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임지애 〈어제 보자〉 & 윤푸름 〈17cm〉
개념의 유희, 틈새에 갇힌 실험성
김혜라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의 2015 시즌 첫 공연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가진 임지애, 윤푸름의 안무(3월 27-29일) 작품이 장식했다. 작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주제가 ‘시간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었다면, 올 해는 “밑 끝 바깥” 곧, ‘공간성’에 초점을 두고 계획되었다.
 임지애의 〈어제 보자〉와 윤푸름의 〈17cm〉는 젊은 안무가답게 기존의 질서에 의문어린 시선과 질문으로 시작한다. 현재 공간에서 발견되는 습관적인 관행들과 물리적 시각에서 이탈되어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지향하는 컨템포러리한 사유를 통해 춤 언어를 확장하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이자 작년의 주제와 연속선상의 개연성 있는 시도라 하겠다.
 임지애의 <어제 보자>는 말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몸짓과 표정을 일종의 규율 속에 갇힌 관습적인 몸으로 규정하였고, 윤푸름의 〈17cm〉는 촉각적인 공간을 가로지를 수 있는 몸의 실체성에 주목하였다. 두 안무가의 시도는 일상적인 시선과 관점을 해체하여 춤의 새로운 가능성을 공간에서 개진해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임지애의 <어제 보자>에서 세 춤꾼들은 말과는 엇나가는 몸짓과 단어를 의도적으로 비틀은 움직임들을 나열한다. 발화되는 말과 자연스러운 일련의 몸짓들을 언어에 속박된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동작과 말이 불일치한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옛날 흑백 TV에서나 들었던 어색한 목소리(1950년대 영화 <자유부인>에서 발췌한 대사), 네이버 창에서 불쑥 튀어나온 영혼 없는 글귀들, 그리고 드문드문 단어에 무작위적 획을 추가하여 알아들을 수 없게 발음되는 소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난해함을 느끼게 한다.
 그야말로 언어적 기표와 몸짓 기호를 의도적으로 해체시켜 분석해보자는 것이다. 무대 바닥 흰 사각 프레임은 고정된 생각을 은유한 닫힌 공간이자 세 춤꾼이 몸의 중심점이 이탈된 움직임을 보인다. 바닥에 쓰러졌다 뒤집어지고 관절을 촘촘히 꺾어가며 엉거주춤하게 포즈를 취한다.




 <어제 보자>의 출발점은 유연한 흐름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낯선 모습을 보여 어렵지만 일부 현장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자세히 보면 언어 조합을 뒤틀어보고 몸쓰임을 달리해 새로운 관점을 보이려 의도한 것임이 분명하게 보였다. 이처럼 유기적 연결성과 재현적인 몸의 교감을 배제시킨 작품은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몸짓과 언어의 틈새를 역설적으로 환기시키는 면은 있었다.
 그러나 40여분 동안 병렬적으로 반복되는 일련의 어긋나는 행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발랄함이 흐려진다. 해체된 실체만 느껴졌으며 리듬이 배제된 활자만 가득한 작품을 긴 시간 보는 일이 마치 난해한 프랑스 구조주의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같은 끝없는 인내를 관객에게 요구하고 있어 산더미 같은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런 영향일까? 안무자의 기대만큼 틈새를 균열시키는 새로운 춤 언어의 생성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진 윤푸름의 〈17cm〉는 무대 층위를 달리하며 밑, 끝, 바깥이란 공간성을 강조한다. ‘밑’으로 끌어 내려진 실무대 바닥 ‘가장자리’에 두 남녀가 서 있다. 자연스럽게 옷을 벗은 여자는 곧바로 사라지며 무대는 ‘바깥’ 너머를 조명한다. 무대 가운데 좁게 뚫린 문 사이로 서성이는 춤꾼들이 멀리서 보이며, ‘밑, 끝, 바깥’이란 경계점을 암시한다. 이들은 또 다시 무대 안으로 들어와 거의 유사한 동작 패턴으로 섬세하게 움직인다.
 서로 머리를 쓰다듬고 입맞춤을 하고 포옹을 한다. 입맞춤하는 장면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있는 장면이 교차되며 5명의 춤꾼들은 공존하는 공간을 은유한다. 때론 벗은 춤꾼을 응시하거나 시니컬한 웃음으로 서성이는 불연속적인 상황도 연출해 내지만 전체적으로 5명의 춤꾼들은 가까이 서서 무언가에 밀리듯 유연하게 이동하고 멈추기를 반복 지속한다. 치밀한 공간 구도 배열에 적막감이 흐르는 분위기는 고요하지만 중심을 탈주하고픈 몸이 파고드는 공간으로 보인다. 작품내내 표현하는 몸과 몸이 사람과 사람의 견고한 거리라는 틈새를 밀착해 내는 영역을 보여주고 있었다.
 윤푸름은 시지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가시 밖의 영역, 다시 말해 감각적 인지로만 식별 가능한 공간을 현상학적으로 환원시켜 무한공간성의 의미를 확장해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공간의 경계와 이 공간을 배회하는 춤꾼들의 흔적이 틈새를 가로지르고 서로 침투하여 입체적 공간성으로 환원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감각으로 깨어나는 가능성 있는 영역, 다시 말해 관계의 설정과 밀착감이 무대 층위를 달리하며 몸과 춤이 다른 차원의 긴장으로 발전되는 에너지는 그 틈새 안에 머물고만 말았다. 임지애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새로운 춤 언어의 생성이 감지되지 않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밑 끝 바깥”이란 주제와 기획은 실험성과 미학적 사유를 접목, 춤언어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일련의 고민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성에 두 안무가들이 집착 혹은 개념에만 매몰된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관점의 변화를 향해 열심으로 작업하였으나, 그 행간에 숨겨진 ‘미끄러져 유랑하는 가능성 있는 공간’을 관객에게 열어보이지는 못했다. 어쩌면 국립현대무용단의 주제는 춤으로 생성시켜 내고자 한 도전이자 동시에 개념의 유희일지도 모르겠다. 개념의 세계에서 탈각된 몸, 몸으로 점령해 나가는 공간이라는 것 말이다. 아마도 관객들은 표류하는 춤 언어가 아닌 뇌를 흔드는 파격적인 실험성이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명쾌하게 공감되는 작업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2015. 04.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