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프로젝트 뽑기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호흡을 통한 몸의 탐구, 숨겨진 리듬 찾기
장광열_춤비평가

콘셉트는 분명했고 여운은 강했다.
사람의 몸을 춤 공연으로 빚어낼 수 있는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안무가 이윤정은 다섯 명 댄서들을 통해 이 물음에 답했다.











댄스프로젝트 뽑기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박해욱



객석은 사방에 놓여져 있고 온통 블랙인 극장에 한 명의 남성을 포함한 다섯 댄서들의 아래 위 복색은 화이트이다.


무용수들이 무대에 등장한 후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다. 관객들이 춤 작업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 듯 댄서들의 미동에 이은 하품 소리가 정적을 깬다. 하품하는 댄서들의 입의 크기, 얼굴 표정, 신체의 기울기도 제 각각으로 변하더니 이내 춤의 대형도 자연스레 바뀌어진다.

댄서들이 하품을 시작하면 그들의 체형이 각기 다른 만큼 호흡의 변화에 따라 하품 소리도 달라지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얼굴 표정도 달라진다. 관객들은 댄서들의 표정을 보면서 이내 그들의 얼굴이 함께 춤추는 것을 발견한다. 순간 평자는 〈설근체조〉에서 안무자가 입속 30센티나 되는 무용수들의 혀를 최대한 뽑아내도록 한 시도가 오버랩 되었다.

人聲(인성)이 가미된 변주되는 몸에 익숙해질 때 쯤 무용수들의 느린 움직임 속 얼굴 표정에서는 장애인의 모습이, 이후 상체를 꼿꼿이 세운 댄서들이 두 발 중 한발 만으로 소폭으로 전진하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동작에서는 좀비들이 모습이 스쳐갔다.

그제 서야 평자는 댄서들의 몸의 질감이 예사롭지 않음을 간파했다. 세밀하게 짜여 진 것 같은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작품에 대한 몰입력이 예사롭지 않다. 댄서들은 반복된 연습에 의해 익숙해진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호흡을 기저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작품 중반부를 넘어, 흩어진 댄서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하나의 몸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평자의 집중력은 배가되었다. 호흡에 의한 몸의 분절은 관객들의 시선을 온통 집중시킨다. 다섯 댄서들이 두 무릎과 두 다리로 하반신을 플로어에 밀착한 채 상체 위주로 움직일 때 어떤 무용수는 어깨를 먼저, 어떤 댄서는 팔을 먼저 뻗어 몸을 확장시킨다. 댄서들마다의 그 미세한 차이가 기막힌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이어 댄서들은 반복되는 움직임에 지친 심신을 거친 숨소리로 여과 없이 토해낸다. 일정한 템포로 움직이던 댄서들의 몸이 어는 시점 정지된 순간, 커다란 돌이 구르는 것 같은 사운드가 더해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닫힌 공간 속에 갇힌 사람들이 탈출을 위해 마지막 체력을 소진한 몸을 보듯 이 장면은 섬뜩했다.

하체를 바닥에 밀착한 댄서들이 허밍으로 만들어내는 소리가 기존 음악과 매칭 되면서 서서히 암전이 이루어지고 관객들은 어둠 속에서 한동안 그들의 허밍 코러스를 듣는다.









댄스프로젝트 뽑기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박해욱



댄스프로젝트 뽑기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12월 17일-18일, 대학로극장 쿼드, 평자 17일 관람)은 평자가 봤던 이윤정의 안무작 〈설근체조〉에 이은 안무가의 또 하나의 역작이다.

안무가에 의해 조율된 다섯 댄서들의 몸은 깊게 그리고 꽤 넓게 확장되었고, 작품은 극장예술의 여러 요소들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무한한 경쟁력을 입증해 보였다.

일등 공신은 작품의 콘셉트를 몸으로 체화한 댄서들의, 정밀하면서도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변주되는 움직임이었다. 들숨과 날숨, 과 호흡과 때론 무호흡 상태에서 빚어지는 개개 댄서들의 움직임은 아주 세밀하게 달랐고 그 자체로 변화무쌍했다. 한 마디로 호흡에 대한 연구결과를 몸으로 드러내는 이 작업은 댄서들에 따라 그 질감이 다르게 구현되었고, 그 미세한 다름은 관객들에게는 춤을 보는 흥미를 배가시켰다.

안무가와 제작진들은 영리했다. 각기 다른 호흡을 통해 발생되는 소리, 움직이면서 내뱉는 人聲(인성)을 라이브 연주와 조율시킨 사운드 디자인(홍초선)은 중간 중간 청각을 자극한다. 호흡에 의해 생성된 움직임이 사운드가 밀어주면서 여럿 인상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댄서들의 몸을 누운 부처처럼 만들고, 그들이 두 다리를 들고 고개를 치켜들면서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장면은 움직임을 변환시키는 안무가의 기발한 한 수였다. 체형이 각기 다른 댄서들을 낮은 공간에 포석시킨 이 장면은 이어지는 장면과도 확연히 대비되었다. 몸이 호흡으로 가득 찬 상태, 정수리와 발바닥이 일치되는 순간 직립 된 댄서들의 형상은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극장 춤 공연에서 자주 보던 움직임과는 분명히 달랐고, 응축된 선명한 이미지는 잔잔한 톤으로 채색된 조명과 어우러지면서 몸을 매개로 하는 극장예술로서의 춤 공연을 보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안무가 이윤정에 의해 집요하게 시도된 호흡을 통한 몸의 탐구 작업은 성공했다. 공동 리서치와 사운드 트레이닝에 의해 작품에 대한 댄서들의 몰입을 끌어냈고, 논리적인 전개를 뒷받침한 드라마투르그(김재리)까지 제작 스태프들의 뛰어난 협업과 제작 과정의 튼실함도 성공의 요인이다.

이번 공연은 호흡조절에 의한 미세한 움직임의 매칭, 한마디로 호흡을 통해 몸속에 숨겨진 리듬 찾기 작업이었고, 신체의 물질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안무가의 또 다른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평균점을 훨씬 상회하는 예술적 완성도로 되돌아왔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6. 1.
사진제공_박해욱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6.30'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