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 작품은 국제 춤 시장에 진출했을 때 플러스알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독창성과 보편성을 갖춘 작품이 상대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한국적인 소재를 가진 창작 작품은 그 자체로 독창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브먼트momm의 〈사계_아지랑이〉(11월 5일, 구로아트밸리 대극장)에 대한 기대는 한국적인 소재의 창작발레 작업이란 점과 이 단체의 대표인 권세현이 지난해에 이어 2025년에 보여주고 있는 안무 작업의 행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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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momm 〈사계_아지랑이〉 ⓒ김윤식 |
창작발레 〈사계_아지랑이〉는 비교적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작품은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안무자인 권세현과 연출(김동철) 등 제작진들은 최대한 단순화시킨 구도로 작품을 풀어냈다.
제작진들은 딸과 어머니를 중심 캐릭터로 설정해 모녀의 사랑과 죽음, 희생, 헌신과 그리움을 작품 전편에 배치하고 몇 명의 캐릭터-재간동이, 병마, 언니, 친구-를 설정해 스토리텔링을 끌어가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프로젝트 발레단으로서 어느 정도의 스토리라인을 담아내는 한국적 소재의 60분 길이의 창작발레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안전한 장치를 선택한 셈이다.
몇몇 캐릭터 댄서를 포함해 20여 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한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진 각각의 장면에서 전환이 되는 스토리라인을 배열한 구성과 여러 종류의 국악기를 활용해 분위기와 이야기의 흐름을 매칭시킨 음악, 그리고 안무자의 변화무쌍한 움직임 조합에 힘입은 바가 컸다.
안무자는 솔리스트들의 독무와 딸과 엄마의 2인무, 그리고 무녀와 재간동이의 춤, 마을 사람들의 군무 등 다채로운 춤들을 60분 내내 곳곳에 배열했다. 등장인물들은 치마 저고리, 갓과 탈을 쓴 남성, 부채를 든 여인 등 의상과 소품에서 한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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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momm 〈사계_아지랑이〉 ⓒ김윤식 |
작곡가 최민지는 어머니와 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적 구도를 세밀한 음악으로 조율해 냈다. 1장 봄, 잔치의 시작은 가야금, 2장 여름, 병마의 그림자는 해금, 3장 가을, 병마의 속삭임은 북, 4장 겨울 아지랑이는 피리와 대금을 중심으로 타악기와 전자음악, 소리를 적재적소에 버무린 그의 음악은 안무자에 의해 짜여진 다채로운 춤의 언어를 캐릭터에 맞게 조합하고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무용을 전공한 최민지의 음악 작업은 수년 전부터 노르웨이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윤별발레컴퍼니의 〈갓, GAT〉 전막공연의 음악을 작곡하는 등 그 행보가 주목할 만했고 올해 무브먼트momm의 〈대지〉에 이은 두 번째 작업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출범한 지 채 5년이 안된 프로젝트 발레단이 20여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60분 소재의 한국적인 소재의 창작발레를 선보이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다.
보완할 점도 있다.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화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토리 전개를 보완하는 세밀한 연출이 더해지고,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설정해 우리나라 전통예술에서 보녀지는 놀이적 요소를 디베르티스망의 하나로 활용한다면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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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momm 〈대지〉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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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먼트momm 〈Silent Noise〉 ⓒ김윤식 |
안무가 권세현은 올해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30분 길이의 창작작품 〈대지〉, 현대춤작가12인전에서 2인무 〈Silent Noise〉를 선보였다. 〈대지〉에서는 6명의 댄서들을 통해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지구 환경 파괴 문제를 춤과 시각적 비주얼을 통해 비판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냈다.
올 봄에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선보인 〈Silent Noise〉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함께 춤추었던 Alexandr Seytkaliev와의 2인무를 통해 춤과 음악의 빼어난 조합을 보여주었다. 뛰어난 파트너십과 오묘한 움직임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네오클래식 발레와 컨템퍼러리 발레의 장점들을 골고루 녹여냈다.
2024년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열린 창작발레신인안무가전에서 선보인 〈The Colors〉는 댄서들의 에너지를 세밀하게 조율하면서 어느 장면에서는 폭발적인 이미지를 변환시키는 등 안무가로서의 성장을 기대케 했다.
최근 2년 동안 일련의 작업들에서 보여준 권세현의 안무는 음악과 다양한 움직임의 조합이 빚어내는 현대적인 감각의 매칭에서 특히 빛을 발했다. 영상과 조명 등을 활용한 시각적 이미지의 구현과 뛰어난 음악 해석력은 그가 국립발레단과 노르웨이국립발레단, 폴란드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다양한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여러 스타일의 안무가들과 작업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