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AYAF FESTIVAL 길서영ㆍ이동원
젊은 안무가들을 향한 연속 지원
방희망_춤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ARKO YOUNG ART FRONTIER) 페스티벌에 참가한 작품 중 5월 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올려진 길서영의 <Deformation>, 이동원의 <그녀가 바라보는 것>을 관람하였다. 이 페스티벌은 우리나라 예술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 있는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여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AYAF 사업 시행 5주년을 맞아 기존에 선정되었던 예술가들이 모여 펼치는 축제로, ‘질·풍·노·도- 질주하는 패기로, 풍부한 상상력으로, 노력하는 정열로, 도전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한 길서영은 작년 제15회 전국 차세대 안무가전에서 <Deformation. 2>으로 대상, 안무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1년~2012년 2기 아야프에 선정되어 2011년에는 세계의 여러 페스티벌, 각 무용단 단체의 워크샵을 통해 메소드를 익히고 2012년에는 영국의 활발한 커뮤니티 댄스 현장 속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춤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작년부터 연작으로 발표해오고 있는 <Deformation>은 타인에 의해 소모되던 몸을 응시하며 다시 주체로서의 몸을 부각시킨다.
막이 오르면 어둠 속에서 거대한 마네킹 같은 두 무용수(임종경, 최정식)의 신체가 등장한다. 길서영은 무용수의 어깨 위에 얹어 머리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진 보형물을 채워 머리가 없는 몸을 제시한다. 헐렁하고 바랜 듯한 느낌으로 제작된 수트가 입혀진 머리 없는 몸을 내세움으로써 삭막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몸에 대한 갖가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예나 지금이나 몸뚱어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다. 머리가 없음으로 해서 일하는 몸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부각되기도 하지만 조직 사회 안에서 감히 판단할 머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타인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는 자유롭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수트가 헐렁한 만큼 ‘결핍’의 감각은 즉각적으로 다가오며, 무용수들이 힘을 빼고(실은 보형물로 인한 압박과 시야의 제한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노력과 힘이 들어가야겠지만)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관성에 의한 옷자락의 흔들림이 딱딱하고 무뎌져 있던 우리의 마음까지 허물어뜨린다.
후반부 탈의를 하고 나온 무용수의 몸은 그 모든 껍데기를 벗어버렸기에 일견 초라해 보이지만 자유롭다. 돌출된 무대 왼쪽 벽면에 기대어 만난 원래의 몸과 박제된 몸은 소피 헝거(Sophie Hunger)의 ‘Beauty above All’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를 향해 천천히 따뜻한 위로를 나누기 시작하며 화해와 자아 찾기를 시도한다. 대극장 무대에 단 두 명의 무용수를 세웠을 뿐 세트나 조명을 더 보태지도 않았지만, 새롭게 조형된 인체는 수직방향의 허공을 채웠고 여백 자체를 공허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효과적으로 이용하였기에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안무가 이동원은 아야프 1기로서 성균관대 무용과 졸업 후 동 대학 예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있으며 현재 아지드 현대 무용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는 한편 뮤지컬, 넌버벌 퍼포먼스, 연극 등에 안무가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작품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그의 이전 작품 <무엇을 바라보는가?>와 같은 아야프 1기 연극 연출가인 오치운의 작품 <차여사>의 주제와 컨셉트를 하나로 만들어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에 비디오아티스트인 신규빈의 작업을 보태어 상황에 따른 무용수의 반응을 이미지화하여 움직임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공연을 만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무대 위로 나온 여성이 옷가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껴입기 시작한다. 하의를 껴입는 것은 한계가 있어 나중에는 상체 쪽에 주로 집중하여 둘러 비대한 실루엣을 만든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은 당연히 답답함과 무거움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여러 가지 역할들의 껍데기와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춤추기가 힘겹도록 억지로 입었던 부담스러운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어낼 때 비로소 나 자신으로 조금씩 돌아가는 느낌을 제시한 것은 앞 무대에서 길서영이 풀어낸 것과 공명하는 바가 있다.
비디오아티스트 신규빈의 작업은 주로 무대 위에 초록색의 모눈을 바둑판 모양으로 전사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공간 위에서 세 명의 여성 무용수(김준희, 박아영, 전보람)는 처음에는 바둑판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다니며 같이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각자 다른 역할로 하나의 집을 짓는다. 한 사람은 의자를 가져와 섬처럼 만들고 한 사람은 그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공간을 확보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돕는다.
제비가 둥지를 만들 나뭇가지를 물어오듯 무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의자의 개수는 늘어나고 애써 만들어진 조형은 허물어졌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하는데 그런 반복된 노력은 우리 각자가 사회적으로나 내면에서나 자신만의 어떤 영토를 찾아 유랑하고 작은 세계를 만들었다 부수었다 하면서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시도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동이 용이한 의자라는 소품을 활용한 작업들은 흔히 보여지는 것들이고 거기에 비디오 아티스트의 무대 미술을 보탠 것은 약간의 시각적인 재미의 변화를 가져왔을 뿐 특별한 연계성을 담지는 못한 것 같아 의문을 남긴다.
비디오아티스트 신규빈의 작업은 주로 무대 위에 초록색의 모눈을 바둑판 모양으로 전사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공간 위에서 세 명의 여성 무용수(김준희, 박아영, 전보람)는 처음에는 바둑판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다니며 같이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각자 다른 역할로 하나의 집을 짓는다. 한 사람은 의자를 가져와 섬처럼 만들고 한 사람은 그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공간을 확보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돕는다.
제비가 둥지를 만들 나뭇가지를 물어오듯 무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의자의 개수는 늘어나고 애써 만들어진 조형은 허물어졌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하는데 그런 반복된 노력은 우리 각자가 사회적으로나 내면에서나 자신만의 어떤 영토를 찾아 유랑하고 작은 세계를 만들었다 부수었다 하면서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시도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동이 용이한 의자라는 소품을 활용한 작업들은 흔히 보여지는 것들이고 거기에 비디오 아티스트의 무대 미술을 보탠 것은 약간의 시각적인 재미의 변화를 가져왔을 뿐 특별한 연계성을 담지는 못한 것 같아 의문을 남긴다.
이동원과 오치운의 이전 작업을 보지 못하여 <그녀가 바라보는 것>이 어떤 융화 과정을 거쳤는지 추적할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일단 결과물을 놓고 보았을 때 ‘여자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라는 큰 테두리에서 각자의 해석을 다소 산만하게 늘어놓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로 수렴하는지까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이 창작과정 중 발생한 습작이어서일까. 모티브의 나열로 끝내지 말고 하고픈 이야기에 명확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으면 한다.
2014. 06.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