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송송희 〈아까시〉(2025)
집을 기억하는 춤
한석진_춤학자, 비평가

안무가 마텐 스팽베르크(Mårten Spångberg)는 안무와 건축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논한 바 있다. 건축이 공간을 구획하여 구조를 세운다면, 안무는 움직임을 조직하여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축은 시간의 역학에 대해 공간을 응집하는 구조를 세우는 반면, 안무는 안정적인 공간 속에서 시간의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조직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1) 그렇다면 춤과 집의 관계는 어떠할까? 스팽베르크가 말하듯, 안무는 가능한 것을 공고히 하여 예측가능한 것으로 만들지만, 춤은 조직화되지 않는, 구조화에 길들여지지 않는 표현이다.2) 작품 〈아까시〉(2025)에서 안무가 송송희는 건축과의 인과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고정된 무엇으로 집을 상정하지 않는다. 대신 최초의 상태에서 몸의 경험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춤과 유사한 ‘집’을 만든다. 잡히지 않는, 사라진 집,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춤과 같은 집이다.

작품명 ‘아까시’는 안무가가 과거에 실제로 살았던, 4대강 정비사업으로 사라진 집이 위치했던 부여 규암리 149번지 빈터에 남은 나무 이름에서 가져온다. 아까시나무는 아카시아나무와 생김새가 유사해 아카시아로 혼동되어 불리지만 사실 다른 나무이다. 아카시아와 아까시가 구별되지 않고 결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다르게 기억되고 명명되는 상황은 그 형체가 남아있지 않고 기억과 경험으로만 남은 규암리 149번지 집을 되살려 재현하려는 작업과 연결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작업이 선보이는 공간인 한남동에 위치한 LDK는 2021년까지 약 40년간 대사관저로 사용된 주택이라는 점이다. 매 전시 및 공연마다 다른 서사와 공간성을 지닌 집으로 변모된 LDK에서 송송희는 규암리 149번지 집을 다시 그려낸다. 기억으로, 뜨개질한 천으로, 그리고 춤으로 집을 짓는다.

〈아까시〉는 1층 전시와 2층 공연으로 구성된다. 1층 전시에서는 규암리 149번지 집의 물리적, 정신적 흔적을 기록한다. 어린 시절 그 집에서 겪은 사고로 인해 몸에 남은 화상 상흔을 본떠 만든 석고 조각, 송송희와 부모님이 그린 집 평면도, 집의 벽과 지붕 색을 반영하여 노란, 파란 실로 평면도를 도안 삼아 뜨개질하는 영상, 집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댄스필름 〈규암리 149〉(2022), 집이 있었던 빈터에서 이뤄지는 안무가의 솔로 공연 〈아까시〉(2024) 영상,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남긴 안무 노트가 전시되었다. 어떤 자료에도 규암리 149번지 집의 물리적 실재는 확인할 수 없다. 집이 사라지고 남은 공터, 상흔의 복제물, 기억으로 재구성한 집 평면도, 천, 움직임만이 존재한다. 불완전하고 흐릿하게 남은 집에 대한 기억은 2025년작 〈아까시〉에서 세 명의 무용수 몸과 LDK 공간을 경유하여 재현된다.







송송희 〈아까시〉(2025) ©류진욱/송송희



공연이 시작되는 2층으로 올라가면 집 평면도를 보고 뜨개질한 두가지 색의 천이 여러 방 곳곳을 이으며 걸려 있다. 망처럼 보이는 천의 다공성에 의해 LDK의 공간성은 지워지지 않은 채 각자의 장소성을 왜곡하며 겹쳐진다. 베이지, 갈색 계열의 의상을 입은 세 명의 무용수는 자신의 캐릭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각기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움직임을 수행한다. 그들 간의 시선 교환이나 움직임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관객과도 마찬가지이다. 거실과 세 개의 방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하는 관객을 통과하여 지나가면서 철저하게 짜여진 시퀀스를 이어간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그 떨림이 온전히 전달되는 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된 무용수는 ‘집 되기’를 실천한다. 평면도와 안무노트에 집 내부 구조를 어린 시절의 발걸음 수로 복원하듯, 무용수들은 균일한 보폭으로 걸으며 공간의 크기와 형태를 상상하게 하고, 집 안 오브제를 직관적으로 형상화하며, 집안의 일상적 움직임을 재현한다. 직선적이고 분절적이며 반복적인 움직임을 수행하다가 종종 정지한 상태에서 몸 전체가 흔들리는데, 이미 마치 화면이 멈추거나 기억에서 지워지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송송희 〈아까시〉(2025) ©류진욱/송송희



