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퀴어로써, 생각의 정형과 어긋나다
김남진 안무작 〈나는 모지민〉은 모지민의 솔로 댄스로 구성된 퀴어 퍼포먼스이다. 모지민은 드래그퀸으로서 그 활동이 널리 알려진 편이고 2년 전에는 U+스테이지에서 〈로미와 줄리엣 앤 모어〉를 공연한 바 있다. 〈나는 모지민〉(성균소극장, 9월 5~7일)에는 모지민이 겪어온 나날과 체험이 압축되어 있다. 그것을 무대에서 자연스럽고도 절절히 표출해낼 수 있는 출연자가 비록 모지민만은 아니겠으나 모지민이 직접 출연한 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띤다. 몸으로 분별되는 사회적 성 정체성에 처절하게 맞서야 했던 처지를 구현하는 무대에서 몸을 도드라지게 하되 강렬한 주체로 나서게 하는 한 방안으로서, 김남진이 지속해온 피지컬씨어터가 모지민의 퀴어 퍼포먼스와 만날 때 서로 흡인력을 갖는 조합이라는 것을 〈나는 모지민〉에서 보게 된다.
김남진 〈나는 모지민〉 ⓒ김채현 |
〈나는 모지민〉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관객이 입장할 동안 국제 외교 동향 뉴스 방송이 음향으로 들리고 있었고 공연 중에도 잠시 재방송된다. 아마도 이는 트랜스젠더나 퀴어 세계의 사람들도 일반인들과 다름없음을 환기한 것으로 보인다. 출연자 모지민은 무대 한 켠에 놓인 화장대에 수시로 의지하면서 의상과 분장을 바꾸어나갔다. 공연 첫 부분에 모지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시피 한 짙은 화장에다 굽높은 빨간 하이힐과 대형 헤드드레스를 착용해서 출연하며 또 팬티만 착용하거나 맨몸으로 출연한 부분도 있다. 공연에서는 모지민의 드래그퀸 활동 모습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체 공연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향한 주변의 몰이해에서 빚어진 처지와 심경을 알리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지구라는 땅에서 그럭저럭 살아는 있다, 낮은 곳에서는 하이힐, 높은 곳에서는 토슈즈를 신고 사는 게 쉽지가 않다”는 독백에 집약된다. 하이힐과 토슈즈는 불안정한 존재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김남진 〈나는 모지민〉 ⓒ김채현 |
공연 초반에 종아리와 허벅지는 근육살이 기형적으로 붙은 것처럼 울퉁불퉁한 모습이었고 곧 종아리와 허벅지룰 감싼 살색 스타킹이 풀어 헤쳐지면서 흰쌀이 쏟아져 바닥에 흩어졌다. 모지민은 바닥에 엎드려 밀착할 적에는 쌀을 쓸어모으거나 이리저리 흩뜨렸고 그러는 사이 그의 몸에는 쌀들이 묻기도 한다. 소품으로서 중요해 보이는 쌀들은 모지민 몸에 달라붙어 억누르는 세상의 갖은 편견으로 보였다. 그 같은 폭력에 맞서는 활동이 모지민의 존재에서 소중했을 터이므로, 높은 하이힐을 신고서 비틀거리는 한편으로 〈벨라 차오〉 같은 곡에 맞춰 신나게 추는 것과 같이 공연은 자주 억눌림과 해방감 사이를 왕래하였다. 여기에 자신의 태생을 한탄하고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갈망하는 순간들이 곁들여진다.
