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올해 서울무용제 경연 참가작으로 휴먼스탕스의 조재혁은 〈신, 시나위: 합이위일〉을 올렸다(아르코예술극장, 11월 8일). 살풀이춤에서 늘상 만나는 익숙한 소리가 시나위가락이듯이 우리 춤에서 시나위는 춤과 한몸이었다. 시나위가 신(神)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다, 민중의 소리다고 하는 등 사람 사는 현장에 시나위가 있었고 춤과 어울렸다. 시나위가 춤에서 아주 익숙하다는 것은 그 호소력이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말이다. 민속춤이라면 으레 음악가락과 함께 하는 보편적 현상 속에서, 우리 (민속)춤이 시나위와 한몸인 것은 우리 춤의 특성으로 은근 돋보이는 점이 아닌가. 시나위의 춤꾼들이 매우 익숙한 나머지 도리어 그 개성을 지나치기가 십상인 시나위에다 〈신, 시나위〉는 앵글을 맞추었다.
휴먼스탕스 〈신, 시나위〉 ⓒ서울무용제/대한무용협회 |
일반적으로 시나위는 무속의 악가무를 가리키는 한편으로 즉흥적인 연주 음악을 가리킨다. 〈신, 시나위〉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담아내는 방향으로 펼쳐졌는데, 구성이 조금 특이하다. 제목 맨앞의 신 글자를 안무자는 동일한 음의 한자 神, 身, 信, 新의 복합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며 또 제목에 등장하는 합이위일(合而爲一)의 각각에 대해 안무자가 풀이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합은 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과정이다. 이는 몸, 정신, 감정이 하나의 몸에서 만나고 흩어지는 과정이다. 위는 믿음을 바탕으로 삶이 생성하는 과정이다. 일은 가식의 허울을 벗어 하나 되는 자유의 과정이다. 合, 而, 爲, 一 각각에 대해 神, 身, 信, 新의 개념을 짝지어서 의미를 명확히 하고 공연도 이들 네 가지 짝의 순으로 전개되는 전체 4장 형식을 취하며, 마지막에 ‘흥(興) 시나위’ 장이 덧붙여진다.
휴먼스탕스 〈신, 시나위〉 ⓒ서울무용제/대한무용협회 |
이러한 구성을 좇아 〈신, 시나위〉는 쾌자에다 고깔로 차림을 한 어느 여성이 장대한 굉음의 칠흑(漆黑) 속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합(合)의 장을 연다. 그 차림새로 보아 무당이다. 무당이 팔을 경건하게 휘저으며 상체를 젖혀대는 움직임으로 휘돌아다니자 무대는 점차 밝아지고 쾌자와 고깔을 쓴 사람들이 가지런히 앉은 모습을 드러낸다. 암흑을 헤쳐 하늘이 열리고 사람 세상에서 사람들은 기원하는 의식을 집단무로 전개하기 시작한다. 而, 爲, 一의 장을 거쳐 공연의 끝부분을 장식하는 것은 집단의 난무이다. 난무에 이르기까지 일(一)의 장과 흥(興) 시나위 장은 명확한 구분 없이 연속된다.
휴먼스탕스 〈신, 시나위〉 ⓒ서울무용제/대한무용협회 |
공연 중간에 어느 여자가 남자와 대무를 펼치자 남도시나위가 반주음으로 나온다. 사선으로 펼쳐져 놓인 천 위에서 마주 보고 대거리를 하던 두 남녀가 천을 들어올려 흔들면 여자가 망자인 남자를 천도(薦度)하는 듯한 의식이 연상된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방황하고 저마다 무대에서 어지러이 난무하면서 망자를 비롯 모두들 살아 생전의 회억(回憶)들을 쏟아내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어서 사람들이 상의를 벗어 무대 한 자락에 둔다든가 여자는 그 천에 휘감기어 엑스터시의 독무를 펼치고 풀어진 천을 상대로 독무에 몰입한다. 두 남녀는 이별이 원통스럽다는 심경을 몸짓으로 토로하지만 이윽고 여자는 실성한 듯이 그 천과 함께 오케스트라피트로 종적을 감춘다. 굳이 특정하자면 진도 씻김굿과 경기도살풀이의 습속을 응용한 이 부분은 〈신, 시나위〉의 시나위가 즉흥의 소리 연주 형식을 넘어 시나위 내면의 깊숙한 정서에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휴먼스탕스 〈신, 시나위〉 ⓒ서울무용제/대한무용협회 |
〈신, 시나위〉는 이(而)의 장에서 몸, 정신, 감정이 모이고 흩어지는 양상들을 그려내는 데 애매한 점들이 있었고 일(一)의 장은 에너지의 표출과 자유의 생성 면에서 활기는 차되 단조로운 감이 짙어 다양하게 다듬어져야 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시나위와 씻김굿을 춤과 묶어 표현하면서 이 셋 각각에다 새로운 기운을 고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춤의 날렵하고 에너지가 충만하되 탄탄한 디딤새와 안정된 전신 움직임이 공연의 핵심일 것이며, 그 춤은 점차 확산되는 한국무용 또는 한국춤의 새로운 기류를 착실히 발휘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시나위와 씻김굿은 상당히 트렌디한 오늘의 패션을 차려 입은 느낌이다. 이로써 시나위와 씻김굿은 해묵고 식상하다는 인식은 동요했을 것 같고, 실제 객석의 반응이 그러하였다는 판단이다. 다시 말해, 시나위, 씻김굿, 춤은 원래부터 식상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그것들이 식상해지도록 하는 상투적인 창작 방법이 문제시되어야 한다.
휴먼스탕스 〈신, 시나위〉 ⓒ서울무용제/대한무용협회 |
공연 제목에서 合而爲一만 본다면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뜻이니 개별 소리들이 다성(多聲)의 소리를 이루는 음악 형식부터 연상하기 마련이다. 시나위를 주제로 한 공연들은 즉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들이 강하다. 이와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실제 공연에서 〈신, 시나위〉는 일반적 경향에서 더 나아가 하나이기를 소망하는 세계를 그려내었다. 공연에서 파악되는 그 하나는 인간과 신, 인간과 천지, 몸과 정신, 개인과 개인이 각자 제멋대로이면서도 일치하는 어떤 상태일 것이다. 이처럼 시나위에 대한 진취적인 접근을 이루는 〈신, 시나위〉에서 한결 주목해볼 것은, 다시 말하지만, 시나위의 형식보다 그 내면 세계에 큰 비중을 두되 그 세계를 오늘의 컨템퍼러리한(아직 다른 적절한 우리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춤과 춤 의식으로 표현한 점이다. 완성도 있는 공연을 보자니 젊은 세대의 변화하는 춤 의식이 여기서도 확연하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