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진한 〈어 다크룸〉
어둠의 방에서 파헤친 소외
김채현_춤비평가

소외가 그득한 사회에서 소외는 개인들의 특별한 감정 상태로 여겨지기 일쑤이다. 이럴 경우 소외는 개인 성격의 소치로 치부될 뿐 사회적 병리로 인식되기 어려워진다. 소외는 근대 이후 등장한 개념이다. 근대 산업 사회의 화폐상품 경제 속에서 인간이 자신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은 소외로 개념화되었다. 사회 속 고립, 고독으로서 소외는 개인과 소집단 사이의 따돌림-왕따와는 성격이 다르다. 소외를 근대의 사회적 병리로 재촉한 중대 요인으로 도시화의 흐름이 지적되기도 한다. 춤에서도 보편적 소재가 된 지 오래인 소외를 최진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같은 제목의 안무작 〈어 다크룸〉(어느 어둠의 방; 2. 8~9., 플랫폼엘)에서 그려내었다. 공연은 화이트 큐브 공연장의 4면 벽에 흰 관객석을 배열하고 3면의 벽에다 디지털 이미지를 비추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어 다크룸〉의 올해 공연은 지난해 공연을 다듬은 것이다. 두 공연의 얼개와 내용은 유사하되 장면과 음악 구성에서 차이가 있었다. 공연 전과 공연 초입에 부르카 스타일의 가운을 뒤집어쓴 출연 장면은 올해 추가된 것이고, 무리들이 누워 시작하던 장면이 올해는 무리들이 선 상태로 시작하며, 음악에서도 올해는 둔탁한 타악이 처음부터 주도하였다. 지난해 공연에 비해 주제를 강조하고 집중성을 높였다. 전체적으로 안무자는 〈어 다크룸〉에서 소외 해소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 다크룸〉은 소외된 사람(들)의 어떤 움직임의 양태에 집중함으로써 소외의 모습과 상황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최진한 〈어 다크룸〉 ⓒ김채현



〈어 다크룸〉에서는 공연 시작 전부터 낮은 소음이 들리는 가운데 어느 출연자가 두 눈 부분만 도려낸 부르카 스타일의 하얀 가운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무대 중앙에 서 있었고, 공연 시작 후에도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암전으로 장면이 바뀌자 스킨수트 차림의 사람들 예닐곱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스킨수트가 특이해 보이는데, 머리와 얼굴을 완전히 가린 복면과 전신을 가린 스킨수트는 연결되고 수트에는 주황색과 파랑색으로 아메바 무늬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모두 동일한 스킨수트를 입어서 그들이 성별과 개인들 간의 차이를 떠나 동일한 상황에 처한 단일한 무리임이 쉽사리 감지된다. 그들은 제자리에 서서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며 그럴 동안 딱딱한 물체를 세게 두들겨서 내는 둔탁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이 집단의 움직임 또한 특이하다. 스킨수트에다 양말을 착용한 이점에 기대어 그들은 선 상태에서 바닥에 굳게 밀착된 발을 바닥에다 문지르며 발 방향을 바꾸거나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어 다크룸〉의 기본 움직임이라 지칭할 만한 이 동작들을 행할 적에 바닥으로부터 발을 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출연자들 사이의 간격을 벌릴 적에 발을 살푼 떼는 경우가 있어도 무릎 굽힘은 거의 없다. 공연 후반부에서 집단의 움직임이 격해진 부분들에서 무릎 굽힘이 더러 보이긴 한다. 무릎 굽힘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서 진행되는 움직임들은 일반적인 춤 무대와 비교해 좀 색다른 양상의 움직임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바닥에서는 드러누운 동작과 팔로 상체를 괴고서 모로 누운 동작이 대체로 정지 상태로 진행된다.





