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논현동에 위치한 성암아트홀(이사장 박금자)은 4월부터 7월 31일까지 목요일에 ‘NEW FORM NEW STAGE’라는 제목으로 기획공연 무대를 꾸몄다. 6월까지 퍼포먼스그룹153, 타악그룹 타고, 최소빈발레단, 블루 댄스시어터, 댄스프로젝트 KomiD, LDP 무용단, 탄츠플레이 무브먼트 등 총 일곱 팀의 공연이 올려 졌고 필자는 7월에 올려진 세 편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이아란이 안무한 오키드 크라운 무브먼트는 <두 개의 창>(7월 3일)을 통해 고독-시선-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탐구하였다. 1부 ‘시선’에서는 쌍둥이처럼 꾸민 두 여성 무용수가 각자 상대방의 가슴과 발목을 동작의 포인트로 집중하여 손거울을 들고 춤을 풀어내었는데 두 사람이 타인의 신체를 관찰할 때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이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조용민 작가가 사진을 이어 붙여 제작한 동영상은 평범한 남성 시선의 예민한 움직임을 시시각각 포착하여 훔쳐보기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보탰다. 그 춤이나 동영상은 보통 ‘관음’이라는 단어가 갖기 쉬운 탐욕스럽고 음침한 이미지와 구별되는 건강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안무가가 먼저 ‘외로움’의 정서에 깊이 천착했기 때문이라고 읽힌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자기 내면의 결핍을 인식했기 때문이라는 기본 관점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2부 ‘창가에서’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도시 안,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이 자신을 감추고 싶을 때 적당히 감출 수 있으면서 외부와의 소통을 간절히 꿈꾸게 되는 장소인 ‘창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공연을 망친 배우, 혼자 노래하기를 즐기는 남자, 어린 아기를 돌보느라 메여 있는 댄서 엄마의 고백을 통해 덤덤히 풀었다. 바르토크의 현악사중주 음악이 닫힌 내면을 ‘긁어’ 내고, 출연자 모두가 자신의 현재를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은 솔직함이 공연 후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서도 확인된, 소박한 치유 효과가 있던 공연이었다.
전통춤의 전승과 보존을 주요과제로 삼아온 월륜 댄스컴퍼니가 첫 창작무대를 꾸민 7월 10일 공연에서는 네 명의 안무자가 무대에 올랐다.
김시화의 〈福,GO-복을 부르는 춤〉은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전통춤의 베이스가 많이 보인 작품이었다. 복(福) 글자가 쓰인 고깔을 쓴 네 명의 무용수가 복을 기원하는 의식의 구성원이 되어 선보인 군무는 비교적 얌전하고 단순한 형태에 머물렀다. 네 명이 한 몸인 듯 움직이면서도 무용수 각자의 열망이 드러나는 희구의 몸짓이 보태어졌더라면, 고깔 너머 그러한 시선이 노출될 수 있었더라면 주제를 더욱 살리며 한결 맛깔 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수석의 <두 개의 시선>과 윤혜정의 〈Dependence〉(의존)은 공교롭게도 상반기 국립무용단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두 개의 시선>은 안성수-정구호의 <단>과 음악 구성의 측면에서 그러하였는데 <단>이 타악 시나위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을 교차하여 사용하였다면, <두 개의 시선>은 구성진 소리-무대 위에 창자(唱者)를 같이 등장시킴-와 함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죽음’ 부분을 따왔다. <단>의 음악 배치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듯이 <두 개의 시선>의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는 음악 사용은 팸플릿의 불충분한 설명과 더불어 안무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만들었다. 짐작한다면, 저승사자와 배치되는 살아 움직이는 춤을 통해 죽음과 삶을 오가는 이미지들을 나열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윤혜정의 〈Dependence〉는 부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행위들을 통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무대 위에 비닐을 깔고 붉은 물감들을 쏟아 무용수들이 그 위를 밟거나 주저앉아 한지로 만든 의상을 점점 붉게 물들였다. 국립무용단이 1월에 프로젝트로 선보였던 <팜므파탈>에도 유사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닐을 걷어 올려 무용수들을 가둠으로써 부적의 맹신에 갇힌 나약함을 보이려 한 것이 너무나 일차적인 대입이거니와, 공연을 보는 내내 비닐 위 질척거리는 물감 위를 지나는 무용수들의 발목이 미끄러워 휘청 이기에 꼭 이런 방식밖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불편하였다.
의외의 소득은 안문기의 <에쿠우스의 눈>이었다. 유명한 연극 <에쿠우스>를 춤으로 가져오면서 얻은 장점은 대사의 무거움에 눌리지 않고 본능의 교감을 즉각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출에서는 말의 생명력-강인함-남성적인 것-순결한 동성(同性)간의 우정으로 그리며 여자 친구를 말과 대립되는 구도로 만든다. 이 작품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질을 초반부에 등장시키고 그녀가 말들 위에 군림하면서 알렌을 파멸시키도록 사주하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 특이하였다. 그들은 지옥에서 온 한 패거리였던 것이다. 명확하고도 새로운 해석과 사랑스럽고도 위험한 배신자로서의 말 역할을 맡은 두 무용수 손승주, 성용진의 열연이 돋보였다.
Pasha & Nu, 두 단체가 젊은 안무가를 발굴하는 기회로 제공한 <몸짓놀이>(7월 31일)에는 정혜란, 장다정, 장해라 세 사람의 소품이 무대에 올랐다.
정혜란의 <떨림>에서는 어떤 대상을 향한 두 여성의 열망과 떨림, 경쟁이 유쾌한 톤으로 그려졌다. 체구가 작으면서도 야무진 정혜란의 춤집이 눈에 들어왔다. 장다정의 〈We are all clown〉에서는 티셔츠를 거꾸로 뒤집어씀으로써 가면을 쓴 효과를 대신하고 구부정한 어깨와 숨 막히는 감정 상태를 표현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장해라의 <얼싸>는 물감을 얼룩덜룩 칠해 빈티지한 의상을 입은 세 사람이 도깨비불이 되어 한 판 자유롭게 풀어낸 무대였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세련되지 못하고 미숙한 무대 연출로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있었지만, 열악한 여건에서 노력한 성실함이 보여서 좀 더 충분한 지원이 뒤따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암아트홀 무대는 등퇴장로가 한정되어 무용 공연을 제대로 소화하기에 어려운 점은 있지만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가 짧아 가까이서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기에 관객으로서는 신작을 접하는 부담이 덜하고 안무가의 입장에서도 스케치 단계에 있는 작품들을 검증해보는 공간으로서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반기에도 참신한 창작물들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