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 〈사계〉(4季)
컨템퍼러리를 향한 변화 조짐
김채현_춤비평가김

지난 몇 해 서울시무용단은 레퍼토리 개발을 모색하면서 변화의 길을 타진해왔다. 이번에 올린 〈사계〉(10월 31 ~ 11월 3일, 세종엠씨어터)는 그런 모색의 일환인 동시에 전작들에 비해 변화를 적극 파들은 작업으로 다가온다. 〈사계〉가 내심 글쓴이의 관심을 끌었던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공연 전부터 〈사계〉는 우리 춤계의 원로 세대 국수호와 청년 세대 김재덕의 공동 안무작으로서 각자 심혈을 기울여온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한 무대에서 어떻게 용해(溶解)해낼 예정인지 궁금증부터 촉발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변동을 넘어 요동치는 오늘의 문명 속에서 자연의 흐름이 춤으로 어떻게 형상화될지, 즉 자연의 순환을 해석해내고 판단하는 춤의 시선과 관련하여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사계〉에는 벽면에서 바뀌어 등장하는 대형 배경 이미지들 말고는 별다른 무대 장치가 없다. 아래-위 양쪽으로 대범하게 구획된 배경 이미지들에서 아래는 산, 위는 하늘을 지시한다. 단출해 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일단 미니멀적이다. 4계절에 따라 다른 약간의 뉘앙스를 가미해서 회화적으로 처리된 배경 이미지들은 기하추상 회화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배경의 무대 도형은 눈길을 산만하지 않도록 집중시키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테지만,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춤이 역부족일 적에는 춤이 도형에 짓눌리는 역효과가 상정된다. 이번 공연에서 기하추상의 배경이 몸 움직임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춤이 무대에서 중심을 견지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사계〉는 일단 춤과 배경 이미지의 앙상블이었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공연작 〈사계〉에서 사계는 말 그대로 4계절이며 사시사철이다. 공연작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마다 독립적인 내용을 담았다. 한국인들이 4계절에서 흔히 연상하는 24절기는 공연에서 생략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일이다. 즉, 각 계절의 바탕으로 여겨지는 모습과 정서가 각 장의 주제이다. 형상화되는 그 몸짓들은 매우 다채로우며, 2가지만 간략히 예시해보자. 무대 오른쪽 앞에 움츠려 선 집단이 연회색조의 의상 차림으로 느린 몸짓에 상체를 일렁이는 모습이 다가오는 봄을 알린다. 그리고 검정색 한삼을 뿌리면서 잦은 굴신을 동반해서 활기차게 무대를 질주하는 것은 혹한(酷寒)의 고비를 헤쳐나가는 겨울의 몸짓이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4계〉는 4계절의 흐름에 대응해서 생명의 싹트임, 활개치는 기운, 거두어 모아들이는 의례(儀禮), 혹한을 헤쳐나가는 몸짓들로 계절을 묘사해 나간다. 다시 말해 계절마다 주제 동작이 뚜렷이 차이를 보이고 그 주제 동작을 부각시키는 구성법으로 계절 감각을 명료하게 각인시킨다. 주제와 변주를 되풀이하면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배제하는 이런 춤 구성법은 〈일무〉를 제하면 대체로 서울시무용단의 전작들과는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사계〉에서 가을 장에서 강강술래 원무를 활용하거나 철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상당히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띄는 대목들도 있긴 하다. 말하자면 〈사계〉는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구성에 기반하여 계절마다의 주된 정서를 춤 이미지로 구현하였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사계〉는 우선 그와 같은 명료한 설정을 기반으로 객석과의 공감을 확보할 수 있은 것으로 판단된다. 4계절의 흐름 또는 자연의 순환 같은 소재에 접근하는 춤들이 자주 노출하는 고답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발상을 보류한 덕분에 오히려 관객 친화적인 작품성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안무자가 관객에게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요구하거나 강권하기 전에 관객이 작품 소재를 수용하고 소화해내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몇 개의 예리한 산봉우리를 둔탁하게 그려둔 대형 배경 회화는 계절에 따라 연두색, 하늘색이나 붉은색으로 물들인 하늘, 보름달, 폭설의 눈발 이미지를 가미하여 각 계절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공연에서는 거문고, 아쟁, 대금, 태평소, 생황 등의 국악기 음률이 주조를 이루면서 일렉트로닉 음악이 잦거나 빠른 박자로 가세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일렉트로닉 음악이 순발력있게 응하여 국악기의 음색도 살려지되 현대적 감각과 더불어 노닐면서 춤무대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다만, 〈사계〉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기존 시각의 계절 감각, 자연의 흐름이다. 이에 덧붙여 생각해볼 점으로서, 이미 기후 위기가 상시화될 뿐만 아니더라도 계절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점차 다수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면에서 〈사계〉는 시대 감각과 다소 거리가 있고, 작품의 일부분에서나마 이런 감각을 살려 더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사계〉는 다들 아는 대로 한국무용의 원로와 현대무용의 신진으로서 자기 춤세계를 갖춘 이른바 신구 세대의 공동 안무작이다. 개별 독자적인 각자의 세계가 기본인 창작의 세계에서 신구 세대의 교류와 접목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춤계의 현실정에서는 자주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특히 정체해서 머무는 것이 속성인 원로 세대가 고인 물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그런 경우 예술적 생명이 제한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계〉가 공동 안무작으로 추진된 연유에 대해 아는 바 없지만 원로의 응낙을 전제로 하는 공동 안무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동안무자인 국수호의 열린 태도는 강조됨 직하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시무용단이나 국내의 공공무용단들이 창작에서 한계에 이르러서 소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고 수긍하면서도 정작 고인 물을 벗어나는 모습을 실행해내지 못하는 현장 동향에 비추어 이번 공동 작업은 신선한 감마저 든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이번 공동 작업은 한국무용가와 현대무용가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움직임은 컬러풀하고 싱싱한 느낌을 주었으며 다양한 동작들이 주제와 변주를 비교적 빠르게 되풀이하였다. 〈사계〉에서 이런 점은 한국무용가와 현대무용가의 공동 작업에 힘입은 바가 매우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봄·여름의 장은 김재덕 현대무용가가 맡고 가을·겨울은 국수호 한국무용가가 맡았다. 그런 자연스런 결과로서, 작품 전반부와 후반부는 각각 몸 놀림과 춤 대형의 모양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그렇게 나누는 가운데 두 안무가 사이의 조율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더라도 두 안무가가 절반씩 나누어 맡은 작품 중앙을 횡단하는 어떤 분할선은 있었다.



