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정훈무용단이 발표한 신작 <잊지 말아야 할 그녀...내 이름은 김복순>(8월 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무용극으로 그동안 정대협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내세워 온 ‘소녀’와 ‘나비’를 그대로 차용하여 연계성을 높이고 친숙함을 더하였다.
앳된 소녀의 내레이션이 꽃다웠던 지난 날로 관객을 안내하는 가운데 첫사랑과의 애틋한 만남과 이별,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과 폭력 속 허물어져가는 소녀들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전쟁이 남긴 상흔을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한다. 그리고 그 무거운 아픔을 털고 자유로워지는 새날에 대한 희망을 날아오르는 나비들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위로를 전하고자 하였다.
강한 목적의식을 둔 공연은 자칫 역사적 내용전달에만 주력하여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으나 <잊지 말아야 할 그녀...내 이름은 김복순>은 제법 알차게 구성된 춤의 내용으로 그것을 극복하였다. 바닥에 나란히 엎드린 남성 무용수들 위로 소녀를 굴린다던지, 대열을 물결 모양으로 얽어 울타리나 바람 부는 벌판 등의 이미지를 창출한다거나 하는 구성들이 특징적이었고, 솔로 춤과 군무가 골고루 배분되어 균형감이 있었다.
김복순 역을 맡은 한혜연은 경희대 재학 중이나 연륜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당찬 이해력으로 풍부한 표정 연기를 곁들여 쉽지 않은 배역을 소화해냈다. 첫사랑 석이오빠 역의 김형섭, 일본군 역의 정명훈 등 남성 무용수들은 고르고 안정된 기량을 가지고 있어, 자칫 정체되기 쉬운 극의 흐름 속에 과감한 도약과 회전 등을 시도하여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인 출연진들이 작품의 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높은 집중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위로가 되는 지점일 것이다.
하지만 연출에 있어서는 몇 가지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었다. 공연 첫머리에 샤막에 투사한 노란 나비의 그래픽은 나비 모양이 뭉뚱그려져 대충 급조한 모양새였고, 일본군이 소녀를 유린하는 장면에서 배경에 페인트가 번지는 그림을 넣은 것은 피를 연상시키도록 의도한 것인지 정액을 연상시키도록 의도한 것인지 모를 만큼 불필요하게 자극적이고 조야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개개인의 성(性)범죄보다 더 큰,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해진 전쟁 범죄라는 점을 상기할 때 선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관점을 흐릴 가능성은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관점의 아슬아슬함은 음악 사용과 의상에서도 나타났다. 팝스 오케스트라 풍으로 다듬은 음악과 초반부에 사용된 나윤선의 ‘아리랑’은 자칫 세련됨을 가장한 낭만주의로 흐를 여지가 있어 보였다. 나윤선의 매끄러운 보컬은 소녀들이 고향을 떠나 막 끌려갔을 때의 기가 막힌 상황에 대입하기에는 무리였고, 차라리 후반부 삼을 끼우고 풀이를 출 때 사용했더라면 더 어울렸을 것이다.
민천홍이 디자인한 의상은 소녀들의 치마폭을 꽃잎처럼 여러 겹으로 절개하여 가냘픈 느낌도 주고 회전할 때 멋스러웠으나, 일본군에게 군복이 아닌 낭인(浪人) 복장을 입힘으로써 시대 배경을 흐려서 전쟁 때 여인네들이 유린당하는 일이야 어느 시대고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쪽으로 오해될 소지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춤 공연의 평가에 엄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의의가 그만큼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간 이와 관련한 모모 연예인들의 화보집이나 말실수, 최근 한 대학교수의 저작물 등이 불러온 논란 등을 통해 냉철히 다듬어지지 않은 접근이 야기하는 또 다른 상처를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정훈무용단의 이 <잊지 말아야 할 그녀...내 이름은 김복순>이 보다 정련된 형태로 무대에 올라서, 사라지고 잊혀져간 수많은 김복순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위무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