김남진 〈나는 모지민〉 ⓒ김채현 |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이 여성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는 모지민은 트랜스젠더라 여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성전환 수술을 택하지 않았고, 이번 무대에서는 그의 태어난 남자의 몸이 노출되곤 하였다. 어느 부분에서는 팬티를 착용한 상태에서 가위를 들고서는 남성 성기 모형을 자신의 성기 부분에 갖다 대며 관객에게 자르라고 청하는 코믹한 순간도 있었다. 수술을 했건 않았건 자신이 주체적으로 자각한 성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한 사람의 비감이 감지되며, 여기서 더 나아가 복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훔쳐내도록 연출된 장면은 비감을 넘어 극심한 아픔을 소환한다. 이 대목에서는 큰 바늘 같은 것을 들고서 자신의 생식기를 꿰매는 듯한 몸짓이 가미되며, 곧이어 일렁대는 사각형 반사경을 피묻은 손으로 받쳐 안아서 자기 몸을 가리고 앉자 반사경에는 관객들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나타난다. 이 대목에서 모지민은 객석을 향해 묻는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요, 거울 속으로 보이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나요?”
김남진 〈나는 모지민〉 ⓒ김채현 |
드래그퀸들의 퍼포먼스에서 보임 직한 움직임들이 잦은 가운데 〈나는 모지민〉을 더욱 결정적으로 유다르게 한 것은 모지민 자신의 발레였다. 공연 마무리 부분에서 그는 토슈즈를 신고 발레 〈빈사의 백조〉를 추었다. 그가 맨몸으로써 시종일관 객석에서 돌아서서 춘 〈빈사의 백조〉는 국내 일반 춤무대에서는 초유의 일일 것이라는 의의도 작지 않을 것이고 발레 전공자인 그의 역량을 내비쳤다. 뒤통수에 연지곤지가 찍힌 하얀 각시탈을 쓰고 피아노 독주곡을 벗삼아 〈빈사의 백조〉를 추는 그(녀)의 팔놀림은 유연하며 긴 시간의 잔잔한 파드부레 끝에 상체를 다소곳하니 바닥에 숙였다. 보는 입장에서는 아주 처연한 감을 갖게 되는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인간 존중을 향한 교감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평소 보던 다른 발레리나들의 숱한 〈빈사의 백조〉와는 또 달랐던 것이다. 더욱이 이 부분의 출연자가 모지민 말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김남진 〈나는 모지민〉 ⓒ김채현 |
이번 공연에서 모지민의 그간 활동이 여러 측면에서 소재로 활용되었다. 이들 소재를 더 압축하면서 주력할 부분은 확대할 필요도 있었다. 악사로 반주한 김보라는 정가풍의 구음으로 모지민의 속마음을 뒷받침하고 때로는 가슴을 치고 부모회심곡 류의 소리를 읊었다. 한서린 내면을 은은히 드러냄으로써 공연의 균형을 잡고 깊이를 더한 편이었다. 특히 피지컬씨어터 형식은 앙토넹 아르토 스타일의 체험이 그러하였듯이 〈나는 모지민〉 무대에 여러 면 몸적 불편감을 더함으로써 세상의 각성을 재촉하는 효과를 보였다. 아울러 자전적인 공연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신파적 경향을 예방하는 데서도 피지컬씨어터적 접근은 쓰임새가 작지 않을 것이다. 모지민이 직접 출연하여 자전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펼친 〈나는 모지민〉은 드래그퀸과 트랜스젠더의 세계를 춤무대로 이전하여 국내에서 퀴어 장르를 열고 춤의 지반을 다져주었다.
물질로써, 생각의 정형과 어긋나다
물질의 동반은 삶에 필수적이며 인간 자신의 시작점 또한 물질 덩어리이다. 물질이 인간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배섭의 안무작 〈누수〉는 선명하게 드러낸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9월 4~7일). 공연에서는 동원된 물체들이 일테면 소도구로써 역할을 해내면서 각 물체가 저마다 품은 물성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물체들은 출연자들과 어울리는 차원으로 변신한다. 저 멀리 놓인 장치가 아니라 출연자들이 함께 호흡하고 놀이하듯 하는 물체들이 무대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금배섭 〈누수〉 ⓒ김채현 |
이 공연은 누수 현상을 단서로 착상되었다. 무대에는 투명 테이프들이 천장으로부터 바닥까지 기다랗게 늘어뜨려 있다. 이 설치물 수십개가 무대 도처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형태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세 사람이 등장해서 종이컵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소리로 누수를 알린다. 단도직입적이다. 한 사람은 빈 종이컵을 입에다 무는 행동도 보인다. 이어서 두 사람이 두루마리 종이를 들고 나와 배회하며 서로 밀당하다 바닥에 길게 펼쳐놓는다. 펼쳐진 종이를 밟고 등장하는 사람은 플라스틱제 일회용 숟가락을 투명 테이프에 붙인다. 부채를 든 사람이 폈다 접었다 하며 부채로 바닥을 쓸어내며 노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른 두 사람이 두루마리를 감았다가 깡충대고 다시 펼치고 그 위에서 밀당을 지속하면서 각자 상의를 올려 머리를 감싸며 상체를 숙이고서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두 사람이 길게 펼쳐서 당기는 두루마리 위에 다른 사람이 물방을 떨어뜨리자 종이는 양쪽으로 짝 찢어진다.