최진한 〈어 다크룸〉 ⓒ김채현



이 동작들을 기반으로 출연진들은 무리를 지어 선 상태에서 전신을 앞뒤로 일렁이거나 양팔을 옆이나 위로 뻗치거나 또는 느린 달리기를 할 때처럼 양팔을 앞뒤로 내젓는 동작들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한 무리를 이루는 일곱 명의 집단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합쳐지곤 한다. 그 가운데 두 남녀는 서로 접촉하여 서서 또는 바닥에서 격하게 엉키기도 한다. 이들 순간에 그 한 사람 또는 두 남녀의 신원이나 정체성은 특정되지 않으며, 관객은 그들의 행동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어 다크룸〉에는 다채로운 디지털 이미지들이 활용된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색종이로 오려 붙인 납작한 평면 느낌의 사람 도형, 큰 4각형들이 배열된 도형, 자잘한 점과 선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망을 이루는 추상 도형 같은 이미지들이, 공연 중반부부터는 거실 소파, 카세트 테이프, 구식 전화기, 우산, 꽃, 빌딩, 의자, 잠수함, 여객선, 매직 큐브, 핸드백, 손, 대도시, 들판 이미지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공연장의 3면 벽, 그리고 종종 바닥에서 그 이미지들은 고정되지도 않은 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보였다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공연 전개에 있어 전반부에는 딱딱한 물체를 세게 두들겨 내는 둔탁한 소리가, 후반부에는 그보다는 빠르고 멜로디를 가미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며 주도한다. 이 모두 짧은 소절의 소리이고, 소리와 움직임 사이에 특정한 관계가 설정된 것은 아니어서 효과음의 성격이 짙다.

공연 막바지에 앞서 소개된 디지털 이미지들이 다시 떠돌 동안 집단의 사람들이 하나씩 기어서 사라지고 한 사람이 남는다. 혼자 남겨진 그 사람은 누워서 꿈틀대다 몸을 일으켜 두리번대다 멍하니 앉는다. 여전히 디지털 이미지들이 떠돌며 그 사람과 무대를 뒤덮을 동안 암전이 이뤄지다가 무대는 다시 밝아진다. 딱딱한 물체의 그 둔탁한 그 효과음이 다시 들리고 스킨수트 위에 흰옷을 걸친 사람들이 쇼핑백, 우산, 핸드백, 배낭, 곰돌이 푸, 머리리본 등을 소지하고서는 각자 뻣뻣한 자세로 서성대는 사이에 무대는 완전히 암전된다.

바로 선 상태에서 바닥에 굳게 밀착된 발을 바닥에 문지르며 발 방향을 바꾸거나 미끄러지듯이 또는 발을 살푼 떼서 이동하되 무릎 굽힘이 거의 없는 움직임은 퍽 인상적이다. 로봇이나 마리오네트에서 흔한 그런 움직임에 힘입어 〈어 다크룸〉의 표현성은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움직임에서 자기 주도성 또는 자기 결정성이 부재한다는 점은 소외된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소외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행동거지 즉 움직임의 양상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더라도 예컨대 엉거주춤처럼 자기 주도성이 결여된 움직임을 소외된 징후의 하나로 상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최진한 〈어 다크룸〉 ⓒ김채현



〈어 다크룸〉에서 일렁이거나 서성대는 자세들도 이와 유사하게 풀이된다. 공연 도중에 등장하여 번뜩이는 두 눈동자들의 애니메이션은 수시로 타인을 의식해야 하는 감시 그리고 고립의 은유로 다가온다. 또한 부르카가 연상되는 하얀 가운을 온몸에 뒤집어쓴 모습은 소외된 사람이 스스로 수행하는 자기 은폐 그리고 관계 단절의 고립으로 해석된다. 출연자 전원이 얼굴과 온몸을 가리며 착용한 스킨수트에 대해서도 동일한 해석이 적용될 만하다. 특히 출연자 한 사람이나 일부가 아니라 전원이 똑같은 스킨수트를 착용한 사실, 로봇 같은 동작들을 집단적으로 행하는 사실에서는 소외가 너나 없이 만연한 현상이라는 안무자의 진단이 읽혀진다.

공연의 종지부에서는 출연자들이 각자 쇼핑백, 우산, 핸드백, 배낭, 곰돌이 푸, 머리리본을 들고 서성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 앞서 거실 소파, 카세트 테이프, 전화기, 우산, 꽃, 빌딩, 의자, 잠수함, 여객선, 매직 큐브, 핸드백, 손, 대도시, 들판 등의 이미지들이 등장하였다. 이 이미지들은 공연에서 인과관계를 갖지 않으며, 그것들 사이에는 현대 산업의 상품 또는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꽃, 손, 들판 또한 산업의 대립항으로서보다는 역시 현대 산업과 결부되어 수용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보듯 안무자는 오늘날의 (산업) 사회를 배경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궁극적으로 사회로부터 고립된 탓으로 개개인의 의미와 자존감이 미약해진 심적 상태가 어둠의 방이다. 그 심적 상태가 너무 보편적이어서 인간 본연의 무의식으로 오인될 정도이다. 하지만 〈어 다크룸〉이 묘사하는 대로 기실 그것은 의식 외부의 사회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근현대 사회의 병폐인 소외, 소외된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어 다크룸〉과 함께 다시 생각하는 처방전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5. 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