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현대무용단 사포 〈시선이 머물다〉
고른 춤 기량과 몰입도
권옥희_춤비평가

 온 무대가 슬픔으로 출렁이던 작품 <그대의 돌아오라>(2006). 춤 속에 억압되어 있던 슬픔과 회한의 감정이, 혹은 사랑의 감정이 어느 순간 몸을 뚫고 나오는, 이 때 풀려난 감정의, 춤의 어휘가 마치 눈물로 만든 꽃다발 같았던 기억. 이렇듯 겉으로는 잔잔하나 속으로는 깊은 고통이 흐르고, 그 고통이 관객을 홀리는 힘으로 작용하는 ‘사포’의 작품들. 짐작건대 ‘사포’의 정신은 춤의 언어가 현실을 딛고 비약하기를 바라는 것인 듯.
 현대무용단 ‘사포’(예술감독 김화숙)의 29회 정기공연 <시선이 머물다>(10월 25일, 익산솜리문화예술회관). 김자영(‘사포’ 대표)의 안무.
 춤은 얼핏 단순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 속 이미지 몇이 야기하는 것. 우선 <시선이 머물다>는 ‘탄츠 테아터’의 유행(광풍)을 따르지 않은, 오롯하게 자신의 내면에 ‘시선’을 둔다. ‘사포’ 춤의 특징이자 김자영(안무자)의 선택. 말하자면 작품은 집중하고 또 열중한 그녀의 과거와(사포의) 현재의 시간이다.




 무대 가운데 물체, 빛의 덩어리, 조명이 만들어낸 환영의 일렁임. 일곱 명의 무용수가 등을 대고 둥글게 누워 다리를 맞댄, 무용수의 흰색 의상과 맨 살의 다리가 조명을 받아 빚어내는 그림이다.
 가볍게 출렁이는 감각을 타고 춤이 흐른다. 마치 날카로운 고통 같고, 견디기 힘들었던 지난 시간 같고, 혹은 한 존재 안에 남아 있는 응어리, 현실의 깊이로도 보인다. 인상적인 장면, 이 깊이가 단순한 춤을 내내 잔잔하게, 그리고 끝없이 흐르게 한다.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공(별)들이 무대를 통통 가로 지른다. 별(공)을 잡아채고 움직임을 따라 추는 춤. 민소매의, 아래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흰색의 짧은 원피스차림의 춤이 동화 속 그림 같다. 그런가하면 마지막 춤의 배치는 검정색 의상의, 객석을 등진 채 무대에 한 줄로 늘어선 무용수들의 단단한 등과 다리에 둔다.
 안무자 김자영은 꿈꾸는 세계(어쩌면 허망한)와 구체적인 현실을 처음과 마지막에 대비되게 배치, 작품의 맥락을 간단하게 끌어낸다. 그녀는 이야기를 그리는, 춤의 형식에 추진력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음악, Renee Fleming(르네 플레밍)의 Hallelujah(할렐루야). 세 사람의 춤. 길고 검은 머리칼을 무심하게 틀어 올린, 박진경의 깊이 있게 뿜어내는 춤. 그녀의 잔영이 사라지기 전에 시작되는 김자영의 단정한 춤, 그리고 또 다시 겹쳐지는 송현주의 선이 길고 선명한 춤. 상체와 두 팔을 공중으로 젖히고 던지며 추는, 같은 듯 서로 다른 몸짓과 서정의 깊이로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장.
 특이한 것은 한 사람의 춤이 채 사라지기전 다시 일어나는 춤의 연결. 아니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뉘는 듯 나뉘지 않는 어떤 것에서 다시 어떤 것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간의 넘나듦일 수도. 이렇게 쌓인 춤의 두께가 ‘사포’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지도. 이제 40대 중후반에 들어선, 자신만의 춤의 철학과 언어를 구축해 가고 있는 이 들의 춤은 슬프고 처연하고 아름다웠다. 더 깊어질 것이다.
 ‘그대...꿈꾸는가’에서의 강정현은 원래 가지고 있던 움직임의 강인함과 에너지에 정서의 깊이가 더해졌다. 폭이 넓은 바지자락과 상의를 이용, 분출되는 에너지를 누르며 추는 춤에서 한데 섞여 들끓고 있는 꿈을 본다. 무엇을 기다려야 할 것이며, 움켜쥐어야 할 것(꿈)은 또 무엇. 춤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춤추는 자아의 성찰인 듯. 듀오에서의 김자영과 강정현은 신체적 힘의 강약, 특히 휴지에서 흔들리며 번지는 춤의 무늬, 탁월한 음악선곡이 일조한 부분으로 호흡이 좋았다.




 반면 무용수가 눕고, 밀고, 오르내리는 계단이기도 한, 안무자가 꿈꾸며 만나거나 이룩하고픈 세계의 설정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테이블. 우아하지 않았다. 간과한 것 하나 더. 세상에 대한(안무자의) 열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김자영의 보석이 박힌 흰색 원피스. 반짝이가 주는 누추함이 있다는 것, 알아야 한다.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면 의상에 맞게 헤어와 춤이 달라졌어야 했다. 반짝이는 것은 어두운 조명에 작게 반짝이던 불빛 공으로 충분했다.

 덧붙여 군무진의 고른 춤 기량과 작품에의 몰입도, 훌륭했다. 사지가 절단된, 온전히 춤만 추기엔 불안한 시절이건만, 무대 위 무용수들은 한 걸음 더 내 딛고 발전한, 이상한 무대였다. 고마운 현상.
 ‘사포’ 창단 29주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현대춤으로 이곳(전북)에 길을 냈고 그 길은 이제 많은 이들이 다니는 길이 되었다. ‘사포’의 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사족, 자신들이 사는 곳이 곧 세계의 중심, 결코 변방이 아니라는. 이 사실을 명심할 것.

2014.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