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8회 영남춤축제
전통춤판에 요청하는 것
송성아_춤비평가

전통과 관련된 춤판이 나날이 증가한다. 그런데 전통 개념은 명료해지기보다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하다. 이 점에서 세계 최초로 전통 일반론을 집필한 에드워드 쉴즈(Edward Shils) 논의1)에 주목하면, 전통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인간이 물러 받은 것, 즉 유산이다. 대개 3세대 이상 전수된 것으로서, 자연과 물체, 사고와 신념, 제도와 관행, 기술과 예술 등에 두루 편재해 있다.

그런데 인간 행동과 관련된 많은 전통은, 자연이나 물체와 달리, 행동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패턴(pattern)이나 이미지(image)로 전수된다. 일례로 오래된 사형제도가 있다. 사람들은 그 법령을 달달 외우지 않는다. 다만 어떤 행위를 하면 죽임 당한다는 단순한 행동 패턴으로 인식하는데, 이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옛춤의 전승방식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낱낱의 동작을 세세하게 배우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데, 학, 매, 꽃, 황소, 개구리, 가위질, 밭매기와 같은 이미지나 맺고 푸는 정서 패턴으로 춤을 인식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수한다. 쉴즈는 전수 방식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서적, 시각적, 청각적, 주제적, 어휘적, 구성적, 행동적, 신념적, 구조적 패턴은 인간 활동의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간직한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패턴은 전형(典型)2)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재연(reenactment)을 통해 지속되고 전수된다. 그런데 재연 중에는 전형을 온건하게 계승하는 것도 있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질적인 것과 병합된 것도 있고, 조악한 것도 있다. 결국 재연자의 해석에 따라 여러 변이 형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쉴즈는 전형에 가해지는 인간의 해석과 이로 인한 재연의 다양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 의해 전형이 전달되고,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인간 활동과 관련된 전통이란 전형이 재연을 통해 전달되고, 해석을 통해 다양화되며, 다양성은 전형으로 거듭 수렴되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하나의 생명체가 진화하는 것과 유사한데, 이와 같은 전통은 인간 활동의 본질은 물론이고 여러 상징과 표현을 함축하고 있으며, 또 다른 재연을 이끄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전통과 관련된 긴 서두는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의 영남축축제가 바로 전통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26일부터 9월13일까지 진행된 축제는 여러 의미 있는 행사로 구성되었다. 이 중 중심부를 차지하는 것은 전통춤판이라고 할 수 있다.3) 2021년부터 시작된 이것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총 30인의 홀 춤을 5번의 춤판을 통해 소개하는 것이다. 올해 두드러진 특징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처음은 국가나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승무〉, 〈태평무〉, 〈도살풀이춤〉, 〈진주검무〉, 〈진주교방굿거리춤〉, 〈호남살풀이춤〉, 〈호남산조춤〉이다.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들 종목은 정해진 법도에 따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춤의 짜임새가 비교적 명료하게 전승되는 한영숙류 〈승무〉의 경우에도, 1980년대 한영숙의 〈승무〉와 1990년대 후반 이애주의 〈승무〉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춤꾼의 개성과 전승된 전형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김연정 〈승무〉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홍지영 〈태평무〉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김연선 〈도살풀이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두 번째는 북이나 장구와 같은 악기를 활용한, 〈고창농악 통북놀이〉, 〈진도북놀이〉, 〈금회북춤〉, 호남우도 여성농악의 〈설장고춤〉, 탈(脫)지역화된 〈설장구춤〉이다. 이들은 본디 마을 농악이나 전문 예인의 판 굿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독립하여 발전한 것이다. 이 중 북춤은 전형을 새롭게 해석하여 재구성한 작품, 즉 개작(改作)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구춤은 전통을 모티브로 한 자유로운 변주로서, 창작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주영롱 〈고창농악 통북놀이〉, 배관호 〈금회북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윤미정 〈설장고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세 번째는 국가지정무형유산인 진도씻김굿, 남해안별신굿, 불교의례인 수륙제에서 연희된 〈지전춤〉, 〈통영진춤〉, 〈나비춤〉이다. 이들 역시 마당이나 방안 또는 뜰에서 행하던 것을 무대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 기방춤에 기초하여 예술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김온경의 〈산조춤〉, 최희선의 〈달구벌 입춤〉, 한혜경의 〈십이채장구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문다솜 〈지전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하선주 〈통영진춤〉, 성예진 〈나비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마지막은 근래에 창작한 것이다. 이 중 김진홍의 〈지전춤〉과 〈영남입춤〉, 정명희의 〈산조춤〉은 기방이나 무속 전통을 수렴하면서 창작한 작품으로서, 간결하지만 깊이 있는 미감을 간직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통적 요소, 신무용적 요소, 현대적 요소를 병합하여 창작한 작품으로, 조흥동의 〈한량무〉, 국수호의 〈장한가〉, 정진욱의 〈영남산조춤〉, 진유림의 〈대신무〉, 김용철의 〈바라춤〉이 소개되었다.



