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적대 협력관계라는 것은 대등한 두 힘의 긴장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무대를 사이에 두고 춤과 현실이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무대 밖 저쪽은 자유의 공간이다. 터무니없는 지원금 때문에 춤 작업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초월된 춤의 관계는 무슨 거울처럼 이쪽이 다가가면 저쪽도 다가온다. 창작 작업의 열정을 깎아먹는 지원금과 전공자들의 소멸이 서로 맞서는 두 힘의 소강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원금 액수와 상관없이) 작품의 예술성이 무너지는 데 대한 분노는 그 균형에 위기를 가져옴으로써 춤이 지리멸렬하거나 동시에 변화무쌍한 길이 된다는 것을 대구 창작춤 무대에서 확인한다.
정길무용단의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정길무용단(예술감독 김현태)의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문화예술회관 팔공홀, 11월 19일)는 지난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올해 대구문화재단의 ‘창작무용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좋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공연이었다. 다만 처음 공연했던 공간에(오페라하우스) 맞춘 춤의 설계와 연출이 공간이 바뀌면서 부분적으로 춤의 의도가 옅어진 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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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무용단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옥상훈 |
1장. 김현태가 무대중앙에 정좌한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첼로 연주. 팔을 들어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 듯 닦는다. 지워버리고 싶다는 몸짓으로 보이기도. 팔을 들어 허공에다 글을 쓴 뒤, 객석을 가리키며 반바퀴 휘젓는다. 춤의 배경인 아크릴판 설치물에 일렁이는 조명. 물의 일렁임 같다. 허리를 자르듯 뒷 배경 한가운데만 배치된 아크릴판에 조명이 되비치는 그림과 물의 일렁임이 압권이다. 어두운 배경에 휙 지나며 흐르는 빛은 밤하는의 유성처럼 보이기도. 먹빛의 강. 흐르는 역사의 은유처럼 보이는 김현태의 솔로춤의 배경, 아름다웠다. 나라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보여주는 설치물이 춤을 떠받든다. 안무의도가 선명하게 잘 드러난 춤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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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무용단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옥상훈 |
2장. 천장에 걸려있던 아크릴판이 앞뒤, 옆으로 엇갈리니 판마다 틈과 길이 생겨난다. 흰색 두루마기를 걸친 무용수들이 혼령처럼 그 사이를 서성이며 소리친다.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읊고 있다. 뒤이어 허리를 앞으로 푹 꺾은 채 걸어나온 군무진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춤을 춘다. 가운데로 모여들며 바닥을 흔들흔들 밟고 누르며 중앙에 모였다가 한꺼번에 휙 몸을 일으킨다. 지금은 꺾였지만 힘을 모아 나라를 되찾겠다는 춤. 작은 그룹으로 모여추는 군무, 팔을 꺾어 손을 맞잡고 원을 만들어 돌면서 추는 춤은 독립을 모색하는 것일지도. 춤에너지가 지난 해 보던 것과 달리 흩어져 보인다. 극장 공간이 달라진 것이 이유인지도. 겉옷을 벗어 땅을 치고, 살풀이 수건을 손에 들고 추는 것 같은 윤무. 살짝 옅어졌지만 의도가 잘 드러난 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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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무용단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옥상훈 |
3장. 남자(김현태)가 다듬이 돌을 이어 붙여 밀고 들어온다, 느리게. 마치 관처럼 보이기도.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중에 가장 미감이 뛰어난 부분이다. 다듬이돌 위에 엎드린다. 무대 안쪽에서 깊숙한 곳에서 다른 남자(서상재)가 다듬이돌을 직각 방향으로 밀고 들어와 모서리를 맞춘뒤, 그 옆에 앉는다.
남자(김현태)가 다듬이돌 위에서 한 발로 선다. 한 발을 앞 뒤로 흔든다. 중심이 휘청, 몸이 흔들린다. 남자가 (서상재) 그 곁에 비스듬히 앉아있다. 지난 번 작품과 다른 다른 춤의 정서다. 지난해 미동도 않고 꼿꼿하게 앉아 각지게 움직였던 춤(일본의 정서라고 본)과 다르다. ‘비스듬한 것과 꼿꼿한 움직임’ 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다. 무릎걸음으로 다니며 돌을 떼놓았다가 다시 이어붙인다. 이육사(김현태)의 움직임과 무관하다는 듯. 김현태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인다. 둘이 마주 보는 듯하다. 아니 다른 곳을 보는지도. 이육사(김현태)가 앉자, 남자(서상재)가 들어간다. 지난 해 남자(서상재)가 일본의 은유였다면, 올해 작품의 남자(서상재)는 이육사의 조력자나, 방관자 쯤으로 읽힌다.
