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능동적 참여로 완성되는 열린 작업
김혜라_춤비평가

윤푸름의 신작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가 대학로 예술극장소극장(8.1~3)에서 선보였다. 윤푸름은 동시대적 담론을 안무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전형적인 공연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는 안무가다. 전작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021)도 일반적인 춤공연과 달리 춤도 무용수도 없는 무대로 구성했다. 오히려 극장에 항시 자리하고 있었으나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던 극장의 외형 조건과 각종 무대 장비들을 주체(주인공)로 부각시키며, 대상물의 존재성과 운동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이번 신작도 전작과 연계점이 있는데 우선 춤도 무용수도 없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관객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공연이 성립되는 요건이다. 기존 실연자와 관객 간의 분리된 거리를 없앤 무대에서 잠재된 감각적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류진욱



안무자는 일반적으로 작품을 ‘보는’ 관객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연 감상에 머물기보단 대상과 직접 관계를 맺는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객석에 착석한 관객의 위치에서 벗어나 예측불가능한 상대(공간, 장치, 다른 관객)와 접촉하는 장으로 극장의 배치를 바꿔 놓았다. 궁극적으로 공연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관객 되기’가 이 작업의 주된 방향성이다.

소극장에 입장하면 객석 의자를 걷어낸 무대 바닥 전면에 두서너명이 앉을 만한 매트가 깔려 있다. 매트 위에는 얇은 소책자가 놓여있고 지시문이 있다. 지인과 앉은 나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으나 처음보는 사람과 대면한 일부 관객은 불편한 상황일수 있다. 행동하기보다는 보기를 선호하는 나(관객)는 일단 안무가의 컨셉에 최대한 동조하는 다른 관객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그들은 관객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퍼포머가 되는 것이다. 관객을 이끄는 스코어는 세 단계로 진행된다. 갈등 스코어, 공동체 스코어, 사랑의 스코어가 제시된다. 갈등 스코어는 매트 위에서 상대와 마주하며 어색함의 빗장을 푸는 단계이고, 공동체 스코어는 전체 공간에서 우연적 선택을 빌어 접촉과 접속을 확대하려는 시도이다. 사랑의 시를 읽는 스코어는 몰입도에 따라 극장이 자신만의 상상의 시공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설정이다.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류진욱



먼저 매트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고 극장과 연관된 소소한 질문을 나누게 한다. 종이에는 티켓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산출부터 극장과 연관된 질문이 나열되어 있다. 극장문화에서 당연시하는 기준을 비틀어 보는 내용도 보이고 이런 저런 워밍업 격인 질문이다. 이어지는 멘트는 관객들이 자리를 이동하길 권유하며 적극적으로 다른 매트에 있는 관객과 어우러지게 한다. 의식하지 못할지언정 자연스럽게 관객은 관찰자이며 퍼포머의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미적 거리를 걷어낸 공간에서 그들은 낯설지만 호기심어린 긴장으로 서로 뒤섞여 스코어에 잘 따르는 편이다. 어느 정도 어색한 분위기가 가시면 갈등스코어 종이를 제출하고 다른 행동 스코어를 선택하게 한다. 안무자는 처음보단 친숙해진 상대와 의도적으로 단절하게 하며 지속적으로 낯선 상황에 관객을 노출시키려 하는 전략인 듯하다.

한 평 남짓한 매트에서 상대를 알아가던 대화가 중단되고, 전체 관객이 블랙박스로 향하게 스코어가 짜여 있다. 예를 들면 “움직이는 빛을 따라가며 느껴지는 기분을 몸으로 표현하기” “눈을 감고 춤 추는 사람 옆에서 커플댄스를 추기” “상대방이 인지할 수 있도록 우직하게 바라보기” 등으로 더욱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 제각기 이동하며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시선을 맞추며 몸으로 수행하기가 한참동안 진행된다. 한 사람이 여러 스코어를 실행하기도 하고, 비교적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교류하는 편이다.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기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에겐 수행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법하다. 실제 매트 위에 누워있는 관객,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객도 드문드문 있다.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류진욱



스피커에서 나오는 시를 읽는 익명의 목소리가 무대 분위기를 바꾼다. 바닥으로 연결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지하 공간에 골조가 드러난 구조물과 알록달록한 색감의 매트와 쿠션이 배치되어 있다. 종이에 적힌 사랑의 시를 선별해 읽는 관객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연결되는 구조다. 시를 읽는 소리의 음색과 톤과 내용에 따라 느껴지는 질감이 다르다. 그 미세한 차이가 닫힌 극장 공간에서 증폭돼 상당히 다른 공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우리의 관심이 시각과 촉각에서 청각으로 옮겨가며 이전보다 직관적으로 감각적 변화를 느낀 가장 공감각적인 연출이었다. 이어서 조명의 힘을 빌어 극장 곳곳을 주시하게 유도하고 스크린으로 이목을 끌어보려 하나 크게 실효성 있는 장치는 아니었다. 공연자만이 주도하는 무대(극장)가 아니라 사물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공존하는 극장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려는 전작과 유사해서일까. 전작을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다.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류진욱



이머시브 공연에서도 관객은 실연자와 상호작용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극의 흐름을 다르게 이끌기도 한다. 기존 이머시브 공연보다 더 진취적인 〈관객, 되기〉는 관객 스스로가 예측불가능한 상황과 행위에 동참해 이끌어야 완결되는 구조이다. (기존 극장과 공연 구조에서는 불가능했던) 상대의 말, 몸짓, 에너지를 밀착된 거리에서 나누며(안무가의 의도대로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여 보며) 여러 상황에 놓이는 자신을 적용시키려 한다. 물론 스코어에 따라 대상과 접촉하는 일련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길지 말지는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예민함과 적극성에 따라 정서적 감각의 체감도 차이가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상대와 나누는 말과 음성과 몸의 교접은 운동하는 신체들의 스펙터클을 관람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이다. ‘보기’와 ’하기’를 포괄한 실행 과정에서 자신만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드와 역량을 알아채 가는 관객 ‘되기(becoming)’(들뢰즈)가 되는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의 ‘관객의 역설(예술작품을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관객 스스로가 의미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참여자로 평등한 주체)’을 기대하며 실험한 것 같다.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며 행동하고 발견하는 관객의 주권회복이랄까.



윤푸름 〈관객, 되기: 떨어진 감각을 이어 붙이기〉 ⓒ류진욱



물론 작품은 주도적이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형식이나 맹점도 있다. 모두가 적극 참여한다는 가정하에 공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코어에 소극적이나 극단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많은 것을 얻어가기 힘들다. 스코어에 예속되기를 거부하거나 불특정한 대상과 접촉을 주저하는 관객에게 어떤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다. 지속적인 참여를 포기하고 극장을 나갈 수 있게 안내하거나, 어떤 경우의 수를 포괄한 형식으로 열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또한 스코어 의존도가 높기에 그 지시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설정이 (방법론은 다르지만) 전통적인 공연물을 수용하는 관객의 태도와 유사한 측면이 과연 하나도 없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여러 생각과 질문을 촉발하게 한 〈관객, 되기〉는 전형적인 관객의 역할을 해체하여 생생한 감각이 교류하는 통로로써 극장 ‘되기’, 관객 ‘되기’를 실험했다. 극장공간의 위계로부터 사장(死藏)된 여러 감각의 가능성을 되찾아 보겠다는 윤푸름의 진취적인 시도이다. 고정된 정체성에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윤푸름의 공연을 놓칠 수 없는 이유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5. 9.
사진제공_류진욱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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