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수미 & 허성임 〈튜닝〉
이지적이고 강인한 매력, 음악의 본원으로서의 몸
방희망_춤비평가

 2014 LIG문화재단의 협력 아티스트인 안무가 장수미는 니드컴퍼니(Need Company)의 단원으로 활동 중인 허성임과 두 번째 협업으로 신작 <튜닝>(Tuning)을 11월 28-29일(평자 28일 공연 관람) LIG아트홀 강남에서 공연했다.
 <튜닝>은 2013년 말 영국을 시작으로 독일, 한국, 벨기에 등으로 옮기는 레지던시, 다국적 제작진들이 참여한 리허설과 오픈 스튜디오 등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라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발표한 자전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두 여성의 유년 시절의 우정을 그렸던 전작 <필리아>에서 두 아티스트는 이지적이고 강인한 매력을 지닌 색다른 조합을 선보였었다. 이번의 <튜닝>도 그 매력을 확장하는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었다.
 그간 홍보자료를 통해 이 작품 <튜닝>에서 이기 팝, 커트 코베인, 헨리 롤린스 등의 남성 록스타들이 점유해온 록 문화—남성적인 창법과 움직임 등—를 동양인이자 여성인 자신들의 몸에 투과시켜 다른 관점에서 표현할 생각이라는 것을 예고해 왔다. 그런데 완성된 공연은 록과 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음악의 본원(本源)으로서의 몸’이라는 주제까지 두루 살피고 건드리는 만만찮은 깊이를 보여 주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오른쪽에 나와 있던 장수미와 허성임은 시간이 되자 상의를 벗고 쇼츠 차림으로 뒤돌아선 채 무대에 입장하였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아랫배, 단전 가까이에서 모으고 튕기는 힘으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어깨나 허벅지, 손끝 발끝까지 기운을 퍼뜨리려 외부로 내보내는 동작이 25분간이나 지속되었다.
 단단한 발꿈치가 복부가 일으키는 파동에 의해 비로소 살짝 들렸다 떨어지는 찰나에 무대 바닥에 깔린 진동판은 그 무게를 받아 윙- 하는 낮은 음으로 떨었는데, 전원이 들어간 채 바닥에 놓인 일렉트릭 기타까지 그 힘으로 울렸다. 공교롭게도 공연장 위층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나는 소음들(구둣발 소리, 의자를 뒤로 미는 소리, 물체를 떨어뜨리거나 바퀴 달린 트레이를 이동시키는 소리)이 여과 없이 들리는 가운데 두 무용수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고 가쁜 숨소리는 그 모든 소리와 한 데 뒤섞였다.
 수십 번 부싯돌을 비벼 불을 얻는 원시인 마냥 우직하게, 적당히 릴렉스 된 상태에서 복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며 오직 그 반동으로만 움직이는 어려운 동작을 떠올리고 터득하고 실행시킨 그들의 노력은 경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들은 우리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중요한 명제를 상기시켰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었다. 원래 음악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몸 안에서 우러나고 터져 나오던 순수한 흥이었다는 것 말이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각종 음률과 박자, 악기들, 작곡법, 음악의 장르들이 분화되고 음악이란, 전문직업인이 생산하는 것을 감상자가 소비하는 형태로 바뀌어 왔다. 심지어 요즘은 그마저도 공장을 돌려 엇비슷한 복제품을 찍어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음악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점점 멀어져 온 셈이다.
 작가들이 처음 모티브를 얻었던 록 스타들, 머리를 풀어 헤쳐 헤드뱅잉을 하고 성대가 나갈 정도로 샤우팅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대중이 열광해 왔던 건 이 시대에 멸종 위기에 처한 야성을 그들은 아직 간직한 것 같다는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습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출발했던 그들마저도 인기를 얻어 성공하고 금전의 세례를 받고 나면 거기에 길들여져 야성을 거세당하고 팬시상품으로 박제되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어쩌면 록 스타들에게서도 이미 사라져버렸을 소리에 대한 순수 본능을 일깨우려는 것처럼, 장수미와 허성임은 청중을 매료시키는 현란한 기교를 상징하는 일렉트릭 기타를 단순하게 발로 지그시 눌러 밟거나 튕겨 소리를 만들었고, 뒷머리에 비벼댐으로써 이빨로 기타 줄을 뜯는다는 전설적인 기교를 가볍게 웃어 넘겼다.
 여성의 몸이 소화해내는 야성미는 어떤 것일까. 뼈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고 강단 있는 근육을 드러내는 장수미의 몸과 보다 둥그렇고 유연한 곡선을 지닌 허성임의 몸이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마주서면서 작품은 또 다른 전환을 맞는다.




 묘하게 성적인 긴장감이 흐르고, 아마도 유명한 록 넘버의 가사인 듯한 문장들을 음률도 반주도 없이 반복적으로 읊조리고 내뱉으며 소리를 키우다가 허성임이 먼저 절정에 도달하여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렸을 때, 그 전율은 고스란히 객석에까지 전달되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날 것 그대로의 포효가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이 무대에서 그 희열을 경험한 이라면 지금까지 익숙하게 들어왔던 음악을 이제부터 다르게 듣고, 그 의미를 다시 쓰고 싶어질 만큼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스팽글 재킷을 걸치고 스피커를 이동시키며 객석으로 올라간 장수미가 허성임과 대화를 나눴던 후반부 20여분은 전반부의 강렬함이 워낙 큰 탓에 군더더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대화 속 “You lost new word.”, “You lost two words. Mother, Father.”등의 말들이 전반부의 주제를 대비시켜 갈음하였기 때문에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판단된다.
 무대 위 오르는 순간부터 설정된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인식하고,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어떤 목표 지점까지 도달해야 하며 무엇을 이끌어내야 하는지 잘 아는 영리한 두 예술가의 살아있는 눈빛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진한 동지애마저 느끼게 하는 장수미와 허성임의 시너지가 담긴 협업 작품을 꾸준히 볼 수 있길 바란다.

2014. 12.
사진제공_LIG문화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