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5 아르코 댄스 UP:RISE
안무가의 성장과 그 여건에 대한 해법
이지현_춤비평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극장장 강량원/ 이하 극장)이 작년부터 ‘안무가의 성장과 터닝포인트’에 초점을 두고 창작 지원(아르코 댄스 커넥션에서 아르코 댄스 UP:RISE로 변경)을 하고 있다. 아르코극장과 무용인들의 사랑은 40여년 째 변함없이 끈끈하면서도 뜨겁다. 그럼에도 대관 중심 극장으로의 자기 면모 때문에 제작 공연에 대한 마음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어려움을 뚫고 작년부터 안무가를 지원하는 제작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무용인들의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극장의 의지가 표명된 ‘안무가의 성장과 터닝 포인트’라는 지향성은 다른 지원사업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읽혀 관심을 집중시킨다. 대부분의 창작 지원은 창작품, 즉 신작의 탄생을 지원하고, 신작은 곧 안무가가 만드는 것이기에 이 둘을 떼어 생각하거나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낯선 현실에서 ‘아르코 댄스 UP:RISE’(제작 PD 김자은)가 ‘안무가’에 초점을 두고 지원을 해보겠다는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는 오히려 극장이 무용계에 ‘안무’라는 화두를 던지며 함께 모색하기를 자극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의 4명의 안무가(이건중, 정철인, 전혁진, 이해니)가 스테이지1에 등장했고, 전혁진의 〈Extinction Ver.2〉와 이해니의 〈
Pan_Opticon: [Unseen_Code]〉가 스테이지 2로 나가 올해 뽑힌 4명의 작품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2월 초까지 공연을 마쳤다. 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2년째인 스테이지 2의 무대가 끝나야 첫 해의 농사가 잘 지어졌는지,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긴 호흡의 주기를 갖기에 스테이지 1의 새로운 4명의 안무가(김영찬, 정찬일, 박유라, 민희정)의 작품과 더불어 스테이지 2의 두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무게감은 어느 경우보다도 무거웠다.



이해니 〈Pan_Opticon: [Unseen_Code]〉,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이해니의 〈Pan_Opticon: [Unseen_Code]〉은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공간을 확장했고 대거 LED 스크린을 들여와 시각적인 매체를 확장했다. 개축무대를 올려 관객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를 만들었고, 관객이 자신의 시각으로 서로를 보게끔 만들었을 뿐 아니라 무대 중앙의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모습까지도 관찰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끔 말 그대로 pan opticon을 무대에 실현했다.



이해니 〈Pan_Opticon: [Unseen_Code]〉,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이해니가 이 프로그램에 안무가로 선정되었을 때 다소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만큼이나 경력이 부족해서 혹시나 하는 우려를 가진 어떤 시선을 열정적인 시도와 신선함으로 여지없이 깨뜨려 준 것은 오랜 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세대 안무가의 등장 장면이었다. 여전히 스테이지 2 무대에서의 이해니는 안무를 현실화하는 과정의 여러 악전고투를 해내며 체급을 올리고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이해니 〈Pan_Opticon: [Unseen_Code]〉,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안무의 좁은 의미인 동작과 언어, 시퀀스와 구조보다는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작품 전체를 고민하는 모습을 제대로 된 코스를 밟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작품의 주제를 시각화 하는데 주력하다 보니 주제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지에 대한 작품의 완결성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전혁진 〈Extinction Ver.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전혁진의 〈Extinction Ver.2〉는 소극장에서 그대로 공연되어 공간의 변화는 없었지만 1시간짜리 작품으로 발전시켜야 했기에 작품의 밀도에서 큰 변화를 보였다. 이 작품이 갖는 매력은 무대 전면에 투사되는 실시간 혹은 시차를 둔 영상의 강력함이다. 흑백 혹은 약간의 순화된 흑백 톤으로 전개되는 영상은 무대 위의 춤과 자연스럽게 교차되거나 지나간 동작을 중첩시키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며 우리의 실제 시각을 충실히 보완한다. 개인의 감각 기관의 작용을 외적인 장치로 드러내 또 하나의 매체 역할을 한다는 건 개인의 감각과정과 회고와 연상 작용을 가끔은 중앙으로 다시 모아내 작품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을 잘 보여주었다.



