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산조예찬 _ 7개의 산조춤 열전
산조춤, 가슴에 담겨있는 심상(心像)을 그리는 춤
김영희_우리춤연구가

 산조춤을 한 자리에 모은 ‘산조예찬 – 7개의 산조춤 열전’이 10월 15일에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다. 16회에 접어든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예술감독 이종호)에서 한국춤 프로그램으로 유일하게 올려졌고, 춤 기획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 장승헌이 제작감독과 해설을 맡았다.
 공연은 손경순(숭의여대 교수)의 <다스름>, 이미영(국민대 교수)의 <숲>, 유정숙(효산무용단 예술감독)의 김진걸류 <내 마음의 흐름>, 윤미라(경희대 교수)의 <저 꽃, 저 물빛>, 전은자(성균관대 교수)의 김백봉류 <청명심수>, 최영숙(예무회 회장)의 송범류 <황혼(黃昏)>, 황희연(생태문화나눔 대표)의 배명균류 <산조춤>이 펼쳐졌다.
 산조춤을 한 자리에 모은 건 드문 기획이다. 여성홀춤으로 승무나 살풀이춤, 입춤 등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않지만, 산조춤은 전통춤 뿐만 아니라 신무용 계열에서도 꾸준히 추어지는 춤이다. 이 춤의 첫 등장은 1942년 12월 최승희의 동경제국극장 공연이었다. <산조춤>의 작품 설명에 ‘가야금 산조의 섬세한 가락을 즉흥적 형식으로 연주한 음악의 흐름을 춤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했다. 즉 최승희가 한국춤을 바탕으로 자신의 레파토리를 다양하게 펼쳐나가던 시기에, 산조(散調)라는 음악을 주요 모티브로 설정한 춤이다. 이처럼 산조춤은 산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산조는 19세기 후반 악사 개인의 음악 역량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음악형식이다. 전남 영암 출신의 김창조(金昌祖:1865~1911)에 의해 가야금 산조로 처음 완성되었고, 20세기 초반에 거문고 산조, 대금 산조, 피리 산조, 해금 산조 등으로 퍼져나갔다. 산조의 구성은 대개 진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중모리, 자진모리, 중중모리, 엇중모리, 휘모리, 단모리로 이어지는데, 장단의 짜임은 자유롭다.
 이렇게 음악이 구성되고, 20세기 중반부터 다양한 산조 음악에 맞추어 여러 무용가들이 <산조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흥들과 심정을 춤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춤꾼의 산조 음악에 대한 해석과 춤적 경험과 역량이 담기는 춤이라고 하겠다. 산조춤에 별도의 제목을 붙이기도 하는데, 제목에 춤의 주요 테마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살을 푼다는 의미가 바탕이 되는 살풀이춤과는 다른 배경과 연원을 갖으며, 정조도 다르다.
 첫 번째 산조춤은 손경순의 <다스름>이었다. 거문고와 아쟁의 산조를 우조와 계면조로 엮어서 추었다. 정숙한 여인이 입춤을 추듯 추었고, 이번 산조춤 중에서 전통춤의 특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었다. 무대 위에 산조 연주자들을 배치한 무대 구성이 돋보였는데, 산조춤의 분위기와 조건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이미영은 황병기의 곡 ‘숲’에 맞추어 자신의 산조 <숲(林)>를 추었다. 장옷을 쓰고 시작했다가 부채를 들고 추었고, 마지막에 다시 장옷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연극적 설정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된 듯한데, 숲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상들을 밝고 화사하게 (그녀 춤의 특징이기도 하다.) 표현하였다. 대개 포즈와 포즈가 연결되면서 춤이 전개되었으며, 군무가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했다.
 유정숙은 고 김진걸의 산조춤인 <내 마음의 흐름>을 추었다. 김진걸 선생은 이 춤을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로 1960년대부터 추었는데, 자신의 사유와 희노애락을 담은 춤이라 하였고, 수없이 추며 1980년대 말에 완성하였다. 유정숙은 흑장미처럼 검붉은 벨벳 치마 저고리를 입고 <내 마음의 흐름>을 추었다. 어깨와 등을 반듯이 세운 자세로 사선의 움직임을 자주 그려내고, 숨을 멈춘 채 손사위만으로 선율을 타며, 뚝뚝 끊는 동작으로 김진걸 선생의 독특한 스타일을 소화했다. 강선영류 <태평무>를 유연하게 추는 모습을 봤었지만, 신무용 계열에서 그녀의 춤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윤미라의 <저 꽃, 저 물빛>은 김영재 선생의 철금 산조에 얹은 춤이다. 춤의 제목처럼, 그녀의 춤은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듯 물빛이 끝없이 번지며 반짝이듯 쉬지 않고 흘러갔다. 팔 사위가 다양하고, 상체의 쓰임이 현란하며, 뒷태와 턱짓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연풍대는 뜻밖이었다. 철가야금의 짙은 울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윤미라의 춤사위들과 잘 어울렸다.
 전은자는 김백봉의 산조춤인 <청명심수(淸明心受)>를 추었다. 원래 <청명심수>의 전작(全作)은 40분 가량 추어진다. 김백봉 선생이 1973년 처음 발표 후 단편적으로 공연하다가 1993년에 산조춤으로 집대성한 작품이다. 1972년 교통사고 후 무용가로서 심한 좌절을 겪었지만 그 한과 고통을 풀어내기 위해 가야금 산조에 맞추어 추었다고 한다. 이번 무대에서 전은자는 진한 꽃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굿거리대목까지 선보였다. 긴 팔과 손 사위는 김백봉 선생의 신무용 기법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특징적인 무릎굴신도 볼 수 있었다. 가야금의 선율에 얹은 춤은 여성스럽고 화사했으니, 사회자가 말대로 해당화에 비유할 만하였다.


