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황수현 〈싱크 디 싱크〉ㆍ 정다슬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
춤을 디싱크/디코드 하기
정옥희_춤비평가

오늘날 춤계는 개념무용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개념무용, 혹은 농당스(non-danse)는 2000년대 이후 유럽 컨템퍼러리댄스의 일부 경향으로 움직임 밀도가 낮은 춤을 지칭한다. 춤의 근대적 테제, 즉 춤의 본질이 움직임이고 그 움직임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춰 세웠다는 점에서 1960년대 포스트모던댄스와도 연계된다. 해당 예술가들이 이 명칭을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춤 같지 않은 춤’ ‘움직임보다 개념으로 작업하는 춤’ 이상으로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고도로 발달한 개념무용은 일상 몸짓과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관객에게, 심지어 제도권 무용인들에게 허술한 춤이나 장난질처럼 여겨진다. 춤이 열정, 노력, 구도의 은유로 여겨지는 데 비해 이 춤 어디에 ‘제작’(poiesis)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노동이 비물질 노동으로 거듭나는 세상에서 비물질춤도 얼마든 가능하다.

한국 춤계에서는 페스티벌 봄, 옵신페스티벌 등을 구심점으로 개념무용 창작자들이 등장했다. 주변부의 소규모 작업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주류 극장, 국공립 단체와 협력하고 지원금도 받고 있다. 개념무용이 하나의 장(場)이 된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면서 이제 플레이어들의 개성과 역량도 드러나고 있다. 흥미진진하다.

황수현의 〈싱크 디 싱크〉(2025년 8월 14-16년, TINC)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다년 트랙으로 선정된 프로젝트이다. 몸의 감각에 주목하는 황수현은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카베에〉 〈Zzz〉 등의 전작에서 감각-감정-신체의 느슨한 연결, 그리고 몸에서 몸으로 전이되는 감각을 탐구해 왔다. 이번 〈싱크 디 싱크〉는 감각, 인지, 언어, 텍스트, 소리의 연결고리를 끊어내 낯설게 하면서도 이들의 새로운 연결과 확장을 보여준다.



  

황수현 〈싱크 디 싱크〉 ⓒ박지선



옛 교회를 개조한 TINC(This Is Not a Church)의 너른 실내 공간이 색종이를 반으로 접은 듯 배치되었다. 양 가장자리 객석이 마주 보는 가운데 두 퍼포머가 180도 대칭으로 바깥을 향해 앉아 있었다(첫날 공연에선 중앙선에 놓인 방석에 관객이 앉았다). 관객으로 인해 분리된 채 무릎 꿇고 앉은 두 퍼포머(황수현, 정나원)는 서서히 상체를 원을 그리며 시동을 건다. 겉으론 평온하되 내부에선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동기화된 듯하면서도 조금씩 빗겨난다. 마찬가지로 개인 몸의 움직임과 발성, 소리와 의미 역시 동기화를 벗어난다. 일상적 발화라면 개인의 뇌가 몸을 자극해 발성기관을 작동시켜 발화하고 그 말의 의미가 타인에게 명확히 전달되기 마련이지만 여기선 모든 게 어긋난다. 입술을 아예 움직이지 않거나 손으로 조작해 인위적으로 읊조리지만 혀 차기, 한숨, 트름 등의 소리처럼 별다른 의미값을 지니지 않는다. 발화가 아니라 발성의 퍼포먼스다.



황수현 〈싱크 디 싱크〉 ⓒ박지선



〈싱크 디 싱크〉는 사지(四肢)의 춤이 아니라 성대(聲帶)의 춤이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폐, 성대, 비강, 입술에 이르기까지 몸속 깊이 똬리 틀고 있는 발성기관이 춤춘다. 이 축축한 근육들은 춤의 매체로는 여겨지지 않지만 황수현의 작품에선 이들을 중심으로 춤이 발생하고 연동되고 해체된다.



  

황수현 〈싱크 디 싱크〉 ⓒ박지선



바닥을 밀어내다가 일어나 뒷걸음질하던 두 퍼포머는 어느 순간 양분된 공간을 가로질러 접촉한다. 물론 발성기관의 말단부인 입술로. 그게 겉으론 키스로 보일지도 모른다. 여성 무용수 두 명이니 동성애적 코드도 어른댄다. 하지만 세상에 이처럼 무성애적인 입맞춤은 없으리라. 접촉한 두 발성기관은 확장된 악기처럼 음향적 공명을 만든다. 입술이 완전히 맞닿는 순간 소리가 먹혀들어 상대방의 뱃속까지 울리고, 입술에 틈이 생길 때마다 쩍쩍 쪽쪽 쇳소리가 난다. 나란히 포개어져 걷다가 떨어진 두 몸은 다시금 분리되어 소리를 주고받는다. 떨어져 있는 나무에서 빽빽 울며 구애하는 매미처럼 음향적 공놀이를 펼친다.



황수현 〈싱크 디 싱크〉 ⓒ박지선



오랫동안 춤에서 춤 작품(dance), 춤꾼(dancer), 춤추는 행위(dancing)의 동기화가 당연시되다가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균열이 생겼다면 황수현은 나라는 주체의 감각과 사고, 행위와 의미를 탈동기화함으로써 근대적 주체에 질문했다. 독무였다면 탈동기화에 머물렀겠지만 이인무로 행했기에 해체된 감각들이 어떻게 확장되고 재배치되고 새로이 연결될 수 있는지 제시했다. 몸속에서 인사이드 아웃으로 추어낸 춤이라 하겠다.



