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전통문화연구원 〈평양정재 연광정 연회〉
민간의 풍류 넉넉한 교방 정재
김영희_춤이론가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이 주최하고 궁중의례연구회와 한국의 장이 주관한 <평양정재 연광정 연회> 공연이 8월 2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지방정재 연구’라는 주제로 작년의 “부벽루 연회”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이다.
 1회 공연과 마찬가지로 연회 전체를 재현하기 위해 여러 등장인물들이 무대에 올랐다. 막이 오르자 연광정(練光亭)에는 기녀들이 도열해 있었고, 연회에 초대된 평양 인근의 사대부들이 떠들썩하게 객석으로부터 등장해 무대 위의 연광정으로 들어갔다. 곧 낭청의 진행으로 평양감사와 관원들이 들어와 좌정했고, 화원 김홍도도 소개되었다. 이어서 기생 점고 후, 곧 교방 기생들의 가무가 시작되었다.
 <초무>는 「연광정 연회도」의 모습과 같이 여성 2인이 단삼을 입지 않고 색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추었다. 궁중의 연회가 아니었으므로 간단한 복색을 갖추었음을 보여주었다. <초무>는 대개 연향의 시작에서 많이 추어지는 춤이다.




 이어서 <학연화대무>가 추어졌다. <학춤>이 먼저 시작되었는데, 춤의 진행은 현행 궁중학무와 유사했다. 다만 학의 색깔이 노란 황학(黃鶴)과 파란 청학(靑鶴)이다. 사자무에서도 황색과 청색 사자가 등장하는데, 무슨 연유로 황색의 학으로 추었는지 궁금하다. 학이 연꽃을 건드리자 연꽃잎이 벌어지며, 동녀(童女) 2인이 나왔고, <연화대무>로 이어졌다. 동기가 쓴 합립(蛤笠)의 방울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다음은 <선유락>이다. 선유락(船遊樂)은 배를 띠워 놓고 배 주위를 돌며 가무하는 종목이다. 원래는 해서지방(황해도, 평안도)의 이별가였다.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슬픈 가무였으나, 정조 임금 때 궁중으로 들어가며 화려하고 웅장하게 개작되었다. 이번 공연은 평양감사를 위한 연회였으므로 역시 치마저고리만 입고 춤추었다. 선유락의 “지국총 지국총” 노래는 가기(歌妓) 역할의 소리꾼이 청아하게 불렀다.
 그리고 두 마리의 사자가 등장하여 <사자무>가 추어졌다. 사자무는 중부 이북지방 탈춤에 빠지지 않는 춤이다. 평양지역 재인이 추었을 것이고, 평양감영의 잔치에서 구경꾼들의 이목을 끌었을 것이다. 다만 이 공연에서 복원된 사자탈이 「연광정 연회도」에 등장한 청사자, 황사자처럼 영험한 기운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그러나 사자춤의 동작들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포구락>과 <처용무>는 「연광정 연회도」에 기록되지 않고, 「부벽루 연회도」에 남아있는 춤이지만, 이번 공연에서 함께 올려졌다. <포구락>을 보면 포구문의 풍류안에 공을 던지지 못해 얼굴에 먹점을 찍히는 장면에서 언제나 미소가 번진다. 풍류안에 공을 던져 골인시킨 무원에게 포구문에 달린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는 점이 이번 공연에서 특이했다.
 <처용무>는 작년의 “부벽루 연회”에서 재현한 처용 탈을 그대로 쓰고 춤추었다. 연구에 의하면 이 당시 처용의 탈에는 수염이 없었고, 턱은 더 길고 뾰족했다고 한다. 다섯 가면의 색도 단일한 색이 아니라 오방색으로 다르게 표현했다. <처용무>는 신라 헌강왕 시대의 ‘처용가’ 이후 많은 변개(變改)가 있었는데, 그만큼 대중에게 영향을 미쳤고,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 복색으로 춘 점도 민간에서 다양하게 추었을 가능성을 보여준 예이다.




 평양감사를 위한 연회였던 부벽루 연회나 연광정 연회는 정재 종목이 다양하지 않다. 그러나 18세기 말 지방에서 행한 연회를 재연한 이번 공연에서 당시의 특색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우선 효명세자(1809~1830) 이전 정재 종목이 다양해지기 전의 모습이었다. 고려 때부터 추어진 <학연화대무>와 <포구락>, <처용무>가 추어졌기 때문이다. 또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연행하던 종목들이 그대로 선보였다. <선유락>은 해서지방 중심으로, <사자무>는 중부 이북에서 행해지던 종목이다. 이러한 레퍼토리 외에 춤의 복색을 허리가 긴 치마저고리로 입혔고, <처용무>의 의상 또한 여성 복색에, 오방색의 처용 탈을 착용했다.

 지방정재 연구라는 주제로 평양감사 환영연을 재현한 <평양정재 연광정 연회>는 매우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특히 정재 공연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고, 궁중과 지방의 정재를 비교하며 그 개연성을 상상할 수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연이 가능한 것은 정재에 대한 연구 성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궁중에서 행한 정재의 내용과 형식과는 다른, 좀 더 유연하고 민간의 풍류가 넉넉한 교방 정재의 양상이 그려지는 듯하다. 다음에 그려질 지방 정재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2014. 09.
사진제공_한국전통문화연구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