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종묘제례악무를 무대에 올린 ‘64인이 펼치는 팔풍의 몸짓- 일무’의 공연이 11월 2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있었다. 사단법인 아악일무보존회(대표 김영숙) 주최로 24장 전장을 아악일무보존회 회원이자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 전수자 64인이 춤춘 것이다. 종묘의 사계절과 종묘의 다양한 풍광들을 배경으로 가로 열에 8인, 세로 열에 8인이 예악당 무대를 가득 채웠고, 조풍류 화가가 그린 원화를 정재진 미디어아티스트가 작업하여 종묘의 모습을 다원적으로 선보였다. 일무의 무용수들은 보태평지무에서 홍주의(紅紬衣)에 남사대를 매고, 복두를 머리에 쓰고, 왼손에 약(籥)을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춤추었으며, 정대업지무에서는 앞의 4열은 목검(木劍)을 잡고 뒤의 4열은 창(槍)을 잡고 춤추었다. 5월에 종묘에서 행하는 종묘대제에서는 시간 관계상 일무(佾舞) 전체를 볼 수 없고, 아악일무보존회의 이전 정기공연에서는 64인을 구성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일무에 집중하여 전모를 볼수 있는 뜻깊은 공연이었다.
그간 일무를 작품화한 공연들이 있었다. 2021년에 국립국악원이 올린 ‘종묘제례악’이 한국전통문화의 걸작으로서 국내와 국제무대의 호평을 받았으나, 적은 인원으로 열(列)을 변형시키고 일무 전체를 보여주지 못했었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일무 본연의 주제의식이나 철학과는 무관하게 마스게임과 같은 형식의 변주만을 보여주었던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아악일무보존회의 이번 공연은 일무의 뿌리깊은 토대를 보여준 것이다.
종묘제례악무는 제례(祭禮)와 악(樂)과 무(舞)로 구성된다.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종묘에서 조선 왕들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선 종묘제례의 절차는 영신례, 전폐례, 진찬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철변두, 송신례의 절차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제사의 춤은 영신례, 전폐례, 초헌례에서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를 추고, 아헌례와 종헌례에서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추게 된다. 그리고 제사의 음악은 절차에 따라 영신희문(迎神熙文), 전폐희문(奠幣熙文), 풍안지악(豊安之樂),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 옹안지악(雍安之樂), 흥안지악(興安之樂)을 연주한다. 조선 건국 초기인 세종 시기에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고자 악무를 창제하였고, 세조 시기에 음악을 편곡하면서 왕가의 제사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묘제례의 각 과정에 노랫말인 악장(樂章)이 있는데, 악장에는 제사를 올리는 의미라든가, 조선 왕조 건설의 과정이나 업적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한 내용으로 27개의 악장이 있는데, 그중 영신희문에 1장, 전폐의문에 1장, 초헌례에 11장, 아헌 종헌례에 11장으로 24개의 악장에서 춤이 추어지는 것이다. 초헌례에서는 희문, 기명, 귀인, 형가, 집녕, 융화, 현미, 용광⸱정명, 중광, 대유, 역성의 11장을 부를 때 보태평지무를 춘다. 아헌례와 종헌례에서는 소무, 독경, 탁정, 선위, 신정, 분응, 순응, 총유, 정세, 혁정, 영관의 11장을 부를 때, 정대업지무를 추는 것이다. 즉 이상에서 열거한 24개의 악장에서 다른 순서로 24개의 일무가 추어지는 것이다.
