 구성하였고, 미켈레의 <라인 레인저스>는 외부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움직임과 그것들이 공간에서 획득해 내는 구도에 중점을 두었다.
두 안무가의 표현 방식은 각각 달랐지만 각 프레이즈가 추상성 보다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제시하면서 의미를 관망해 갈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우싱>은 조명으로 설정된 좁은 공간에서 댄서 차진엽의 솔로 작업이 집중력을 발휘한 작품이었다. 무대 옆 주홍빛 물고기가 노니는 어항과 차진엽이 움직이는 공간은 어딘가 서로 통하는 듯 하였고, 타고난 용모와 실력을 갖춘 그녀의 춤은 정돈되어 보였다. 무엇보다 안무가의 여러 공간적 상황을 재빠르게 설정해 내는 이미징(imaging) 능력이 주목할 만하였는데, 안무자는 손가락만 클릭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컴퓨터 가상공간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시켜 상상과 기억을 집합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춤꾼 차진엽은 외부 벽에서 새어 나오는 온갖 소음이 놓인 곳에서 춤추고 있었으며, 이 상황은 마치 자신이 어항 속 물고기를 은유한 듯 느껴졌다. 곧바로 그녀는 공간을 이탈하여 새소리가 들리는 대자연의 어디에서 춤추고 있다가 이내 경매장에 놓인 물건이 된 것처럼 전시된 몸 형태로 탈바꿈되었다. 이같이 차진엽은 짧은 순간 시공간을 탈주하며 표상화 된 공간적 이미지를 다채롭게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실제 몸은 하나이지만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는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음을 표현 하였다.
전시된 어항 앞에 선 차진엽의 마지막 장면은 가능성 있는 오브제로서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춤꾼과 물고기, 어항 속 공간과 춤꾼이 실연한 상상의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관망한 관객들은 자유롭게 의미를 연결할 수 있게 하였다. 결론적으로 음악만으로 설정한 분위기 그리고 최소한의 무대면을 사용하였으나 움직임만으로 무궁무진한 공간이탈을 상상할 수 있게 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마우싱>이 초월적인 공간적 가능성을 기억이란 매개체로 이미징화 했다면, <라인 레인저스>는 정 반대로 감정과 의미가 배제된 형식구도로 사건의 연속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기하학적인 회화를 조각조각 파편화 시켜 놓은 느낌을 주었다.
외부조건(춤꾼의 근접성, 음악)에 따라 민감하게 몸이 반응하고 춤꾼 스스로 방향을 인지하는 방식에 주력하였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7명 춤꾼들의 스피디한 이동과 반복적인 움직임에서 읽혀졌다. 얼굴과 가슴까지 까만 색칠을 한 일명 캡틴과 6명의 전사들은 분주하게 시간차를 두고 일련의 건축물을 구축해가는 것 같았고, 까만 색칠을 한 리더, 블루, 베이지, 형광오렌지색 의상의 상징성을 축으로 구성된 군무진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춤꾼들에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 <라인 레인저스>는 몸이 생성해 내는 질감에 따라 형성되는 공간적 메커니즘을 탐구한 작품으로, 춤꾼들의 신체는 순간적인 시간 속에 배치된 비영속성의 물질로 구성된 매개체로만 사용되었다.
안무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방식을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안무의 장치학(dispositif)으로 규정한다. “예상치 못한 리듬, 무대 위의 관계, 에너지 작용이 중요하다. 그것은 현존(presence)의 고안에 관한 것이다”라고 안무가는 설명한다. 자신의 안무 방식이 순수 형식무용과는 차별점이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머스커닝험과 스티븐 팩스톤의 즉흥이 오묘하게 얽힌 형식무용에 근사한 것으로 포착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춤꾼들과 길지 않은 시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연습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춤꾼들이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동작을 수행하다보니 약간의 기술적 실수가 포착되기도 했다. 또한 안무자가 차용한 강강수월래의 역사성과 생명성은 의도만큼 부각되지는 않았다.
<라인 레인저스>는 매 장면마다 어떤 장치의 사변적 요소는 배제하였기에 명확한 표상(表象, representation) 도 없었다. 그리고 기존의 춤을 감상하는 방식과는 달리 필요이상의 무게를 두고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자유로워진 감상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춤 매체에 접근하는 표상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외부적 텍스트에 의해 작동되는 움직임으로 공간의 가능성을 조망해 내었다는 것이다.
해외안무가 초청공연의 <마우싱>과 <라인 레인저스>는 다른 배경의 안무가와 춤꾼들이 서로 교류하며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동시대성을 실현해 내는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다만 국고의 지원인 만큼 경제적인 측면에서 해외안무가를 지원하며 국내 춤계에서 얻을 수 있는 실과 득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