 



 최영숙의 <황혼(黃昏)>은 박성옥의 철가야금으로 반주했던 고 송범류 산조춤이다. 1966년의 초연에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졌다고 한다. 역시 신무용 기법의 산조춤으로, 최영숙은 반듯하게 가슴을 열고 담백하게 손사위를 그려갔다.
 마지막으로 황희연이 <배명균류 산조춤>을 추었다. 이 춤은 해금 산조를 바탕으로 추는데, 신무용 계열의 작품을 주로 창작했던 배명균이 엮은 산조춤이지만, 전통춤의 향기가 진한 산조춤이다. 춤사위를 두드러지게 뻣어내지 않으며, 의상도 전통춤 의상 스타일이다. 황희연은 춤을 서두르지 않고 전개했으며, 감정 흐름의 변화를 완숙하게 표현했다. 마지막에 다시 돌아온 진양 대목에서 또 다른 색이 덧칠해진 회한을 느낄 수 있었다.
 산조춤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전통춤의 기법으로 추는 산조춤과 신무용 기법으로 추는 산조춤이다. 최승희가 ‘산조춤’이란 제목으로 처음 춤을 춘 이래, 전통춤계열과 신무용계열이 각각 산조 음악을 배경으로 산조춤을 추었고, 상호 영향을 받으며 1960, 70년대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추어진 배명균류, 김백봉류, 송범류, 김진걸류 산조춤들이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50대 이상 중견의 춤꾼들이 자신의 산조춤을 선보이고 있다.
 산조춤은 한국화에서 난(蘭)을 치고 죽(竹)을 그리는 표현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눈에 보이는 물상(物像)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기억 속에 담겨있는 심상(心像)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산조 음악에 대한 선택 - 악기의 독특한 음감, 선율의 다양한 감정, 또 장단 배열의 독창성은 춤꾼의 춤결을 특징짓게 한다. 자신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조춤의 꽃들이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2013. 11.
*춤웹진