수건을 목에 걸고 나온 여인들이 목에 건 수건으로 바닥을 닦는다. 애통해 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읽힌다. 사라졌다가 휘적휘적 팔을 저으며 걸어나와 바닥을 닦고 또 닦는다, 오랫동안. 쾡과리가 들어오고 타악기 연주에 맞춘 윤무가 절절하고 슬프다. 쓰러지지 않고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여서 추는 춤. 아크릴 설치물이 내려온다. 빛이 어룽거리는 아크릴판과 흰모시천이 겹겹이 내려온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내어놓을 흰 모시천. 첩첩이 맞물리며 중첩된(역사) 아크릴판 숲의 이동. 역사를 은유하는 판이 맛물리고 물러나며 무대 가운데 길을 낸다. 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다가 뒤돌아보는 이육사(김현태). 길 가운데 서서 미래(객석)를 가만히 쳐다보다 돌아서 걷는다. 다시 본 〈큰 강물이...〉, 여전히 아름답고 근사했다.
대구시티발레단의 〈카페 아루스〉
대구시티발레단(예술감독 우혜영)의 〈카페 아루스〉.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1912~1950)이 열었던 ‘아루스 다방’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38세에 요절한 작가로 ‘대구의 문화인물의 발굴 및 재조명을 통해 작가의 작품과 삶을 발레로 옮겨놓은’ 창작발레다. 2017년, 2019년에 이어 세 번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2019년 작품에 이어 두 번째 관람.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만나는 협력 모델로 성장’을 도모한다는 작품을 지난번 우혜영의 안무와 연출과 달리 이번 공연은 연극 연출자(이국희)가 총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매 장마다 화가 이인성이 남긴 메모의 글을 낭독하는 소리를 배치하는 등, 군무와 듀오 외에 거의 연극적 연출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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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티발레단 〈카페 아루스〉 ⓒ우혜영 |
프롤로그. 이젤 앞에 앉은 화가(정경표)와 사각 스크린에 투사되는 이인성의 작품들, 조명이 바뀌면서 스크린 뒤에 서 있던 무용수들의 움직임. 화가와 이인성으로 보이는 남자(김홍영)의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동작들. 검정의상(배재준)을 입은 남자의 화폭을 두드렸다가 쓰다듬는다. 이인성과 칼든 남자(팸플릿 참고)의 갈등의 춤, 그리고 총소리, 스크린에 피가 튄다. 작품은 이인성의 죽음을 먼저 제시한 뒤, 사유를 담은 기록의 낭독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와 삶과 사랑, 한국전쟁을 그려내는 형식을 선택했다. 넓은 폭의 치마를 펼쳐들고 추는 다섯명의 춤에 이어 국악장단이 깔리면서 바지와 두건을 내려뜨린 의상의 20여명이 추는 군무. 여전히 이젤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화가(홍경표)는 작품 속 작가 이인성인지, 아니면 이인성의 삶과 죽음, 예술세계를 지켜보는 전지적 시점의 또다른 인물인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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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티발레단 〈카페 아루스〉 ⓒ우혜영 |
흰색 의상에 손잡이가 길게 달린 바구니를 들고 추는 군무. 그림 속 인물들은 그려낸 듯, 단순한 춤의 대칭의 연속이다. 이인성이 남긴 글을 낭송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파편화되어 떠돈다. 유채꽃, 고향, 적토의 향기, 조선의 풍경 …. ‘적토의 향기’가 바구니를 든(조개를 캐 담거나 꽃을 담는 용도?) 여인들로, ‘조선의 풍경’이 국악장단으로, 거칠게 섞였다.
노랑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무대로 들어오자 앉아 있던 화가가 여행 가방을 건넨다. 뱃고동소리에 여행을 떠나는가 짐작, 다시 의자와 테이블이 들어오자 포즈를 잡고 앉는다. ‘사랑-노란옷의 여인’ 씬으로 이인성의 작품 〈노란옷의 여인〉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화가가 손가락을 구부려 구도를 잡고,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주고 이젤앞에 앉자, 남자무용수 몇이 그녀를 들어올린다.
롤러스케이트를 탄 무용수들이 신호등과 가로등, 도자기, 선인장, 20k 라고 씌여진 도로표지판 등 소품을 들고 미끄러져 들어온다. 여인을 그리던 화가가 아닌 다른 이인성(김홍영)과의 춤. 군무진과의 춤. 뱃고동소리에 모자를 들고 들어온 화가가 여자에게 씌어주고, 여자는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다.