황지인 〈지전춤〉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윤종현 〈한량무〉, 김청우 〈장한가〉 ⓒ권성민/국립부산국악원



이처럼 전통춤판의 레퍼토리는 여러 다른 결을 가지고 있으며, 개작과 창작의 경계가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전통춤을 3세대 이상 전수된 것이라고 제한할 때, 창작은 물론이고 개작된 다수는 전통의 범주에서 탈락될 수 있으며, 춤판에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배제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의 지속과 전달, 변화와 성장은 다양한 재연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작과 창작은 전통의 범주 속에서 논의될 수 있으며, 전통춤판의 한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전통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질문은 3가지이다. 공연작품은 전통의 재현 ‧ 개작 ‧ 창작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이다. 그리고 공연작품에서 전승된 전형이 있다면 무엇인가이다. 마지막은 공연작품에서 전형을 해석한다면 어떻게 하는가이다.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팸플릿을 중심으로 살폈을 때, 명확한 답변을 찾기 어려웠다.

일례로, 연희단 팔산대 단원 윤미정은 〈설장고춤〉을 추었다. 흐르듯 유연하게 이동하다가도 새털처럼 도약하고, 장구와 하나가 되어 리듬을 타는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다. 인상적이었던 그의 춤을 소개하는 글을 옮겨보면, ‘채상소고춤으로 이름을 날린 김운태와 함께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호남우도여성농악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이 때 김운태에게 풍물과 춤과 보법을 사사했다. 이것을 기반으로 농악의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연풍대 등 다양한 가락과 춤사위를 구성하여 개인 춤으로 발전시킨 작품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소개 글을 통해 볼 때, 〈설장고춤〉은 개작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전통적 요소를 활용한 창작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자기 춤에서 전통적인 요소나 특징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장단과 동작에 방점을 두고 해석했음을 짐작해 볼 따름이다.

다소 고약할 만큼 집요하게 답변을 요청하는 까닭은, 전통춤판은 전통을 테마로 하는 장(場)이다. 따라서 관객이 전통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춤꾼 자신도 전통과 자기 춤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이 땅 전통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전수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팸플릿의 짧은 지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모두 적을 수 없다. 그리고 글로 설명할 순 없지만, 몸으로 선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전통춤판의 기획도 일정정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5회에 걸쳐 진행되는 전통춤판은, 매회 6편의 홀 춤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들 상호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찾기 어렵고, 무형유산 지정종목, 개작, 창작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이로써 개작이나 창작이 옛 춤으로 오인되기도 하고, 영남 ‧ 호남 ‧ 경기 춤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내기 어렵다. 미술에서 전시해설자(docent)나 전시기획이 관객의 감상과 저변 확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듯, 영남춤축제의 전통춤판도 기획력을 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겠다.

올해로 8회를 맞이한 국립부산국악원의 영남춤축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인 동시에 전통춤의 전국적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다. 특히 갑작스러운 우천으로 인해 야외공연이 극장공연으로 전환되기도 했는데, 이 때 국악원이 보여준 기만함과 헌신은 지역 축제의 인적 ‧ 재정적 한계 속에서도 진일보하는 원동력임을 확인케 했다. 우직하게 걸어온 지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내실을 다진 내년 축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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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dward Shils, Traditio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Edward Shils(1992). 『전통: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김병서‧신현순(역). 민음사.
2) 일반적으로 전형은 같은 부류 안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특징 또는 기준이나 규범이 되는 모형으로 정의된다.
3) 전통춤판 이외에, 영남지역전통과 관련하여 영남춤전 ‧ 영남무악 ‧ 영남춤학회 세미나가 있었다. 그리고 강연과 공연을 혼합한 렉처 콘서트가 3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각각 전라도무속장단, 전통연희의 재창작 및 교육방식, 작가 강미리의 작품론을 소개했다. 또한 젊은 춤꾼과 음악인의 싱그러운 거리춤판이 국악원 앞마당과 부산 곳곳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5. 10.
사진제공_권성민, 국립부산국악원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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