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5시댄스
애도의 춤, 분열의 춤, 쾌감의 춤
김혜라_춤비평가

가을이 되면 시댄스(SIDance)는 대표적인 국제무용축제 플랫폼으로써 제 역할을 하려 동분서주하다. 유수의 해외단체를 만날 유일한 창구였던 시댄스의 영향력이 초창기 같진 않지만, 여전히 놓칠 수 없는 공연이 꽤 있었다. 특히 28회를 맞는 올 해는 국내 초청작과 기획제작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초청된 해외작의 특별 주제는 ‘광란의 유턴’이기에 이를 고려하며 공연을 보게 된다. 개막작인 포르투갈 센트라우 엘레트리카 안무작 〈밤Noite〉은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어두운 풍경(현실)을 중년의 세 남자들이 광기어린 놀이로 극복하려 했다. 순간적인 해소로는 동조할 수 있었으나 (광란의) ‘유턴’이란 방향성까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국내 초청작 중 장혜진 안무 〈흐르는.〉(9.18~21.청년예술청그레이홀)이 혼란의 시대 자구책으로 서로에게 기대며 연대로 나아가는 방향성(‘유턴’)을 제시했다. 더불어 기획제작한 〈동래학춤〉과 3년작으로 진행된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의 색정만리 시리즈도 관심을 모았다.

 

애도로 연대하는 춤

〈흐르는.〉은 솔로 퍼포먼스로 한 시간동안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장혜진은 원형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바닥 지면과 공기와 극장 기둥과 같은 모든 사물(대상)과 접촉하며 호흡하려 한다.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고 세심하게 심장소리를 듣는 행위처럼 장혜진은 공간에 존재하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고 교감하려 한다. 정성을 다해 발을 딛고 몸의 부위를 맞대며 신체의 개별적인 부위까지 호명한다. 심지어 장기 내부의 부위(폐, 위, 장)나 뼈마디 관절의 움직임까지도 인지적 교감의 대상이다. 이를테면 목, 배 같은 신체의 일부분을 따로 움직이며 강조하는 식이다. 물이 끓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공간에 퍼지고 퍼포머는 종이 봉투에 숨을 모으기도 한다. 상의에 달린 작은 방울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찰랑 청량한 소리를 내며 보이지 않는 대상을 불러들인다. 기운을 모아 공간에서 제(祭)를 펼치는 인상으로 굿으로 치면 송신에 가깝다. 소극장 보다 좁은 홀에서 관객들은 둥그렇게 둘러 앉아 비가시적 대상과 감응하려는 퍼포머에 몰입하게 된다. 여기에 진자 운동을 하는 마이크와 일그러진 고무 찰흙 형체(유령)는 비가시적인 존재들을 인식하게 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물론 무당과 같은 직접적인 행위도 아니고, 어떤 사건을 재현하지도, 감정의 상흔이 넘실대는 무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정황상 익명의 영혼들을 장혜진의 몸으로 초대해 기억하려는 현대식 진혼제로 추정하게 된다.



장혜진 〈흐르는.〉 ⓒ팝콘/SIDance2025



중반부를 넘어서면 장혜진이 발화하는 말과 행위를 통해 ‘유령의 감각’(안무자의 표현)을 소환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진다. 말은 입술에 기대고 입술은 목구멍에 기대어 숨을 쉬고 다시 말이 내뱉아지고 사회와 우주에 영향을 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 덩어리임을 퍼포머는 말짓 몸짓 행위로 현시한다. “보이지 않는 몸, 말해지지 않은 애도”(장혜진)를 위해 장혜진이 무대에 선 이유다. 깊은 눈빛과 장기와 뼈마디에서 연결되는 진동하는 몸으로 그녀는 침묵했던 영혼들을 위해 위무한다. 말(목소리)과 스코어(단어)로 구축되는 세계를 묵상해 본다. 이세상 무엇도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빚진 존재임을 말이다.





장혜진 〈흐르는.〉 ⓒ팝콘/SIDance2025



혹자는 움직임보다 말이 내용을 채웠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말은 비가시적 존재들의 지지를 받아 터지는 방언이며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체다. 우리(관객)는 퍼포머의 말과 행위에 기대고 극장에 기대어 이름모를 존재들의 제의에 동참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먼지 한 톨부터 자연의 섭리까지 서로에게 기대어 동행하는 동반자임을 퍼포먼스를 통해 환기시킨다. 장혜진은 극단적인 정치적 충돌과 반목의 시대를 통찰하며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가시적 세계 너머와 공명하는 현대판 굿 퍼포먼스로 말이다. 타자와의 기댐을 통해 지탱할 수 있는 생명 미학을 수행한 〈흐르는.〉은 컨셉츄얼 안무의 실천적 가능성을 여는 기억해야 할 작품이다.