금배섭 〈누수〉 ⓒ김채현 |
후반부에서 두 사람이 부채를 휘저으며 접고 펴며 갖고 놀며 한 사람이 얇은 투명 비닐을 바닥에 부착해놓으면 투명 비닐 양쪽에서 마주 앉아 열심히 부채질을 해대니 투명 비닐은 바닥에 부착된 상태에서 부풀어서 마치 투명 애드벌룬처럼 솟아 오른다. 부채질을 그치자 애드벌룬은 가라앉아 사그라지며, 한 사람이 다시 숟가락들을 테이프에 붙이고 퇴장한다. 부채질을 다시 하자 부풀어 오른 그 애드벌룬 속에서 어느 여성이 무당방울을 흔들며 소리를 내고 전신을 일렁이는 실루엣의 모습을 보인다. 물질 속에 어떤 영적 차원이 있다는 감을 던지는 대목이다.
금배섭 〈누수〉 ⓒ김채현 |
이어서 사람들이 숟가락들을 여기저기 테이프에 다시 달면서 티슈 휴지와 작은 소품도 붙인 후에 사람들이 각자 금속제 통을 들고 나와 소리를 내다가 무대 가운데에서 통을 하나씩 뒤집으니 얇은 습자지 류의 하얀 종이조각들이 쏟아진다. 수북이 쌓인 종이조각 둘레에 투명 테이프들을 대량으로 부착해서 두르고 또 천장에 늘어뜨린 테이프와도 연결시킨다. 그런 다음 종이조각 무더기 둘레에 앉아서들 부채를 부치기 시작하자 종이들이 마구 휘날려 테이프들 여기저기에 마치 포획되는 날벌레들처럼 붙여진다. 무대 뒤켠에 가라앉아 남겨졌던 얇은 그 비닐막을 종이 무더기 옆으로 가져와서 모두들 그 속으로 들어가 바닥을 기어가고 누운 채 종이 무더기 둘레를 회전하며 종이 무더기와 뒤엉키자 투명 테이프들의 아래 부분이 하나로 뭉쳐지고 마침내 전체 모양이 거꾸로 매단 원추 같은 테이프 형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 후 출연자들은 비닐막 허물을 벗듯이 퇴장하며, 남겨진 거꾸로 매단 원추 형상은 마치 흐드러지게 핀 하얀 쌀꽃처럼 다가온다.
금배섭 〈누수〉 ⓒ김채현 |
〈누수〉 도입부에서 늘어뜨린 테이프 설치물은 누수의 도관(導管)들을 상징할 것이고, 그것들은 마침내 종이 조각들과 함께 꽃줄기들로 거듭났다. 누수는 피치 못할 이치여서 어찌 보면 자연뿐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숨통을 트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퇴화뿐 아니라 진화도 누수를 피할 수 없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누수를 상실로 여길 것인가 혹은 생성으로 여길 것인가. 〈누수〉는 물질을 존재의 현상 속으로 끌어당겨 존재를 깨우치기 위해 물질을 주체화하였다. 답을 미뤄둔 퀴즈 놀이하듯 전개되는 〈누수〉, 그 속을 관통하는 화두는 상당히 묵직하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