캔버스로 보이는 설치물이 내려오고, 다시 이어지는 낭송. ‘밀레, 고흐, 해바라기, 해질녘, 보리밭길’ 등의 단어 아래 둥근 등 하나씩을 들고 춤추는 군무진. 춤에 부여하고자 했던 단어들의 의미가 춤에 끼어들어와 혼란을 일으키며 춤을 소모하고 뭉개는 형국이다. 어떻게 이 혼란과 낭비에서 구제될 수 있을까. 의미가 과잉된 연출이었다. 토슈즈를 신은 무용수와 발레리노의 듀오, 나무랄 데 없었다. 무용수들의 춤기량과 고른 신체조건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화가 이인성의 인생 절정기를 다룬 씬. 허리에 흰색 닭을 들고 군무진 옆에 서 있는 이. 우산을 든 화가,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뒤돌아 서 있다. 동물탈을 쓴 남자가 큰 귀를 손으로 털며 등장인물들을 따라다닌다. 소라껍데기를 든 무용수들, 그림 속 정물들의 퍼레이드인가. 손가락 그림자, 남자가 팔짱을 낀채 돌아서 있다. 나란히.
여자가 우산 든 남자의 팔짱을 끼고 같이 돌아선다. 항아리, 소라, 그림, 꽃 소품을 든 다섯 명의 춤. 무대천장에서 사각 프레임이 내려온다. 두 남자로 은유되는 갈등과 전쟁, 분단으로 읽힌다. 총소리와 폭격소리, 작은 프레임속 자화상 등은 마치 현대회화를 보는 듯, 설득력이 있는 그림이다.
또 시작되는 낭송. “나의 천직은 그림을 그리는 신세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개성을 짓밟았다. 그림 속에서 이 괴로움이 사라진다.”
다시 울리는 총소리. 처음 시작된 씬으로 돌아간다. 혼란스러운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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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티발레단 〈카페 아루스〉 ⓒ우혜영 |
한 예술가의 삶을 삶의 절대적 형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삶을 내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세상에는 확실히 바깥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삶이 있다. 그 시대의 눈을 빌리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사회의 삶과 예술 장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따른 그 합리적 근거를 그려내는 데 사용하기 위해 외부적 시선을 동원할 수도 있다. 더하여 다른 장르와 협력한다고 해서 춤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춤으로 그려 보이겠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같이 작업하는 연출자가 춤의 구조와 춤언어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그 전제는 있어야 한다. 반대의 조건도 마찬가지다. 〈카페 아루스〉는 안무가와 연출가가 서로 계산에 넣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듯하다. 그 부분은 결국 안무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박금희의 춤 〈파리스의 심판〉
클래식발레는 여전히 나머지 예술적 경험이 그것에 견주어 판단되는 기준을 제공한다.
그리스 신화 ‘파리스의 심판’을 창작발레로 푼 박금희(계명대교수) 춤 〈파리스의 심판〉(대구오페라하우스, 12월 20일).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황금사과를 던지면서 세 여신이 다투게 되는 이야기다. 중재를 위해 제우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고,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트로이전쟁의 시작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을 빼닮았다. 인간처럼 질투하고 싸우며 한눈을 팔았다. 발레창작에 맞춤한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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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희 〈파리스의 심판〉 ⓒ이경윤 |
씬 1. 무대 막이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등장인물들이 막 앞을 가로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공작새를 얹은 헤라,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아들 큐피트와 함께, 붉은 벨벳 상의를 입은 파리스 왕자, 면사포를 쓴 제우스의 딸 테티스와 연미복을 입은 펠레우스, 검정색 망토를 쓴 에리스까지.
씬 2, 샹들리에가 내려진 아테네 신전. 군무와 솔로로 이어진 춤, 가벼운 군무 뒷배경으로 늘어선 군무진의 움직임은 클래식발레의 표현 형식을 따랐다. 솔로, 듀오, 다시 솔로를 추는 세 여신들의 춤. 염려와 달리 춤기량이 대체적으로 고르다. 아프로디테의 솔로. 헤라와 아테나의 듀오, 마지막 세 여신이 함께 푸에떼로 마무리하는 춤에 박수가 쏟아졌다. 솔로는 물론, 세 명의 춤 또한 파드되의 구성 형식을 따랐다.
결혼식 파티 장면을 클래식 음악에 현대춤 군무로 풀어낸 장. 무릎길이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과 각자 다른 색의 연미복을 입은 맨발의 남자들이 왈츠를 추는 파티 장면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무용수의 부족 등 서울에 비해 열악한 공연 여건을 지혜롭게 풀어낸 안무로 역동적으로 잘 풀어낸 씬이었다.
파티장에 들어선 파리스가 쌍쌍이 추는 듀오의 포즈동작에 개입, 들고 있는 다리를 내려놓는가 하면, 둘 사이를 떼어놓는 등 짖궂게 굴며 끝나는 파티 씬.
