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상적이었다. 무용수들이 무대를 대하는 진지함이. 현대무용단 ‘자유’(예술감독 박은화)의 2014년 정기공연(9월 12-13일, 부산 금정문화회관 대강당) ‘wait’(기다림). 박근태(‘자유’ 대표) 안무의 〈man's diary〉와 〈always be my side〉 두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작품의 출발은 일상에서 겪은 경험이며 그 목적은 이를 춤으로 번역하고 무대로 전환시켜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좋은 작품이 되는 기준은 객관화된 안무자의 주관적 경험을 다시 질문으로 관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읽힌 것. 박근태는 세상의 사물이 제 마음의 한 표정이거나 제가 지녀야 할 심정의 지표하고 생각한다. 이는 그가 춤으로 견고한 삶을 원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그 견고함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춤 작품이 확실한 근거와 연결되어 있고 춤 동작 하나하나가 의도한대로 의미도출이 될 것을 바라고 있지만, 춤 작업이라는 것이 확실한 토대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견고한 의지를 흔들고 간혹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먼저, 〈man's diary〉. 안무자(박근태)의 일기, “1988년 3월 26일…” 으로 시작되는 내레이션. 조명 안에 갇힌 남녀 세 쌍의 무용수들의 춤. 내레이션, 다시 춤이 교차 반복되지만 춤은 사실적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가령 “(나는)사귀자고 했고,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에서 ‘사귀자’와 ‘그러자’의 다름을 가르는 움직임의 차이? 없다. 반면 이별을 감지한 남녀들이 다리를 잡고 매달리고, 등을 돌리고 서있는 등의 움직임에서는 일치되는 형식. “엘리베이터 안…”을 나타내는 중앙조명, “손을 잡았다”에서 울리는 심장소리, 무용수들을 따라 다니며 가두는 조명, 춤 구성이 깨끗하다.
음악 ‘볼레로’가 흐르면서 “동물원에 갔다”는 대사, 이별과 갈등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남녀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세 쌍의 남녀무용수들이 춤으로 그려내는, 그들 사이 빈 공간을 박근태가 가로지르며 뛴다. 내레이터(박근태)는 실제적이건 심리적이건 기억 속에 있는 정경을 말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아무리 말해도 다 말하지 못할 서사를 끌어안고 그의 앞을 지나간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안무자의 의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다.
점차 고조되는 음악, 무용수들 객석을 마주하고 양발을 앞뒤로 내 딛고 선 채 무릎을 구부리고 펴기를 반복한다. 6명이 일제히 팔을 들어 올리고 몸을 흔들고 도는 동작의 반복된 움직임. 죠르주 동의 <볼레로>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서 풀었다. 차이는 <볼레로>의 무용수들의 턴 아웃된 골반과 발에서 비롯된 춤, 〈man's diary〉에서의 무용수들은 바르게 위치한 골반과 발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이다. 이 부분을 짚는 이유. 음악, 춤의 구조, 이미지, 다른 작품에서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관계맥락 없이 가져와서 쓰는 춤의 구조 차용은 위험하다. 감각적으로 잘 풀어낸 앞부분이 안이하게 해석한 ‘볼레로’로 인해 그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분 동안 무대 장치 하나 없이 움직임으로만 구성, 그것도 지루하지 않게 춤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데서 안무자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always be my side〉. 하얀색의 긴 벤치, 검정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 벤치 한 귀퉁이에 앉아있다. 초조함이나 설렘이 읽히지 않는 기다림. 10명의 짧은 하얀색원피스 의상, 발레 5번 발 포지션을 한 채 발레동작을 하는가 하면 다른 그룹은 현대무용움직임이다. 음악 해석에 따른 7명의 여자무용수의 춤, 화려하고 풍성하나 “하나, 둘, 셋...”숫자를 헤아리며 엎드리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남자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몸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안무자는 이것을 한 무대에서 동시에 보여준다. 춤을 연구하고 있다는 증거다.
남녀가 앉아있던 벤치를 세우니 일시에 생기는 문(門). 안팎을 분할하는 공간이 생겨나자 일시에 펼쳐지는 연극적 상황. 아름다운 만큼 의심스러운 문. 무용수들이 드나든다. 남자 나가고 여자 나가고 남자 들어오고 여자 들어온다. 벤치에 앉고, 기다리고, 일어나고, 다시 문으로 나가고, 들어온다. 상황의 반복.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무용수들의 등퇴장이 이어지면서 춤이 일어난다. 극장적인 장면들이 자유연상으로 이어지는 극적인 몽타주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렇게 읽을 수 있겠다. 그(박근태)는 여러 개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갔으나 지나보니 다 바깥이었다고, 어쩌면 그가 지났던 자리는 가지 말아야 했던 곳은 아니었을까 의심스럽다. 그를 허락하지 않는 내부는 항상 남아 있고, 혹은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텅 빈 바깥에 있는지도….
또 다르게, ‘기억’은 안무자가 무용수들에게 던진 질문 ‘wait(기다림)’에 대한 시간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자를 보내고 난 뒤에 오지 않는 답장’ 이거나 ’버스가 출발하고,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거나 혹은 ’혼자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10개월 동안의...am 12:00'문장, 열망, 혹은 단순한 바람이다. 그것은(기다림) 즉흥과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만들어진 다양한 시간의 형태이기도.
슈트 차림, 흰 넥타이. 무술을 연마하는 듯한 동작. 한 팔을 위로 들고 힘을 뺀 채 흔들, 흔들리며 추는 춤. 무대 중앙에 모여 엎드리곤 계속 몸을 흔들어댄다, 좀비처럼. 안무자가 말하고 있는 'wait', 더 이상 열 수 없을 것 같은 또 하나의 문일 수도….
춤의 시퀀스가 너무 많다. 온갖 내용과 춤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자리를 찾아 정리되는가 싶으면 다시 자리를 바꾼다. 물론 동시에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해서 춤이, 그 작품이 깊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료함과 내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을 때, 깊이가 생긴다. 의상, 음악, 춤의 구조 등에서 안무자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으나, 춤이 의미하는 그 깊이가 다소 어정쩡해서 아쉬웠다.
불구하고, 부분 슬쩍슬쩍 객석으로 던져지는 질문이 감지된, 아름답고 연극적인 무대, 신선했다. 무대와 춤을 대하는 무용수들의 진지한 자세, 또한 훌륭했다.
춤으로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한 열정을 박근태에게서 본다. 절제하고 정제시켜 자신의 문장을 만들어 내 걸어야 할 시기(40대에 접어들었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너울이 자리를 찾듯, 끓어 넘치고 있는 박근태의 춤 언어 또한 곧 자리를 찾아 자신만의 독특한 춤의 언어를 가지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