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자하 〈하리보 김치〉 · 잃어버린 극장 〈Be My Guest〉
동시대 퍼포먼스 속 디아스포라를 둘러싼 시선들
한석진_춤연구가, 비평가

모국의 영토를 떠나 타국으로 이주하여 거주하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지칭하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변화되며 담론화되어 왔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난민, 망명, 유랑, 입양, 국제결혼, 취업, 이민, 유학 등 다양한 형태의 이주가 생겨났고, 현재 디아스포라는 공간적 이동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정치적, 철학적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1960-70년대 디아스포라 담론은 고국에 대한 애착과 향수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1990년대 이후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이론의 영향 아래, 디아스포라는 탈영토화된 유동적인 정체성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정체성과 연관된 언어, 민족, 국적, 인종, 젠더 등의 문제는 고정되거나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않기에 디아스포라 주체는 불확실하고 경계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디아스포라는 모국과 타국 등의 특정 공동체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교차, 수용, 갈등, 부정이 일어나는 제3의 공간이 되었다.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디아스포라 삶을 조명하는 데에 있어서 지배 계급의 권력의 정치 논리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에서 다층적으로 경험되고 주체성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디아스포라 담론이 확장되고 미시적 서사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문학, 영화, 시각예술에서 다양한 인물로 재현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025년 가을 서울에서는 미시적 서사 관점에서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흥미로운 연극 두 작품이 소개되었다.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2025. 10. 16&18-19, 대학로극장 쿼드)와 잃어버린 극장의 〈Be My Guest - 돼라 내 손님이 - Sei Mein Gast〉(이하 〈Be My Guest〉〉(2025. 9. 11-14, LDK (구)대사관저)이다. 두 작품의 창작자 모두 한국 출신으로 서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연연출가로, 자신의 이주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갈등과 그 속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대해 말한다.

먼저 〈
하리보 김치〉라는 작품 이름에서 드러나듯, 구자하는 다른 문화가 교차하고 부딪히는 과정을 음식을 주제로 펼쳐낸다. 작품 속에 달팽이, 하리보 젤리, 장어는 상징적 화자로 등장하는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세 개의 객체는 구자하 자신을 투영하는 대상이 된다. 무대는 서울의 야경이 빨간 텐트 위에 투사되면서 시작된다. 심야 고층 빌딩과 환한 불빛, 대로변과 여흥가를 지나 빨간색 포장마차가 등장하는데 이내 무대 위에는 실제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구자하가 앞치마를 입은 퍼포머로 등장해 장사를 시작한다. 그는 관객 두 명을 손님으로 모시는데 “우연히도” 외국인 여성 두 명이 무대 위로 오른다. 포장마차 손님이 된 이들에게 마실 것을 먼저 제안하고 음식 알러지 유무를 확인한 후 어떤 코스 요리가 제공되는지 설명해준다. 관객과 한참 대화를 이어가던 구자하는 관객석을 향해 첫 번째 주제인 달팽이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폰과 갤럭시의 폴더 화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양옆의 모니터에는 그가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과 애니메이션, 구자하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구자하 〈하리보 김치〉 ⓒ구자하



야채 속에서 발견한 달팽이에게 ‘고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지냈지만 결국 풀로 돌려보냈던 일화를 들려주고, 유동(流動)에 관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된다. 무청 농사짓던 할머니와 함께 살던 감나무골은 아파트로 재개발되어 사라졌고 자신 역시 한국을 떠나 독일 베를린로 이주한다. 한국을 떠난 순간부터 자신을 떠나지 않은 정체성의 유령과도 같은 10킬로의 김치는 결국 베를린 집에서 터져버리고 독일인들의 혐오 섞인 반응을 견뎌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때 달팽이의 노래가 시작된다. 김치의 재료인 고추가 식민주의적 작물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김치의 발효과정을 설명하는 가사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사람이 혐오했던 빨간 김치를 한국 사람이 먹게 된 역사에는 서구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시스템의 영향이 있던 것이다. 구자하는 자신이 직접 만든 김치전을 첫 번째 음식으로 손님에게 내어준다.



