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창세기 3장 말씀 아담과 하와에 등장하는 사과는 뱀의 모략에 넘어간 인간 타락의 서장을 연 열매로, 하나님과 같아질 것 같은 누구나 현혹될 말한 갈등의 상징물이다. 종교적으로는 인간 원죄의 문제, 철학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문제 그리고 예술적으로는 인간 욕망의 소재로 아담의 사과는 다각적으로 은유되고 있다. 선악과인 사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친숙한 내용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변용(Transfiguration)하여 관객에게 동시대적 질문을 던질 것인가이다.
2010년 조슈아 퓨와 조현상에 의해 창단된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는 클래식 발레를 기반으로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단체이다. 창단이후 <결정적 순간> <이상한 꿈> 〈Dance with Kung-jjak〉 <몸의 협주곡> 등의 작품을 통해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올 해 신작인 〈Adam's Apple〉(7월 17-20일,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조현상의 단독 안무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기금 지원 선정작이다.
안무가 조현상은 아담의 사과를 성서적 의미보다는 작품의 모티브로서 순수함을 잃고 성공이라는 기준을 향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작품에서 사과라는 모티브는 전체 내용과 구성에서 성서적인 배경이 담지 된 표현의 중추적인 축이 되었다. ‘유혹’ ‘갈등’ ‘불안’ ‘현실’의 분위기를 연결시키는 장면마다 사과는 주요 고리로 작용했다.
머리에 까만 두건을 뒤집어쓴 남자는 관객에게 스멀스멀 다가와 사과를 건넨다. 정체불명의 이 남자는 성경에 등장한 사탄의 아이콘인 뱀 역할이라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데, 무용수들에게 두건을 씌워가며 어두움으로 유혹 한다. 이어지는 텅 빈 무대바닥에 굴러든 사과는 아담과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있음직한 선택과 갈등을 예고한다.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며 불안해하는 여자의 눈빛과 몸짓, 남녀 간 관계의 긴장감 그리고 군무진이 표방하는 사회현실에서 갈등하는 여러 갈래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성서적 스토리와 맞닿아 있다.
〈Adam's Apple〉에서 말하고자 한 인간의 내·외적인 갈등이 듀엣의 호흡이나 삼각구도의 트리오 그리고 드라마틱한 연출과 감정전개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전체적으로 안정된 무대를 보여주었다. 안무가의 ‘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라는 고민이 테크닉과 구도 배열을 통해서 성실하게 반영되었고 무용수들도 주제에 대한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했다. 다크 써클즈의 컨템포러리 발레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욕과 고민의 흔적을 작품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발레어휘에 단련된 안무가나 탄탄한 테크닉이 주는 안정감은 단체의 장점이다. 반면에 단점은 익숙한, 정렬된 대형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덧입히는 경향으로 이는 주제를 변용하는데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만든다. 이를테면 론도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솔로, 듀엣, 트리오, 군무진의 반복적인 형태배열에 현실적 고민을 입혀 감정적으로 혹은 설명적으로 주제를 전달하며 관객이 자신의 고민을 공감하리라 착각한다.
물론 발레적 틀에서는 반복되는 시퀀스도 하나의 언어이며 구성요소이고 오랜 기간 발레적 패턴이 고착된 몸에서 파격적인 몸짓과 신선한 형식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템포러리를 추구하는 단체에서 구조의 안정감만을 고수하며 어떤 형식적 탈선을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면(연출에만 의지한다면) 진정한 의미로서의 컨템포러리 즉 사유의 충돌지점은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다크 써클즈 단체가 재고할 점은 대중적인 음악선택을 가감 없이 사용하는 점이다. ‘라 비 앙 로즈’,‘왓 어 원더풀 월드’,‘오버 더 레인보우’ 같은 대중적인 곡들이 작품에 삽입되어 원곡의 친숙한 이미지와 작품에서 의도한 감정변화의 얼개를 촘촘히 채우는데 방해가 되었다. 관객이 음악적으로라도 편하게 공감하는 대중 발레를 향한 의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욕망’ ‘본능’ 같은 심층적인 이미지 대비를 오히려 가볍게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세 번째 곡(‘왓 어 원더풀 월드’)이 나온 후반부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이 되어버렸다. 현대인의 불완전한 심리가 동시대적 우리와 안무가의 고민이지만 안무가의 진솔한 고민으로만 머무른 채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했다.
안무자의 고민은 진솔하게 반영되었으나 ‘대중성’과 ‘컨템포러리’에 대한 자기 규정이 필요하다. 익숙한 형태변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순진한 스토리, 친숙한 음악의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격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길 바란다.
안무자의 대중발레를 향한 성실한 노력이 주입식으로 관객에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안무가의 고민이 관객의 고민으로 연결될 때만이 컨템포러리 발레다운 설득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타고난 천재도 필요하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이뤄내는 성과가 더욱 감동을 주기에 작은 단체의 여러 창작적,재정적 어려움을 뚫고 컨템포러리 발레에 도전하길 응원한다. 〈Adam's Apple〉은 익숙한 소재와 내용이지만 더욱 관념을 구체화하여 과감하게 변용하여 변주한다면 수작으로 평가받을 가능성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