전혁진 〈Extinction Ver.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30분 이내였을 때와 1시간의 작품이 되었을 때, 이 작품이 가장 달라진 것은 주제인 ‘소멸’의 뉘앙스의 변화였다. 스테이지 1에서는 보편적인 소멸 어쩌면 기억의 상실, 감각의 무상함에 대한 애잔한 정서가 주였다면, 스테이지 2에서는 두 주인공 남녀의 관계가 중심에 뚜렷하게 섰고 그 둘을 은유하는 의자 두개와 고독한 공간의 긴 줄을 가진 등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이미지가 ‘관계의 소멸과 여운’으로 안착되었다. 어찌 보면 스테이지 1에서 추상적이어서 보편적일 수 있던 정서가 있었고 관객은 그 정서 안에서 마음껏 유영하며 상상을 만끽하는 자유가 있었다면, 관계로 좁아진 작품 안에서는 그런 자유보다는 관계의 정서에 국한되어 좁아져 버린 틀에 갇힌 느낌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혁진 〈Extinction Ver.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옥상훈



그러나 이 두 작품에서 느낀, 작은 통찰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순수한 안무적 노고’와 이토록 정서를 섬세하게 가져가는 ‘강한 밀도’가 익숙하거나 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데에 우리의 현 지점이 있었다. 너무 당연한데 우리의 지원금 구조에서, 혹은 우리의 생태계 안에서 안무를 향한 순수한 노고와 밀도가 주는 깊은 집중은 사라진 건 아닐까하는 깨달음을 만나고는 흠칫 놀란 건 사실이다.

이 놀라움에 기대어 본다면 ‘아르코 댄스 UP:RISE’가 지향한 안무가를 중심에 놓고 진행하는 지향점을 향한 실험은 어느 정도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안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준다는 것, 안무가 실현되는 극장 사용에 불안감을 없애 주는 것,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극장을 움직이는 스텝들과 협업할 수 있는 여건1)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안무가 현실화되는 과정에 대한 그야말로 현실적 배려가 돋보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특히 드라마터그의 매칭 과정(이해니-전강희/전혁진-
사코 카나코)이 있었는데 이 역시 작품을 객관화시키고 안무가를 보완하는 기제로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스테이지 2를 위해 거의 1년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게끔 되어 있는 두 명의 안무가에게 작품을 1시간짜리로 확대하고 심도를 가져가는 안무의 시간은 어땠을까? 무엇이 1년간의 동력이 되었으며 안무의 난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1년의 시간이 공연으로 드러났을 때 느낌은 어땠을까? 안무를 자평을 한다면 무슨 내용이 나올까? 를 물으며 안무가가 스스로 말하는 ‘성장과 터닝포인트’, ‘안무 과정’의 구체적인 질감을 듣고 싶은 마음이 크다2). 역시 안무가 자신이 느낀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피드백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년에 걸친 과정을 보면서 우리 시대, 우리의 안무는 무엇일까에 대해 우리가 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

원론적으로 안무의 층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안무는 안무가의 머릿속에서 상상되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이 문자화되어 안무 노트에 적히고, 지원서에 구체적으로 적힐 때 안무의 첫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출연자들을 만나고 안무 되어지는 몸들과 작업할 때 안무는 과정으로서의 본 모습을 보인다. 거기에 음악과 공간과 의상과 조명과 장치를 입혀나가면서 안무는 극장에서 자신을 드러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때 안무는 온전히 모습을 나타내며 살아서 움직인다.

여러 층위에서 생동하는 과정으로서의 안무, 유기체로서의 안무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안무된 작품이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관객을 만나 관객의 마음에, 뇌리에, 몸에 스미는 안무도 바로 안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관객의 피드백을 받는 것, 반복되는 무대 위에서 종합적으로 조율되는 과정을 거쳐 무르익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안무가의 성장을 좌우할 이리저리 뛰어야 한다. 역시 안무는 살아있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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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해니-박민호 무대감독, 김종현 음향감독/ 전혁진-탁형선 조명감독, 김경남 음향감독
2) 합평회와 마무리 모임이 모든 공연이 끝난 후인 12월 10일 열렸지만, 6개의 창작팀이 모두 모인 자리였고 깊은 얘기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6. 1.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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