분열의 춤

국내 초청작만이 아니라 시댄스가 기획제작한 작업도 좋았다. 동래학춤보존회의 전통적인 〈동래학춤〉(9.13.남산국악당)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강요찬의 〈학〉이 그것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공동체 개념을 짚어보게 했다. 동래학춤은 부산 동래 지방의 토속춤으로 한량들에 의해 추어진 춤이다. 한 눈에도 여러 민속춤 특유의 투박함 보다는 학식과 교양을 갖춘 선비들의 우아하고 절제된 이상미가 도드라진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휘날리며 날갯짓을 하는 보존회의 군무는 언제 봐도 함께 날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동시에 특유의 멋과 여유에 매료될 만했다. 풍류정신이 깃든 학의 모습을 통해 당시 공동체 안에서 해방을 꿈꾸는 집단적인 성격이 강한 춤이다.



동래학춤보존회 〈동래학춤〉 ⓒ박상윤/SIDance2025



이에 반해 강요찬의 〈학〉은 네 마리 로보틱스로 변신한 학의 분열을 형상화 한다. 근육질의 민다리를 드러낸 네 마리 학은 오늘날 사회 공동체 시스템에서 고통받는 개인을 조명한다. 전통음악에 전자음이 결합되어 스피드 하게 군무 중심(공동체)으로 펼쳐가다 매끈한 드레스를 스스로 찢으며 무너져 가는 개인의 자화상을 표현한다.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전통 학춤에 깃든 절제와 고상함과는 달리 강요찬의 학춤은 혼란으로 가득한 공동체 안에서 병들어 가는 인간 내면의 문제를 돌아보게 했다.



강요찬 〈학〉 ⓒ박상윤/SIDance2025



전통의 현대화는 끊임없이 우리 춤계 창작 방향의 축이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창작자들은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어 안무를 하지만 이번처럼 한 판(공간)에서 전통춤과 재해석한 춤을 나란히 견주어 보는 일은 드물었다. 시댄스에서도 해마다 전통춤을 소개하고 있으나 기존 전통춤 공연과 차별성이 없어 존재감이 미약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전통의 보존과 변용적 확장이란 방향성 있는 기획이 시댄스에 적합하다. 대중들에게 쉽게 전통과 현대를 잇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동래학춤보존회의 담담한 학춤과, 전통춤 형식과 정신을 무분별하게 해체하지 않은 강요찬의 학춤 같은 기획이 이어지면 좋겠다. 상징적인 학의 형상을 그저 낭만적으로 감상하기도 하고 그 집단군무의 이면을 파헤친 예술가의 비판적 관점을 비교해 보는 일은 참 흥미롭다.


쾌감의 행위에만 몰입한 춤

또 다른 시댄스의 색정만리 기획작인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의 〈Bad Spicy Sauce〉(9. 21.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도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몸과 성은 밀접한 관계이며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표출하는 역동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배진호는 작년에 이어 성에 대한 시리즈를 이어가며 이성과 감정을 배제한 육체적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해 보려 했다. 이를 통해 쾌감의 증표이자 상대와 주고받는 물질의 흔적인 체액을 매개로 관계의 변화를 살피려는 것이다. 성행위를 기반으로 구성된 작품은 궁극적으로 ‘쾌락과 관계 속에서 몸과 정신이 어떻게 흔들리고 영향을 미치는지’(배진호)를 찾으려 의도했다. 얼굴을 반정도 가린 마스크로 익명성이 보장된다. 화려한 색감의 마스크에 바디라인이 드러나는 무용수들은 누가 봐도 섹스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최적화된 외형이다. 정서적 교감이나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욕구와 쾌락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한 긴장감 조성에 몰두한 형태로 작품은 전개된다. 육체적 결합에 이르기 까지의 긴장 곡선에 따라 리드미컬하고 율동적으로 행위가 변형된다. 무용수들은 자칫하면 외설적인 자극체로만 비췰 수 있음에도 모션을 과감하게 수행하며, 단순한 행위를 증폭시키는 몸짓을 집요하게 붙들고 있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 〈Bad Spicy Sauce〉 ⓒ최랄라/SIDance2025



안무자는 작년에도 〈2122.21222〉에서 노골적으로 성 행위의 양태를 파헤치고 섹시한 몸을 정면에 내세워 난발하는 욕구의 여러 양상을 선보였다. 윤리적 잣대를 개의치 않은 무대에는 쾌락과 관음과 집단적인 성교 행위만이 넘쳐났다. 이를 통해 안무자는 행위와 인식의 가학성과 왜곡된 취향들이 반영된 현실을 과감하게 전시했다. 따라서 불편했지만 국내 춤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문제를 과단성있게 다룬 패기가 신선했고, 게다가 젊은 세대들의 성에 대한 태도와 접근 방식의 일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 작업인 〈Bad Spicy Sauce〉는 미시적인 섹스 행위만으로 구성돼 있다. 오로지 행위성에만 몰입한 전체 구성에서 어떤 감각적 확장이나 새롭게 성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거의 없다. 성 행위가 포르노가 아닌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미적 논리와 의미 형성의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댄서간 물리적인 접촉과 쾌락의 잔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들이 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이끄는지 말이다. 작품은 행위에서 인지로 이행되지 못한 채 행위를 위한 행위의 싱크홀에 갇혀버렸다. 쾌감이란 감각의 잔여물은 체액이 아니라 공허만을 남겼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5. 10.
사진제공_팝콘, 박상윤, 최랄라, SIDance2025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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