검정 의상의 에리스의 솔로. 점프가 많은 춤 동작에 방해 요건이 된 긴 치마 의상으로 춤이 가려졌다. 이어 세 명 여신의 춤이 어두운 무대에서 이어진다. 마치 주문을 거는 듯, 격정적으로 흐르는 음악에 샹들리에가 올라가고 황금색 사과가 내걸리며 갈등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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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희 〈파리스의 심판〉 ⓒ이경윤 |
2막. 황금색 사과아래 붉은색 벨벳시트 의자 하나가 놓인 무대. 전달하고자 한 의도를 간결한 무대장치로 제시한 세련된 장치였다. 파리스의 등장 씬, 걱정하나 없는, 자유롭게 추는 춤으로 파리스의 캐릭터를 잘 그려낸 춤연기가 눈에 띤 춤이었다. 빠른 턴을 멋지게 해낸 뒤,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움직임이 유쾌하다.
세명의 여신이 파리스를 압박하며 등장하는 장면에 흐르는 베토벤의 운명, 위트였다. 한 명씩 춤을 춘 뒤에 나란히 파리스를 향해 압박하듯 팔짱을 끼고 선다. 선택의 괴로움에 빠져있는 파리스 앞에서 저마다의 지혜와 재능을 다시 춤으로 그려보이는 여신들. 선택이란 주제를 강조를 하기 위한 춤의 배치로 읽힌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배경인 영상이 춤과 이야기 몰입에 도움을 준다. 다만 깊이감 있는 영상에 걸맞는 화려한 기교의 춤이었다면 더 좋았을 듯.
클래식 버전 바리에이션을 그대로 가져온 큐피트의 춤에 이어지는 아프로디테의 춤. 네 쪽으로 갈라지는 황금사과. 선택의 기로에 서 고민이 깊어진 파리스. 황금사과를 부셔버리고 싶다는 파리스의 심경이거나, 혹은 나눠서 사이좋게 한 쪽씩 가지게 하거나. 아무튼 불투명한 시간이 닿지 않는 미래를 향해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고독과 고통을 보여주는, 네 쪽으로 갈라져 공중에 걸린 황금사과는 기가막힌 무대장치였다. 파리스가 누군에겐가 도움을 청하듯 팔을 뻗고, 바닥을 두손과 두 발로 기고, 얼굴을 바닥에 묻는다.
자신이 한 선택에 의해 자신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예감한 듯한 춤이었다. ‘다이애나 악테온’ 바리에이션이 이어진다. 파워풀한 힘과 발란스가 좋아야 하는 춤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달의 여신 다이애나의 춤을? 화살을 들고 춘다는 이유로? 의미의 연결고리에 잠시 의문이 들었다. 여신이라는 인물만 모티브로 따온 것인지.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무대영상이 바뀌고 사랑스런 분위기와 아름다움으로 잠깐 가득한 무대. 아프로디테와 파리스의 춤에 이어 세명의 여신과 파리스의 춤이 발레형식에 따라 이어진다. 평화와 공존의 춤. 파리스가 세 여신의 손을 잡아주면 아라베스크 자세로 다리를 높이 든다. 이어 천둥이 치고, 불타는 궁전에서 파리스가 절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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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희 〈파리스의 심판〉 ⓒ이경윤 |
지방의 열악한 춤 여건, 특히 발레창작 작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작업을 하는 박금희의 발견, 아니 발견이라고 부르기보다 춤에 대한 태도라고 불러야 할 어떤 것인데, 이 태도는 의젓하다. 열악한 여건의 투정과 엄살로 그 생생함을 유지하기로 들자면 끝이 없다. 박금희에게는 현실이 불투명할수록 그의 발레가 모험해야 할 미궁도 그만큼 큰 것이 된다. 하지만 그가 창작작업으로 돌아와 있는 무대는 이미 작은 점이 아니다. 발레 전공자가 줄어드는 학교 현장에서 처음 발레를 가르치면서 한 약속과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하나의 자리를 형성하였을 것이며, 그가 창작작업으로 돌아와 선 그 공간의 가장자리는 발레교육자로서 최전선으로 나아가는 자리이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그의 처음 출발점은 발레리나, 지도자라는 순결한 희망이 현실과 날카롭게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두터움이 춤의 깊이가 된다. 춤을 잘추는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없는 무대였다고 어떤 오만한 판단으로 묶을 수 있겠는가. 훌륭한 기량의 발레무용수를 보유하고 있는 서울의 단체도 쉽지 않은 창작발레 작업을 도모하고 실천에 옮기는 박금희가 대구에 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