서울시무용단 〈사계〉 ⓒ서울시무용단



한 편의 작품에서 두 안무가의 시선과 솜씨를 동시에 흡입하는 방식으로서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그 여럿 가운데 〈사계〉는 작품을 양분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로써 생겨나는 분할선으로 인하여 작품 중도에 분위기와 호흡이 바뀌어지면서 〈사계〉에서는 1부(봄, 여름)를 본 다음 2부(가을, 겨울)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처럼 두 안무가가 작품을 전반부, 후반부로 나눠 맡지 않고 4계절 각 장마다 함께 안무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춤 장르가 달라서 움직임 운용이 다르며 세대 차가 있으며 함께 작업한 경험이 전무한 터에 이 방법은 두 안무가에게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 것 같다. 이는 컨템퍼러리댄스와 컨템퍼러리발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현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 같은 유형의 작업은 국내에서 여태까지 전무하겠으나 미구에는 이뤄져야 할 일이다. 차선책으로, 이번 〈사계〉에서 두 안무가의 실질적인 협업으로 이뤄지는 한 대목을 추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다. 가령 예컨대 4계절 다음의 다섯번째 계절(제5계)을 설정하는 식으로 4계절의 순환 또는 의미 전체를 통털어 다시 음미해보는 장이 상상된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사계〉의 각 장은 저마다 각 계절을 위한 노래로서 완성도를 갖는다. 그리고 기하추상의 컨템퍼러리하되 강건한 분위기는 몸 움직임에 굳센 질감을 더하였다. 한국무용 분야도 컨템퍼러리댄스 단계로 진입하는 중인 현시점에서 〈사계〉는 현대무용 계열의 컨템퍼러리댄스를 한국무용 분야가 흡입하고 융합하는 방도를 과제로 제기하였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4. 12.
사진제공_서울시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