구자하 〈하리보 김치〉 ⓒ구자하



이야기는 은유적 관계망 속에서 이어지고 결국은 포장마차 음식으로 응집되는 식으로 공연이 전개된다. 파독 간호사로부터 혀는 지문 같아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주는 기관이라는 말과 함께 건미역을 선물받았다는 에피소드 이후로 미역국이 차려진다. 1980년 신군부 시대 아버지가 계엄군이 되었을 때 광주 상무대에서 맡은 냄새와 유사한 치킨집 근처에서는 숨을 쉴 수 없어 고향을 떠나 시골에 정착하게 된 아버지 이야기 끝에는 버섯 튀김이 준비된다. 하리보를 즐겨 먹었던 구자하가 브뤼셀의 한 기차역에서 분실신고를 할 때 안내원에게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을 당한 모욕적 기억과 함께 하리보의 노래가 시작된다. 그리고 젤리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포장마차 코스가 끝이 난다.



구자하 〈하리보 김치〉 ⓒ구자하



장어의 노래는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고창에서 만난 친구의 양만장에서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필리핀에서 온 장어들이 엉켜서 사료를 먹는 장면, 파이프가 찢어져 장어가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장면이 보여진다. 어머니 태몽에서 장어가 집에 들어와 며칠간 지내다가 나갔다는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장어는 구자하로 상징된다. 일생을 민물과 바다를 오가며 사는 장어는 내가 가는 길이 나의 집이며 뿌리는 스스로 옮길 수 없지만 모든 토양에서 다른 버전의 우리가 자라난다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집은 하나 이상이며 뿌리보다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로라는 노래가 끝나면 구자하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관객과 나눠마신다.

〈하리보 김치〉에서 등장한 달팽이, 하리보, 장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물학적 의미에서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연관된다. 달팽이의 등 껍질이 이동식 집 역할을 하고, 하리보는 유럽인들에게 고향의 간식이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팔리는 혼종적 생산품이며, 장어는 번식과 생존을 위해 민물과 바다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 객체가 고체와 액체의 경계에 걸쳐 있는 몸을 가지며, 점액을 가진 표면에 미끄러지는 듯한 운동성을 가졌다는 물질적 측면에서 디아스포라의 상태적 모호성, 이동성과도 연결된다. 구자하는 자신의 이주 경험에서 가져온, 다른 문화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갈등, 위계, 혐오와 같은 권력의 작동을 서사화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달팽이, 하리보, 장어로 비유한다. 포장마차에서 손님에게 자신의 서사와 연결된, 직접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는 구자하 자신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수행하는 행위라고 보이는데, 한국적인 포장마차 공간에서 서구식 코스요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미 한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 음식에 대한 경험도 풍부한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외국인 손님들에게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는 허구적 정체성을 부여하며 대화하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는 내재된 ‘경계짓기’라고 봐야 할까.

박종빈, 박재평으로 구성된 콜렉티브, 잃어버린 극장의 〈Be My Guest〉는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에피소드식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는 〈
하리보 김치〉와 유사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 촬영 현장을 차용하여 디아스포라의 존재적 조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편하게 하세요”라는 의미의 영어 제목은 세계공용어를 씀으로써 세계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환대하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은 비영어권 또는 (영어가 서구에서 태어난 언어라는 점에서) 비서구 국가에 대한 환대의 이면에 작동하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드러내는 반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촬영 현장을 공연화하여 약 100분간 진행되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세 가지 역할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이동하면서 촬영을 관람하는 ‘관찰자’, 제공된 코스튬을 입고 프레임 안팎을 이동할 수 있는 ‘불청객’, 그리고 대사가 있는 ‘단역’ 중에 선택해 촬영장에 들어간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은 경계 아래 놓여진다.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가는 자(단역)와 아닌 자(관찰자). 그 경계를 지키지 않는 자는 불청객이 된다. 공연 장소인 2층 단독주택의 LDK (구)대사관 내부에 많은 인원이 초대된 채 촬영이 진행되다보니 관찰자 역을 수행하는 관객은 공연을 실물이 아닌 1, 2층에 위치한 실시간 중계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도 있다. 즉 공연은 실물과
스크린 두 경계를 오가며 진행되고 모든 촬영 현장은 파편적으로 전달된다.