20여 분이 지날 때쯤 세 무용수는 처음으로 동일한 포즈를 취하고 흔들거린다. 이후 맨 첫 장면으로 돌아가 각자의 움직임을 변주시키면서 다시 전개된다. 이러한 변주는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집 안에서 일상적으로 들릴 법한 물건 부딪히는 소리, 물소리 등이 울려 퍼진다. 공연 중반부를 지날 때쯤부터 시계 소리를 나오고 무용수들은 자신이 수행한 주요 동작들을 수행하다가 자리 이동하는 것을 반복한다. 점점 동작이 빨라지고 쿵쿵 소리를 내고 점프하면서 균질된 움직임은 깨지기 시작한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했던 전반부와는 달리 몸의 힘이 빠지고 흔들거린다.

강한 비트의 테크노 음악 사운드가 이어지면서 무용수들은 1층으로 이동하여 공연을 이어간다. 공간을 직선으로 구획하며 균일적으로 걷다가 점차 그 속도가 느려지면서 사운드가 멈춘다. 유지하기 힘든 자세에도 변화하지 않는 표정과 숨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무생명 객체가 되는 이들은 이내 누워서 정지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몸의 떨림은 미세하게 계속된다. 물리적 집은 사라지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죽지 않고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듯이.





송송희 〈아까시〉(2025) ©류진욱/송송희



1층에 전시된 영상 중 2024년 안무가의 솔로 공연 〈아까시〉에서는 집이 사라진 공터에서 고정된 신체 방향과 집의 크기를 상정하고 공간을 분명하게 구획하면서 구조화하는 시도를 한다. 부암리 집의 공간은 평면도에 조직화되고 어린아이의 발걸음 수로 정량화되는 과정이 동반되었다. 2024년 솔로작에서 보여준 다수 동작이 2025년 공연에서도 차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2025년 〈아까시〉에서 안무가는 기억에 남겨진 집은 가시적 실체로 획득하거나 고정화할 수 없음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평면도를 바탕으로 뜨개질한 것이지만 더 이상 공간적 구조를 지각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천 설치물, 시간이 흘러 왜곡되는 기억처럼 세월이 흘러 변화된 석고로 본뜬 상흔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세 명의 몸에 다르게 기억되는 집의 구조, 형태, 상태, 그 안의 움직임과 오브제들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희미해지고 잊혀지는 듯하지만 또 다시 소환되는 전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으로든 존재할 수 있는 부암리 집은 그렇기에 춤을 통해서 다가가는 것이 그것의 실체에 다가가는 최적의 방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춤으로 집을 그려내는 과정은 신체적 경험을 통해 창발된다는 점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무용수의 수행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퍼포머 박선화, 이경진, 정록이는 LDK 공간에 부암리 집을 창발시킴으로써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집 되기’를 실천하는 탈영토화하는 그들의 퍼포먼스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다. 다만 퍼포먼스와 동반된 전시가 집을 그려내는 작업의 한 파트로서 함께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을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섬세한 고민이 요구된다. 안무노트를 보여주는 것은 관객이 집을 지각하는 데에 어떻게 작동되길 원하며, 파일 바인더에 넣어서 배치하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에 대한 안무적 전략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작을 관람하는 것이 단순히 안무가의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해당 공연과 어떤 의미적, 경험적 관계를 형성하길 원한다면 전작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도 안무적으로 기획되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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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텐 스팽베르크(2020), “포스트댄스, 그 변론”. 불가능한 춤. 김성희 편, 김신우 역. 작업실유령, 167-169. 2015.
2) ibid., 177-178.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25. 9.
사진제공_류진욱/송송희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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