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성용댄스컴퍼니 뮈 〈엄마와 낯선 아들, 아들과 낯선 엄마〉
다른 색깔을 가진 안무가들의 인상적인 협업
방희망_춤비평가

 김성용댄스컴퍼니 뮈가 발표한 신작 <엄마와 낯선 아들, 아들과 낯선 엄마>(Mother & Alien son, Son & Alien mother, 7월5-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2013년 한팩 솔로이스트 공연에서 김성용과 브라질 출신 안무가 지셀라 로샤(Gisela Rocha)가 공동 안무한 <엄마와 낯선 아들>을 확장시킨 것이다.
 <엄마와 낯선 아들>이 엄마의 시점에서 본 아들의 이야기였다면, 아들의 시점에서 본 엄마의 이야기를 아크람 칸 컴퍼니에서 활동했던 이력이 있는 안무가 김영진과 함께 작업하여 <아들과 낯선 엄마>라는 제목으로 1부로 배치하였다.
 공연 전체의 제목과 1,2부의 명칭이 순서가 바뀐 것이 궁금하였는데 공연을 보고난 후, 형식상으로 <엄마와 낯선 아들>이 먼저 만들어졌으므로 전체 제목에선 앞에 배치하고 내용면에서는 <아들과 낯선 엄마>가 앞에 위치해야만 전체의 구조가 완결성을 갖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작품의 영제에서 ‘낯선’을 ‘Alien’으로 옮긴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1부 <아들과 낯선 엄마>의 막이 오르면 김성용과 김영진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머리부터 서서히 부각되는데, 가만히 서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사용한 조명 효과로 뒤에서 앞으로 두둥실 떠오르듯 등장시켰다. 얼굴의 반쪽씩 나누어 돌을 붙여 기괴한 인상을 풍기고 아들 한 인물을 분열시켜 두 사람이 연동되어 추는 위압적인 춤으로 연출하여 체격과 외모가 비슷한 김성용과 김영진의 강인하고 남성적인 면모에 시너지를 주었다. 이것은 엄마와 아들을 일대일로 매칭한 것보다 갈등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었는데,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의 존재감이 얼마나 압박으로 다가오는지 확연하게 입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얼굴에 붙은 돌들은 아들이 그야말로 다른 별에서 온, 엄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낯선 존재라는 메시지도 주었지만 아들이 그것을 얼굴에서 떨어뜨려 엄마 앞에 늘어놓고 떠난 후로는 그것들을 모아 치마폭에 끌어안는 행위를 통해 아들을 추억할 수 있는 흔적, 잘해주지 못한 회한의 응어리 등의 의미로 변화해 가면서 풍부한 심상을 담아내었고 2부와 공통된 알레고리를 만들어 내었다.
 관록있는 무용가 안신희의 특별출연은 적절한 카드였다. 길고 부드러운 선으로 두 남성 무용수와 퍽 잘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고전적인 어머니상이 아닌, 자아가 분명한 현대 여성이 엄마가 되어 겪을 내면의 갈등을 시사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흰색 재킷 아래 낡아 보이는 치마와 고쟁이 속바지 의상은 그런 내면의 모순을 시각화했다.
 1부 <아들과 낯선 엄마>가 3차원의 축을 형성한 조명의 프레임 속에 세 사람의 춤을 꽉 채워 갈등을 고조시킨 채 끝났다면, 2부 <엄마와 낯선 아들>은 갑자기 황량한 공간 속에 아들 한 사람 만을 남겨둠으로써 관계의 불편함을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화제를 전환시킨다.
 헨리 무어의 조각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엄마와 낯선 아들>은 상징성이 강한 오브제들에 여러 단계의 추상화 작업을 거쳐 모티브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굳이 엄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필요가 없는, 해석의 방향을 다양하게 열어 둔 작품이었다. 청록색으로 기역자로 에두른 길과 그 끝에 있는 앙상하게 마른 가지의 나무, 물이 담긴 수조 아래쪽에 놓인 촛불과 돌무더기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공기, 물, 불, 흙-설을 연상케 하여 자연에 대한 은유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고독한 아들, 인간의 내면 풍경이라고 봐도 좋겠다.




 김성용은 기역자 길을 따라 나무쪽으로 갔다가 수조로 가서 얼굴을 적시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오는 등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루트를 몇 번 반복하면서 인적 없는 공간 속에 홀로 놓인 사람이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그런 루트 끝에는 무대 복판의 돌무더기로 돌아와 그것을 베고 눕거나 몇 개를 들어 올려 놀거나 흩뜨리거나 하면서 애착과 애증을 표현하는데 그 행위들은 동물들의 영역 표시처럼 그악스럽다가 어린 아이의 유희처럼 순진무구하다가 오롯이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품는 따뜻한 모성애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동작들은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달아오르다가 마침내 수조의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에서 강렬한 해방감을 분출한다. 이때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그의 성장배경과 취향 등에 대해 질문하면서 비로소 사회 속 관계 맺음이 시작되는 것을 암시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1부의 <아들과 낯선 엄마>와 맞물려 있다고 보인다.
 내레이션 중에 엄마가 일찍 이혼하고 홀로 그를 키웠음이 짧게 암시되는데 1부에서의 엄마와 아들의 불편한 관계와 부성의 부재에 대한 의문은 여기서 해소된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되었던 오브제들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엄마-자연-의 환유였다는 것을 일깨우고, 홀로서기의 과정을 통해 아들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화해로 나아가리라는 기대를 갖게 함으로써 1,2부 전체의 대단원을 이끌어낸다.




 작년의 한팩 솔로이스트 공연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아들과 낯선 엄마>가 덧붙여짐으로써 원래 작품이 풍부한 메타포를 가지고 다가왔던 매력이 감소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보다 분명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복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점이나, 역동적인 1부와 사색적인 2부를 통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안무가들과의 협업 속에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김성용의 매력을 한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낯선 아들>의 경우, 지셀라 로샤가 브라질 출신임에도 유럽에서 주로 활동한 이력 때문인지 서늘한 북구의 감성으로 전개하는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돌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모성까지 환기시키고 과거를 질문하는 내레이션으로 주인공의 현재를 확인하게 하는 기법 등은 아크람 칸의 <데쉬>에서 돌을 쪼개면서 유사한 방식으로 부성에 접근하게 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출발한 안무가들이지만 어떤 원형(Archetype)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2014.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