  

잃어버린 극장 〈Be My Guest - 돼라 내 손님이 - Sei Mein Gast〉 ⓒ박혜정



슬레이트를 통해 매 장면의 시작과 끝이 결정된다. 페루 출신 퍼포머(Maricarmen Gutierrez)는 단역으로 참여한 관객을 커뮤니티 일원으로 초대하는 듯 하나 결국에는 모두의 참여와 의견 토론을 통한 동의 없이는 결정이 불가능하고 세부 규정을 알려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정체를 알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에 의해 커뮤니티로의 진입은 이방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작품은 형식적 포용과 실질적 배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한 현실은 유령같은 존재이자 지각되지 않는 언어를 가진 불청객의 존재론적 상태를 통해 현현된다. 얼굴을 거의 가린 가발을 쓴 퍼포머(임지애 무용가)는 유령처럼 관객 사이를 지나서 세트장에 입장하고 촬영이 시작된다. 2층에서 보츠와나 출신 퍼포머(Mmakgosi Kgabi)는 창문 밖으로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문지방’에 서서 발화한다. 불면의 밤들 가운데 길 잃은 언어들, 흐릿한 언어들이 흩어지고 그들은 몽유병처럼 유령처럼 사라진다.



잃어버린 극장 〈Be My Guest - 돼라 내 손님이 - Sei Mein Gast〉 ⓒ박혜정



2부는 1층 위주로 촬영이 진행되는데, 유령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불청객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흑인 퍼포머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임지애 퍼포머는 연출된 아시아 레스토랑 공간에서 지인에게 영화 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인종주의를 말하는데 레스토랑에서 다시 마주한 일상화된 편견에 “나도 게스트입니다”라고 말하고 가발을 벗고 나가버린다. “여기에는 정말 계층이 없는 건가요?”라는 목소리와 함께,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제노사이드, 혐오, 검열, 탄압을 비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애, 희망, 인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며 사랑을 말한다. 배제, 탄압, 차별의 증거이자 저항의 주체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속할 수 없는 디아스포라 주체인 그들이 연대와 환대를 청한다.

잃어버린 극장의 〈Be My Guest〉는 사회적 소수자가 공동체 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대와 배제의 경계를 질문하고 이 속에서 작동하는 위계의 구조와 방식을 다양한 전략을 통해 가시화한다. 영화 촬영을 연극화하는 과정 속에서 실재와 허구의 불분명, 라이브 공연과 매개된 공연 사이의 개입된 시선, 초대되지만 배제될 수 밖에 없는 관객의 위치, 문지방과 같은 공간의 기호학적 활용 등을 통해 때로는 수행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하리보 김치〉와 〈Be My Guest〉 모두는 창작자가 유럽 사회에 겪은 혐오와 차별, 배제의 정치에 주목하고 이와 유사한 정동과 구조가 ‘모국’이라고 생각한 한국에서도 생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 경험이나 상태가 특정한 조건이나 주체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하리보 김치〉는 소맥을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나눠주고 마시는 경험을 통해서 누구나 가지는 경계지을 수 없는 정체성의 존재를 드러낸다. 〈Be My Guest〉는 관객의 목소리를 통해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정치적 폭력와 위계를 폭로하고 꺼지지 않는 희망을 선언한다. 두 작품에 의하면, 주변화된 위치와 배제, 차별, 억압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완벽히 소속된, 온전히 환대받을 수 있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들은 감각과 정동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설령 이러한 공동체가 사건적이고 일시적일지라도 서로의 취약성이 공명하여 비가시적 결속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25. 12.
사진제공_구자하, 박혜정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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