정다슬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 ⓒ전소영@audiovisualunion



정다슬의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2025년 8월 15-16일, 윈드밀, 이하 〈PINK〉) 역시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이다. 안무가의 전작 〈『무용보읽기』 읽기〉 〈『무용보읽기』 추기〉 〈무용보읽기: 사관장과 전사들〉과 이어지는 북한 자모식 무용표기법 연구 프로젝트의 최신작이다. 나는 전작들을 보지 못했으나 큰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아 왔는데, 라바노테이션으로 기록한 도리스 험프리의 〈파르티타 V〉(1942)를 독해, 재연, 성찰, 발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보 재연이 학회 연구발표가 아니라 창작 공연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라바노테이션이 아니라 북한 자모법이라는 점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드는가 궁금했다.

윈드밀은 중앙 계단을 둘러싼 ㅁ자 구조의 공간으로 퍼포먼스는 한 지점에서 시작해 각 면을 이으며 진행되었다. 우선 의자가 놓인 공간에서 기보 해석 과정을 담은 영상을 관람한 후 이동해 무보 해석 과정의 실연과 완성된 재연 퍼포먼스를 관람한 뒤 작품 텍스트 자료 및 크레딧 영상을 관람하는 순으로 무보 해석-재연의 과정을 선형적으로 구현했다.





정다슬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 ⓒ전소영@audiovisualunion



영상은 안무가를 비롯한 리서처/퍼포머들이 더듬더듬 무보를 읽어가며 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안무가가 북한 자모법의 기본적인 틀과 원칙을 설명해주며 초반에 리드하면 다른 이들이 기호 하나, 동작 하나를 맞춰가며 체화한다. 영상은 의도적으로 아웃 포커스, 익스트림 클로즈업, 오프 프레임 샷을 동원해 무보 재연의 지난함과 공동체적 헤맴의 과정을 드러낸다. 때때로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고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무보 바인딩이 클로즈업 되며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가려는 리서처들의 고군분투를 가시화한다.

영상 속 무용수들이 무보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원 투 쓰리 포’ 구령을 반복한다. 북한 무보를 ‘원 투 쓰리 포’로 읽는다는 아이러니를 곱씹고 있자니 영상 바깥 공간 저편에서 공명이 들려온다. 마치 영상에서 빠져나온 듯한 무용수들이 둥글게 모여 구령을 반복하며 무보 속 각자의 춤을 눈으로 읽어낸다. 관람객으로선 이따금 불규칙하게 변형되는 8카운트만 바라보게 되지만 퍼포머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몸속 어디선가에서 꿈틀대는 춤을 상상하게 된다. 카운팅을 마친 무용수들이 다시 카운팅 한다. 이번엔 개별적으로 조금씩 이동하지만 무대 마킹(marking)이나 스페이싱(spacing)이라 부르기엔 불완전하다. 다시금 관객은 카운팅 아래로 스며 나오는 제스쳐나 정서를 감지하려 애쓴다.



정다슬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 ⓒ전소영@audiovisualunion



마침내 재연의 무대. 검은 옷차림의 일곱 퍼포머가 북한 안무가 홍정화의 〈사관장과 전사들〉을 재연한다. 여성 해군이 함선에서 아침 점호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일상 업무의 묘사, 한 명의 사관장과 나머지 전사들의 관계가 기하학적 대형으로 구현된다. 민속춤과 군대 규율이 어우러지는 과장된 스펙터클이 차가운 전시관 공간에 낯설게 배치되었다. 입장할 때 북한 무보집을 사진 촬영해선 안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 낯섦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을 일깨웠다.

한순간도 편해 보이지 않는 직선적이고 단호한 움직임은 낯설고 경직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 경직이 북한 프로파간다 춤의 특성인지 무보 재연에서 유발된 것인지를 말하긴 어렵다. 나 역시 험프리의 〈파르티타 V〉를 추면서 족쇄에 얽힌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보의 명령에 복종하는 몸과 이념에 복종하는 몸 중에 무엇이 더 우리에게 낯선가. 책에서 일으켜 세운 춤을 감각하기 전에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 섣불리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다슬 〈PINK: Published In North Korea〉 ⓒ전소영@audiovisualunion



전통적으로 무보는 안무 구조를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고, 이는 라바노테이션이나 북한 자모식 기보법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정다슬의 목표는 충실한 재현이 실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창작적 개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체 구성이 무보 해석의 선형적 발전을 충실히 따르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격한 개입은 아니었다. 연구발표적 성격에서 벗어난 다음 단계가 궁금하다.

황수현의 〈싱크 디 싱크〉와 정다슬의 〈PINK〉은 모두 집요한 리서치와 반복적 확장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가는 작업이다. 개념무용이 장난질이라는 비난에 항변이라도 하듯 두 작품 모두 집약적 노력과 육체적 수행을 보여준다. 구현 방식이 주류 무용계와 다를지라도 여기에 숙달됨과 번뜩임이 부족하다고 누가 말하랴. 단지 땀을 덜 흘릴 뿐.

정옥희

춤 연구자 및 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Dance Chronicle 자문위원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진화하는 발레클래스』(2022), 『이 춤의 운명은: 살아남은 작품들의 생애사』(2020)가 있다.​​​​​

2025. 9.
사진제공_박지선, 전소영@audiovisualunion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6.148'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