세종 29년(1447)의 창제를 기준으로 본다면 일무는 현재까지 8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거치며 추어진 춤이며, 조선시대 정치철학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유산이다. 1964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후 종묘제례악에서 악기별로 예능보유자가 여러 분이 있었으나, 일무의 예능보유자 김천흥(金千興), 봉해룡(奉海龍), 장인식(張寅湜), 박정수(朴貞洙)는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는 전승교육사로서 김영숙 대표가 전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1988년에 혼자서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의 24장의 일무 전체를 처음으로 발표한 이후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일무 전승에 진력을 다했다. 2000년 이전에는 일무에 대한 이해가 문화예술계에 매우 박약했으나, 이후에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영숙 전승교육사의 일무 교육 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인천도호부, 영월의 단종문화제와 향교 등에서 일무를 추었으며, 몇몇 전통춤 무용가들은 자신의 공연에서 일무를 독무로 추는 프로그램도 올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연은 본 공연 전 사전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64인의 일무를 가능케 한 김영숙 대표는 일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이왕직 아악부원으로부터 국립국악원의 사범이셨던 김천흥(金千興, 1909~ 2007), 성경린(成慶麟, 1911~2008) 스승으로부터 일무의 전승을 당부받은 이야기,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에 담긴 음양의 구분과 조화, 동작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또한 일무(佾舞)란 팔풍(八風)의 몸짓으로서 일무를 통해 조화로운 팔풍을 행하는 것, 또 팔풍이 조화롭게 불어서 그 기운을 일으키게 하여 태평성대를 지향했던 조선시대 정치 이념이 일무에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전승되고 있으나 다른 춤들처럼 자주 공연하는 종목이 아니므로 이러한 사전 설명은 공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덕택 사회자의 오프닝이 있은 후 64명의 일무 무용수들이 차례로 들어와 열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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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평지무〉 합흉 동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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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평지무〉 수복 동작 |
첫 프로그램은 〈전폐희문〉이었다. 전폐례 과정의 전폐희문곡은 보태평지악 중 희문곡을 느리게 연주하는 악곡이므로 보태평지무보다 느리게 추어진다. 다음은 〈보태평지무〉로 초헌례의 등가(상월대의 악대)에서 연주하는 보태평지악에 맞추어 추었다. 왼손에 약(籥)과 오른손에 적을 들고 추는데 문무(文舞)라고 하며, 이는 조상의 문덕(文德)을 기리기 위해 추는 춤이다. 희문, 기명, 귀인, 형가, 집녕, 융화, 현미, 용광⸱정명, 중광, 대유, 역성의 각 악장에서 11가지 일무를 추었다. 마지막 ‘역성(繹成)’ 악장의 내용을 옮기면, “조상의 덕을 맺으려고 그 거룩하신 사업 쫓나이다.(世德作求 率維敉功) / 그 빛 태평 밝았으니 예악이 진정 융성토다.(光闡太平 禮樂方隆) / 약과 적 잡고 춤을 출 적에 풍류는 이미 아홉 번 변했오.(左籥右翟 曰旣九變) / 이로써 선조 공 밝히니 온갖 미와 선이 다했다오.(式昭光烈 盡美盡善)”이다. 춤동작들이 ‘역성’ 악장의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일무 동작들이 추상화된 춤사위인지를 필자는 알지 못하지만, 조선왕조의 제사를 행하는 공간에서 그 관계를 상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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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업지무〉 하견 동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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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업지무〉 점슬 동작 |
사회자의 해설이 있은 후 〈정대업지무〉가 추어졌다. 아헌례와 종헌례를 위해 궁가(하월대의 악대)에서 연주하는 정대업지악에 맞추어 추었다. 소무, 독경, 탁정, 선위, 신정, 분응, 순응, 총유, 정세, 혁정, 영관의 각 악장에 따라 11가지 순서의 일무를 추었다. 이때 추는 일무를 정대업지무라 하는데 조상의 무공(武功)을 기리기 위해 추는 춤이다. 첫 번째 악장인 ‘소무(昭武)’의 내용은 “하늘께서 우리 성군을 돌보시고 도우시사(天眷我列聖) / 대를 이어 무공을 밝게 빛냈도다.(繼世昭聖武) / 무쌍의 무공을 선양하셨으니(庶揚無競烈) / 이에 여기 노래하고 춤추나이다.(是用歌且舞)”이다. 역대 왕들의 빛나는 무공(武功)이 있었기에 왕조가 번영할 수 있었으며, 이를 노래하고 춤춘다는 뜻이다. 조선 초에는 검과 창과 궁시(활과 화살)를 들고 추었으나, 현재는 검과 창을 들고 춤추고 있다. 정대업지무 역시 춤 동작은 느리고 단조로우나, 춤의 주제와 춤 도구를 연결하면 누구나 선왕들의 무업(武業)을 상상하고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64인이 펼치는 팔풍의 몸짓, 일무’ 공연이 끝났다. 일무의 무용수들이 각 열대로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했고, 관객들은 8열의 무용수들이 모두 인사를 마칠 때까지 박수를 보냈다. 그 긴 순서의 춤을 모두 추어냈고, 춤추기 위해 들인 노력들을 치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일무의 다음 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64인의 일무 전장 공연을 이뤄낸 아악일무보존회 김영숙 대표의 공력과 노고에 대해서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일무 전승의 한 매듭을 맺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더욱 단단히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혹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악학궤범』에 실린 세종조 회례연의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의 재현을 제안해 본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